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한국GM 철수설
르노삼성 문제 노조 때문인가
본사 붙잡을 경쟁력이 급선무

# 지난해 2월 GM본사가 한국GM 군산공장의 폐쇄를 결정했다. 한국GM 철수설이 쏟아졌다. 수십만 노동자가 실직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산업은행은 그제야 분주해졌다. 8000여억원의 혈세를 부어 가까스로 철수를 막았다고 생각한 찰나, 한국GM은 속내가 의심스러운 행보로 논란을 빚고 있다.

# 지난해 10월 시작된 르노삼성 노조의 파업이 40회를 훌쩍 넘어섰다. 르노삼성 위기설이 불거졌다. 노조가 파업한 탓에 르노본사로부터 생산물량을 못 받게 됐다는 거다. “빨갱이 노조가 괜한 몽니를 부려 회사가 위기에 빠졌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노조는 대역죄인이 됐다. 

#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외국계 회사다. 미국 GM과 프랑스 르노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따라 두 회사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는 한국GM과 르노삼성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리스크다. GM과 르노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당연히 실리다. 실리가 없다고 판단되면 한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한국GM처럼 혈세를 쏟아부어 철수를 지연시키거나, 르노삼성마냥 위기의 진짜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 우리는 이제 본사의 입김에 기둥뿌리까지 흔들리는 외국계 자동차업체(한국GMㆍ르노삼성)의 문제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시장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떠날 빌미와 명분을 주지 말든가, 외국계 자동차업계의 노동자들이 어떤 위기에도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안전망을 만들든가, 할 일이 태산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들이 철수한 다음’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GM과 르노삼성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취재했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은 글로벌 본사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사진=연합뉴스]
한국GM과 르노삼성은 글로벌 본사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사진=연합뉴스]

한국GM과 르노삼성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긍정적인 소식 때문이 아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어서다. 한국GM은 철수설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 지난해 2월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함께 철수설이 불거진 지 1년여가 흘렀지만 그대로다.

지난해 5월 산업은행과 GM본사가 한국GM의 경영정상화 방안에 합의할 때만 하더라도 철수설에 종지부가 찍히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GM이 법인분리를 강행하면서 철수설은 2개월 만에 되살아났다.

지난 7일엔 한국GM에 배정하기로 한 콤팩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개발 물량을 중국에 넘긴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GM본사가 출자전환한 36억 달러 상당의 우선주에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이 달려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GM본사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통해서다. 산은은 부인했지만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다.[※참고 : GM본사가 출자전환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산은의 지분율은 15% 이하가 돼 한국GM을 견제할 수단(비토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르노삼성도 불투명한 앞날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부분파업이 6개월여 이어져오고 있다. 11일엔 44번째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168시간째다. 더 큰 문제는 오는 9월 닛산과의 수탁생산계약이 종료되면 부산공장의 생산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르노본사로부터 후속 생산물량을 받을 가능성도 현재로선 매우 낮다. 언제 경영위기가 불어닥칠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두 회사에 유독 잡음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외국계 브랜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리스크 때문이다. 한국GM과 르노삼성 모두 글로벌 본사를 두고 있는 외국계 회사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사정이 어려워진 대우차(2001년)와 삼성차(2000년)를 각각 미국 GM과 프랑스 르노가 인수하면서 출범했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의 위기론이 끊이지 않는다. 외국계 회사가 안고 있는 리스크 때문이다. 사진은 메리 바라 GM 회장.[사진=뉴시스]
한국GM과 르노삼성의 위기론이 끊이지 않는다. 외국계 회사가 안고 있는 리스크 때문이다. 사진은 메리 바라 GM 회장.[사진=뉴시스]

이런 외국계 브랜드의 가장 큰 문제는 본사의 의사결정에 일방적으로 휘둘릴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제품개발부터 생산ㆍ출시까지 대부분 글로벌 본사가 정한다. 경쟁력 있는 차량을 배정받기 위해 본사의 입맛에 맞춰야 하는 이유다. 

생산성은 높이고 비용은 줄이는 등의 이슈를 해결하지 못해 해외공장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작게는 경영위기와 구조조정, 크게는 공장 폐쇄 및 철수까지 감내해야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경영전략과 위기에 따른 대비책을 자체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건 큰 한계”라면서 이렇게 빗댔다. “본사는 칼자루를 쥐었고,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칼날을 쥐고 있는 셈이다.”

칼날 쥔 한국GM과 르노삼성


한국GM과 르노삼성의 심상찮은 위기론이 두려운 건 두 회사의 노동자와 협력업체 때문이다. 한국GM과 르노삼성 노동자만 각각 1만1000명, 4000명가량. 1차 협력사를 포함하면 약 10만4000명, 1만6000명으로 훌쩍 증가한다. 여기에 2~3차 협력사까지 더하면 수십만명에 이른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의 철수가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한국GM을 둘러싼 철수설이 불거졌을 때 산은이 혈세를 쏟아부으며 GM을 달랬던 이유다. 르노삼성의 위기가 현실로 닥쳐온다고 해도 정부는 또다시 공적자금을 투입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리스크를 해결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계 회사들은 경영사정이 어려워지면 또 철수를 빌미로 돈을 요구할 것이다”면서 “문제는 우리나라의 내수 규모와 메리트를 감안할 때 언젠가는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고 꼬집었다. 

혈세를 쏟아부어 GM과 르노를 잠시 붙들어 잡는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익명을 원한 한 업계 관계자는 “철수 논란을 잠시 잠재운다고 해도 본사 눈치만 봐야 하는 하청업체 신세는 바뀌지 않는다”면서 “이런 리스크는 뒤로 한 채 ‘모든 문제의 원인은 노조에 있다’는 노조 빨갱이론만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글로벌 본사가 떠나지 못하도록 한국을 매력적인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중국이 그런 시장에 속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미국, 중국 그리고 유럽 등의 국가들은 내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글로벌 본사들이 글로벌화보다는 지역화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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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내수시장을 미국, 중국만큼 키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유럽, 미국의 내수시장 예상 규모가 각각 2423만대, 1812만대, 1698만대였던 반면 우리나라는 180만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한국 공장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국GM 철수설과 르노삼성 위기설이 잇따라 불거지는 건 그만큼 한국 공장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라서다. 치솟은 인건비나 부품 단가 문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술적인 면에선 경쟁력을 입증해낼 수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GM과 르노의 글로벌 경영전략에서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이 한국에 있을 때 이점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서 “부품이나 미래차 기술과 관련한 경쟁력을 갖추면 GM과 르노는 떠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고질병 해결하려면 인내해야

그러나 이 역시 난제다. 전문가들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기술 역량을 좇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상인 교수도 “정부의 정책 방향이 부품 산업이나 미래차 시장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구조”라면서 “과거의 인건비, 부품단가 경쟁력이 사라지고 있는데 더 이상 이것만 밀어붙여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쌍용차 사태나 외환위기 때 실기했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장기적인 플랜을 계획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완성차의 부가가치는 줄고 전장부품산업과 모빌리티 서비스가 커지고 있다. GM과 르노가 떠나간 자리를 이들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지 않고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부 고통이 따르더라도 큰 그림을 가지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GM과 르노는 언젠가 떠난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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