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출혈경쟁의 ‘비극’

창고형 할인점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코스트코가 쥐고 있던 시장에 국내 대형마트 3사(이마트ㆍ홈플러스ㆍ롯데마트)가 모두 뛰어들었다. 지난 14일에는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서울 시내에 처음으로 진출하며 공격적 출점을 선언했다. 문제는 너나 없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창고형 할인점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혈경쟁의 비극悲劇이 서서히 막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창고형 할인점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이마트가 2030년까지 트레이더스 매장 50개를 오픈하겠다고 밝혔다.[사진=이마트 제공]
이마트가 2030년까지 트레이더스 매장 50개를 오픈하겠다고 밝혔다.[사진=이마트 제공]

창고형 할인점 이마트 트레이더스(이하 트레이더스)가 첫번째 ‘인(in)-서울’ 매장을 14일 오픈했다. 서울시 노원구에 문을 연 ‘트레이더스 월계점’이다. 사상 첫 ‘서울 입성’이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매장 입구에는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1억8700만원)의 무인 헬리콥터를 배치했다. 트레이더스의 히트상품인 에어프라이어의 물량도 3000개나 확보했다. 월계점에서 4.1㎞ 거리에 위치한 경쟁사 코스트코(상봉점)를 잡기 위한 전략상품도 갖췄다.

“경쟁사 대비 3분의 1가격에 판매한다”면서 진열해 놓은 55인치 UHD TV는 소비자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코스트코의 주요 인기상품으로 꼽히는 ‘연어’에도 힘을 줬다. 트레이더스 관계자는 “노르웨이 연어 2위 업체와 거래하는 코스트코보다 앞서가기 위해 1위 업체와 직거래한다”고 밝혔다. 코스트코를 의식한 전략으로 무장한 트레이더스는 월계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50개 점포 매출액 10조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트레이더스는  코스트코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창고형 할인점 전성시대 = 트레이더스가 공격적인 출점 계획을 밝히면서 창고형 할인점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롯데마트 빅마켓, 홈플러스 스페셜, 코스트코가 벌이는 4파전이다. 가장 앞선 건 코스트코다. 미국계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는 1994년 신세계백화점과 합작 형태로 한국에 진출했다. 1998년 독자 운영을 시작해  15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국내 유통업체 중 창고형 할인점에 가장 먼저 뛰어든 이마트의 행보도 숨가쁘다. 이마트는 2010년 트레이더스 1호점을 오픈하고, 코스트코와 달리 연회비 없는 비회원제 운영방침을 내세웠다. 최근 월계점(16호점)을 열면서 매장 숫자 면에서 코스트코를 넘어섰다.

롯데마트도 2012년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빅마켓’을 선보이고 전국 5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대형마트를 고수하던 홈플러스는 지난해 창고형 매장과 대형마트가 결합된 형태의 ‘홈플러스 스페셜’을 론칭했다. 창고형 할인점에서 판매하는 대용량 제품과 일반 할인점에서 판매하는 소용량 제품을 구비한 하이브리드 매장인 셈이다.

■왜 너도나도 할인점인가 = 대형마트 3사가 창고형 할인점 시장에 잇따라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유통업계에서 드물게 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시장의 규모는 2012년 2조9000억원(업계 추정치)에서 지난해 5조원대로 커졌다. 경기침체와 가성비 트렌드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호조세였던 1990년대 한국에 진출했던 창고형 할인점 월마트나 까르푸는 고배를 마셨다”면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3사가 창고형을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실적 부진’이다. 대형마트 3사(이마트ㆍ홈플러스ㆍ롯데마트)의 평균 매출 신장률(전년 대비ㆍ산업통상자원부)은 2015년 -3.2%, 2016년 -1.4%, 2017년 -0.1%, 2018년 -2.3% 등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마트의 지난해 대형마트 부문 매출액(11조5220억원)은 전년 대비 1.4%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6.3%(2017년 5970억원→2018년 4400억원) 줄었다.

롯데마트(롯데쇼핑 할인점 부문)의 매출액도 같은 기간 7조6350억원에서 7조1920억원으로 5.8%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2017년 2290억원, 2018년 980억원 등으로 해마다 불어났다. 지난해 238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친 홈플러스 역시 ‘전년 대비 22.8% 감소’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대형마트들이 창고형 할인점을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루오션인가 레드오션인가 = 문제는 창고형 할인점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출혈경쟁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2012년 12곳에 불과했던 창고형 할인점은 현재 52곳(3월 기준)으로 늘어났다. 올해 개점을 앞둔 곳을 합하면 55개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3사가 경쟁하듯 창고형 할인점 매장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마트는 트레이더스 신규매장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홈플러스도 기존 매장을 홈플러스 스페셜로 지속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언뜻 매장이 늘면 대형마트에 좋을 법한데, 문제는 후유증이다. 상권이 겹치는 지점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와 창고형 할인점을 결합한 형태의 홈플러스 스페셜을 선보였다.[사진=뉴시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와 창고형 할인점을 결합한 형태의 홈플러스 스페셜을 선보였다.[사진=뉴시스]

시장 관계자들은 이를 출혈경쟁의 전조라고 말한다. 이런 후유증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14일 문을 연 트레이더스 월계점은 언급했듯 코스트코 상봉점과 가깝다. 4월 오픈 예정인 코스트코 하남점은 트레이더스 하남점과 2.5㎞ 간격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홈플러스 스페셜 목동점 주변에는 코스트코 양평점(1.6㎞)과 빅마켓 영등포점(2.7㎞)이 있다.

이지영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창고형 할인점이 급증하면서 출혈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면서 “점포를 확장할수록 성장세는 꺾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고형 할인점을 통해 침체를 돌파하려는 대형마트의 계산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난공불락 코스트코의 벽 = 결국 창고형 할인점 시장에서 대형마트가 살아남는 길은 하나다. ‘절대강자’ 코스트코와의 경쟁에서 의미 있는 실적을 거두는 것이다. 하지만 코스트코의 벽은 여전히 높다. 코스트코코리아의 2017년 회계연도(2017년 9월~2018년 8월) 매출액은 3조9226억원, 영업이익은 1718억원으로 2009년(1조5788억원ㆍ864억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유료 회원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에도 PB상품ㆍ가성비 등을 통해 강력한 로열티를 구축해낸 결과다. 전세계 코스트코 지점 중 매출액 1위가 코스트코 양재점이라는 건 시사하는 함의含意가 크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관계자는 “코스트코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일부 지점이 코스트코와 상권이 겹치지만 비회원제ㆍ신선식품 등 트레이더스만의 강점으로 대응하겠다. 트레이더스 킨텍스점의 경우 코스트코 일산점보다 후발주자였지만 코스트코의 매출액 10%가량을 당겨왔다.” 창고형 할인점 춘추전국시대에서 패권은 누가 잡을까. 뺏고 뺏기는 무서운 경쟁은 이미 시작됐고, 시장은 달아오르고 있다.
이지원ㆍ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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