90% 오르고 10% 떨어졌다

부동산 위기론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집값이 큰폭으로 하락하는 단지가 속출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부동산 시장이 재연되고 있다는 거다. 정말 한국 부동산 시장은 깊은 침체기에 빠진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 10개 아파트 단지, 10년 동안의 가격 변천사를 들여다봤다.

아파트 가격이 내려갔다지만 체감은 어렵다.[사진=뉴시스]

“거래절벽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의 급감으로 부동산 업계가 뒤숭숭하다. 아파트값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큼 하락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나돈다. 일부에선 서울 부동산 시장이 단순 하락기가 아니라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거래량 감소는 통계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1만건을 웃돌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2월 1500건 수준으로 급감했다. 4개월 만에 7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서울 아파트 월별 거래량이 1000건대로 추락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이후 딱 6번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11·12월도 그중 하나다. 언뜻 “시장이 금융위기 때만큼 무너졌다”는 업계의 얘기는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무주택 서민은 여전히 “서울에서 집 사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호소하고 있어서다. 보통 시장에 거래절벽이 닥치면, 집값은 조정기를 거치다 하락한다. 집주인이 비싼 값에 집을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주택 서민의 시름이 여전히 깊은 이유는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 내 10개 단지를 선정해 2007년부터 2019년까지의 집값 변천사를 분기별로 살펴봤다. 업계의 전망처럼, 거래량과 가격이 급락하던 금융위기 당시의 서울 부동산 시장이 올해 재연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강북·강남권역에서 각각 5개 단지를 골랐다.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12년간 꾸준하게 거래가 있었던 500가구 이상, 전용면적 84㎡ 아파트. 이렇게 ‘서초구 서초래미안’ ‘강남구 은마아파트’ ‘송파구 잠실트리지움’ ‘관악구 관악드림타운’ ‘동작구 동작삼성래미안’ ‘마포구 공덕삼성아파트’ ‘용산구 이촌코오롱’ ‘성동구 옥수삼성아파트’ ‘은평구 북한산현대홈타운’ ‘도봉구 창동삼성아파트’ 등의 단지를 추렸다.

먼저 서초구 서초래미안, 강남구 은마아파트, 송파구 잠실트리지움 등 고가 아파트 단지부터 보자. 시장 분위기를 반영하듯 하락폭이 적지 않았다. 이들이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던 2018년 4분기와 현재 호가를 비교하면 평균 11% 하락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와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위기 당시 3개 단지의 평균 하락폭은 23%였다.

거래 없어도 호가는 요지부동

은마아파트부터 보자. 2007년 1분기 13억원을 줘야 살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반여가 흐른 2008년 4분기 가격은 8억원 대까지 떨어졌다. 하락폭으로 따지면 30%에 이른다. 한동안 그 언저리를 맴돌던 매매가격이 다시 13억원으로 오른 건 8년 뒤인 2016년이었고, 이 해는 ‘부동산 버블’의 분기점이 됐다. 2016~2018년 2년새 은마아파트의 가격이 20억원으로 가파르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2008~2016년 5억원이 올랐는데, 그 이후 2년 사이엔 7억원이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현재 은마아파트는 20억원에서 18억원, 그리고 다시 16억원으로 20% 하락했다. 일부에선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때만큼 하락하려면 10%가 더 빠져야 한다.

잠실 트리지움은 2007년 10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입주한 아파트다. 당시 거래가는 10억2000만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엔 가격이 20% 하락, 8억2500만원까지 떨어졌다. 2018년 3분기 기준 가격은 16억원을 기록했고, 현재 매물 호가는 13억원이다. 이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 집값이 떨어지려면 4억7500여만원이 빠져야 한다.

서초래미안의 집값은 앞서 언급한 두 단지보다 공고한 편이다. 부동산 침체기로 평가받는 현시점에도 2018년 4분기 기록했던 15억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서초래미안은 어땠을까.

2007년 1분기 서초래미안은 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가격은 8억원대로 하락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15년 서초래미안은 9억원을 넘어 10억원에 거래되기 시작했고, 그 값은 해마다 꾸준히 올랐다(2018년 기준 15억원).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는 고사하고, 장기침체와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처럼 강남권 3개 단지의 2008년 저점과 현재 호가를 비교하면 평균 85% 가격이 뛰었다. 다른 지역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10개 단지(강남권 3개 단지 포함)의 현재 호가를 2007년과 비교하면 평균 95% 상승했다.

강북 아파트 값도 마찬가지였다. 공덕 삼성래미안은 2007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6억원대 아파트였다. 큰 부침 없이 움직이던 아파트 가격은 20 17년 3분기 갑작스레 8억원에 육박했다. 10억원까지 오르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가을에 10억원 하던 집이 겨울에는 12억원에 팔렸다. 2007년과 비교하면 2배가 됐다.

혹자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2008년 당시 1000원 하던 김밥도 지금은 2000원이 넘어간다. 물가가 오르듯 집값도 오르는 건 자연스럽다는 주장이다.

계절 바뀌자 2억원 껑충


하지만 이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5년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2007년 소비자물가지수는 82.23이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소비자물가지수는 104.69로 22.46%가 상승했다. 아파트는 어땠을까. 2017년 11월을 100으로 놓았을 때, 2007년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71.3, 2018년 11월은 102.2였다. 30.9포인트나 올랐다.

집값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 하락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서울 아파트 값은 여전히 ‘고점’에서 맴돌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개 단지의 가격은 최고가를 기준으로 평균 90%나 상승했다. 어떤가.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는 건가. 답은 통계에 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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