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건설사 후분양 채택하지 않는 이유

감옥 같은 창문, 들뜨는 벽지, 형편없는 몰딩의 해결책으로 후분양제가 떠올랐다. 아파트 부실 공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실제 후분양 아파트를 찾은 소비자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좋은 방식을 민간 건설사들이 채택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돈, 바로 그것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후분양 중인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를 가봤다.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는 준공 후 공급되는 후분양 아파트다.[사진=㈜부영 제공]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 샘플하우스입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걸린 주황색 현수막에는 생소한 단어가 쓰여 있었다. 모델하우스가 아닌 샘플하우스. 이미 만들어진 566가구의 아파트 중 1층에 있는 2가구를 소개한다는 것이었다.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가 후분양 아파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아파트는 남한산성의 능선에서 서울로 빠져나가는 도로에 있다. 높은 지대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단지 중앙에 있는 어린이집과 놀이터가 보인다. 입주가 시작되지 않아 아직은 텅 빈 어린이집은 금세 아이들이 재잘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찰 거다. 흥미롭게도 놀이터는 어린이집을 둘러싸고 있다. 아이들이 노는 곳이 단지 중앙에 있어 대부분의 집에서 창문을 열면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다시 샘플하우스가 있는 5806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파트 외벽에 만들어져 내부로 연결되는 우편함이 눈길을 끌었다. 우체부가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밖에서 우편물을 넣어주고, 주민은 안에서 받아볼 수 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나오는 복도는 폭이 넓어 2인용 유모차도 충분히 빠져나갈 만했다. 복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으니 이곳이 후분양 아파트라는 사실이 실감된다. 복도의 크기를 알려주는 모델하우스는 찾아보기 힘들어서다.

‘샘플하우스’라는 안내판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니 ‘진짜 집’이 나왔다. 내부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가면 창밖으로 어린이집과 놀이터가 보였다. 모델하우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졌다.

샘플하우스를 둘러보던 60대 여성은 “완성된 집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면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내 눈에 보이는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후분양하는 아파트의 샘플하우스에서는 입주민의 생활을 그대로 체험해 볼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모델하우스와 달리 후분양 아파트에선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자취방을 구하던 때처럼 옆 벽을 주먹으로 통통 두드렸다. 둔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안방에 들어갔다. 화장대 거울에 빨갛게 빛나는 버튼이 보였다. 무심코 누르니 거울 양 옆에서 조명이 환하게 빛났다. 바로 옆에 있는 드레스룸도 살펴봤다. 적당한 크기의 창문이 보였다. 포근한 햇살이 쏟아졌다.

샘플하우스를 나와 2층까지 비상계단으로 올라갔다. 벽에 있는 창문 덕인지 별도의 조명이 없었음에도 환했다. 2층 복도도 개방된 1층 복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이 넓고 마감이 깔끔했다. 함께 샘플하우스를 둘러본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 현장소장은 “청약 당첨자는 직접 자기 집을 미리 보고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면서 “상품을 보고 결정하는만큼 하자 민원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 아파트는 선준공 후공급 방식으로 임대한다. 지난해 동탄신도시에서 부실시공 논란에 휩싸였던 부영은 이번 단지를 통해 그간의 불명예를 씻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소비자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566가구 모집에 2000건이 넘는 사전예약이 접수됐다. ‘실제 집을 구석구석 본 다음에 구매를 결정한다는 점이 신선했다’는 평가도 많았다.
 

사실 그럴 법도 하다. 아파트 분양의 90%는 선분양 방식이다. 2022년까지 공공분양의 70%는 반드시 후분양을 해야 하지만 민간은 그렇지 않다. 건설사가 선분양을 포기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정부에서 후분양 방식을 선택하는 사업자에 공공택지 우선권을 주고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자금 능력이 되는 건설사는 후분양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태 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이라면서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고 대출보증 상품도 만들었지만 선분양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굳이 후분양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형이 아닌 진짜 집

건설사가 후분양에 심드렁한 가장 큰 이유는 초기 비용 투자의 부담이다. 선분양 방식에서는 소비자가 낸 계약금과 중도금이 공사비로 쓰인다. 그렇다보니 소비자가 중도금 집단대출을 받아오면 건설사는 안전하게 자금을 조달받아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이미 아파트가 팔렸으니 앞날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준공 기한을 맞추는 데만 힘을 쏟으면 된다.

하지만 후분양을 선택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토지에 투입되는 비용, 공사 설비비용, 인건비 등 모든 자금을 사업 주체가 부담해야 한다. 큰돈이 없으니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은행은 사업의 성공 여부를 요모조모 따진다. 분양 실적이 영 좋지 않겠다 싶으면 저리로 돈을 빌릴 수도 없다. 후분양을 위해 대출을 받거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사업을 시작할 경우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은 6~10% 수준이다.

 

후분양 방식이 소비자에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후분양 방식의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중도금과 잔금 납부기한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직접 집을 보고 살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비용 부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잔금에만 적용되는 디딤돌 대출을 중도금 대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언제 법망이 마련될지는 미지수다. 그마저도 요건을 못 갖추면 중도금 대출은 소비자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후분양 방식에선 아파트 하자 민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이 입증될지도 알 수 없다. 내부 인테리어를 끝낸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의 경우 당장 4월 입주가 가능한 후분양 아파트다.

후분양 만병통치약 아냐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후분양 기준은 공정률 60% 이상이다. 공정률 60%는 아파트의 뼈대인 골조만 올라간 상태라고 보면 된다. 도색도 돼있지 않고, 창호가 설치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해당 아파트에 어떤 하자가 있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후분양 공정률이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위례 포레스트 사랑으로’는 사람만 들어가면 완성되는 완제품이다. 단지 정비도 깔끔하게 끝나 있었고 아파트 도색 작업은 마무리 단계였다. 다른 후분양 아파트도 이처럼 ‘완제품’이 될 수 있을까. 후분양 아파트가 더 만들어지기는 할까.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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