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서 김칫국 마셨다간 큰코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몇몇 로컬기업이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그간 중국 시장에서 좀처럼 힘을 못 쓰던 한국 기업에는 희소식처럼 들린다. 중국 기업 몰락에 따른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낙관에 불과하다. 빈자리를 채우는 것 역시 중국 기업이 될 공산이 크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중국판 노키아의 파산과 반사효과를 취재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재편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지는 미지수다.[사진=연합뉴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재편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지는 미지수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중국시장 점유율 7위 스마트폰 업체 지오니의 파산 선언은 충격이었다. 2002년 설립된 이 회사는 한때 ‘중국의 노키아’로 불렸다. 2010년 ‘중국 업체 중 휴대전화를 가장 많이 판 회사’라는 타이틀을 따내며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중국시장에서 이 회사보다 많은 판매 실적을 올린 건 노키아와 삼성전자뿐이었다.


애플이 휴대전화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노키아ㆍ레노버 등 전통의 기업들이 무너질 때도 지오니는 승승장구했다. 2016년 3200만대의 글로벌 판매고를 올렸고, 시장점유율 2.2%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7년 점유율이 급작스레 0.1%로 곤두박질치더니 결국 3조원이 넘는 부채를 지고 파산을 선언했다.

지오니만 위태로운 게 아니다. 중국 6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메이주는 지난해 판매량이 반토막 나면서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때 삼성전자를 위협하던 HTC와 강소기업으로 불리던 스마티잔ㆍ쿨패드ㆍTCL 등도 자금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업계에선 이들 기업이 도미노처럼 줄도산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중이다.

잘나가던 이들 기업이 급격히 무너진 이유는 여럿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2017년 처음으로 역성장을 했다.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늘어나고, 가격보단 품질을 중시하는 성향의 소비자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의 후폭풍도 한몫했다. 경기에 민감한 중견 IT기업이 먼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영원할 것 같던 신흥 스마트폰 세력의 굴기屈起가 꺾였기 때문이다.

역성장을 하고 있음에도 ‘전세계 최대 스마트폰 판매처’란 중국 시장의 지위는 굳건하다. 이런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최근 고전은 뼈아픈 일이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한때 20~30% 점유율을 기록하며 브랜드 파워를 누렸지만, 현재는 점유율 1%를 밑도는 신세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중국 시장 재건 의지를 다졌음에도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올해 분위기는 다르다. ‘로컬 기업의 몰락’이 ‘한국 스마트폰의 재반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빈자리가 삼성전자ㆍLG전자 등 한국 스마트폰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중국판 노키아’의 몰락

시기도 적절하다. 갤럭시 10주년 기념 플래그십 제품 ‘갤럭시S10’을 중국시장에 선보였다. 초기 반응은 좋다. 중국 전자제품유통업체인 쑤닝은 “갤럭시S10 사전예약 시작 직후 10분간의 판매량이 전작인 갤럭시S9 시리즈에 비해 365%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9’에선 화려한 기술력을 뽐내며 중국 선두기업 화웨이의 코를 납작 누르기도 했다. 두 회사는 나흘 간격으로 각각 폴더블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는 화면을 안쪽으로 접는 인폴딩 방식을 선보였고, 화웨이의 폴더블 스마트폰 ‘메이트X’는 바깥으로 접는 아웃폴딩 방식을 선택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 인폴딩의 기술 난도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은 “아웃폴딩 방식이라면 3년 전에 시장에 내놓았을 것”이라고 자신했을 정도다.

경쟁사가 무너지는 가운데, 기술력을 갖춘 제품으로 공략을 시작했으니 반전을 기대해봄 직하다. 무너진 기업의 점유율만 흡수해도 삼성전자로선 ‘해볼 만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파산을 선언한 지오니와 파산설이 도는 메이주는 2017년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정옥현 서강대 미래기술교육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시장의 경쟁축이 상위 업체로 옮겨간 것뿐이다. 브랜드 파워ㆍ디자인ㆍ품질 등 하나라도 소홀히 했다간 그 허점을 파고들 중국 스마트폰들이 여전히 즐비하다. 오히려 예전보다 국내 기업의 진입장벽이 더 높아진 건지도 모른다.”

현재 중국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건 화웨이ㆍ오포ㆍ비보ㆍ샤오미 등 네곳이다. 점유율 1~4위를 양분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을 중심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4분기 49.2%였던 4개 업체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2018년 2분기 80.6%로 훌쩍 뛰었다. 나머지 20%를 두고 수십개의 업체가 혈투를 벌이고 있다.

4개 기업의 시장 장악력이 강화되는 건 삼성전자 입장에서 위기다. 중국 업체는 내수시장 흥행을 바탕으로 연구ㆍ개발(R&D) 투자를 늘려 기술 격차를 줄이는 밑거름으로 쓴다. 중국시장 판매량이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란 얘기다. 이를 독점하는 브랜드는 선순환을, 그리고 이 경쟁에서 패배한 브랜드는 악순환을 겪는 구조다.

상위 4개 업체는 이런 경쟁력으로 바다 건너로 발을 넓히고 있다. 베트남, 인도 등 신흥국이 첫번째 타깃이 됐고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전세계 스마트폰 제조사 20개 중 전년 대비 출하량을 두자릿수 이상으로 늘린 업체는 7개뿐이다.

이중 5개사가 중국 기업인 건 이를 잘 보여주는 통계다.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도 출하량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전략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어느 한쪽 기업이 무너진다고 해서 다른 기업이 치고 올라올 기회가 생길 만큼 허술한 곳이 아니다”면서 “당장 중국시장보다 좁은 한국시장만 봐도 팬택의 몰락이 LG전자에 기회가 될 거라 점치던 이들이 많았지만, 되레 삼성전자의 지배력만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반격은 통할까 


위청둥 화웨이 컨슈머비즈니스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2월 “향후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3~4개 업체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 단언했다. 점유율이 10% 미만인 곳은 적자를 면치 못해 퇴출할 거란 전망이다. 결국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은 더 냉혹해졌다. ‘승자 독식’의 중심 추는 현재 중국 업체로 기울고 있다. 몇몇 중국 로컬기업의 붕괴가 한국 스마트폰 업체에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은 어쩌면 ‘순진한 발상’일지 모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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