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해괴한 ‘강간의 변’
[Economovie] 해괴한 ‘강간의 변’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30
  • 승인 2019.03.22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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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라쇼몽羅生門❺

영화 ‘라쇼몽’은 여성 관객들이 불편해할 영화다. 일본의 어느 숲속에서 벌어진 ‘강도’와 ‘강간’을 모티브로 한 대단히 ‘동물적’인 이 영화는 강도짓이야 그렇다 해도 강간을 다루는 방식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라쇼몽의 원작자도 남성이고, 감독도 역시 남성이어서인지 강간의 문제를 다루는 시각 역시 철저히 남성적이다.
 

여성은 남성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자기검열에 철저해야 한다는 헤이안 시대식 주장은 오늘까지 생명력을 유지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여성은 남성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자기검열 해야한다는 헤이안 시대식 주장은 오늘까지 생명력을 유지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빚어낸 영화 ‘라쇼몽’의 배경은 11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이고, 영화가 개봉된 시점은 1950년이다. 그러나 강간의 문제가 다뤄지는 방식은 영화의 배경인 1000년도와 영화가 제작된 1950년도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미투운동’으로 소란스러운 2019년 오늘날과 비교해도 또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라쇼몽이 보여주는 여성문제 특히 강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11세기와 21세기 현재 사이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깨달음이 관객들을 더욱 놀라게 한다. 

산적 다조마루는 강도강간죄로 포박돼 관아에 끌려나와 심문을 당한다. 다조마루는 무더운 여름날 숲속에서 사무라이의 말에 탄 채 지나가는 여인을 발견한 당시를 설명한다. 그녀의 얼굴을 가린 아스라한 베일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에 욕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면서 오히려 화를 낸다.

해괴한 ‘강간의 변’을 무척이나 당당하게 늘어놓는다. 어쩌면 강간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그따위 야릇한’ 차림으로 하필이면 자기 앞을 지나 자신의 욕정을 불러일으켜 강간을 유발한 여인의 책임이라는 투다.

 

영화 '라쇼몽'은 '강간의 문제'를 남성적인 시각에서 다룬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라쇼몽'은 '강간의 문제'를 남성적인 시각에서 다룬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21세기 요즘도 여성들의 노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비논리적인 논리와 상통한다. 여성들은 항상 남성들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자신을 억압하고 자기검열에 철저해야 한다는 헤이안 시대 산적 다조마루 식의 주장이 오늘까지 생명력을 유지한다.

영화 라쇼몽의 원작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남성이고, 영화의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역시 남성이다. 그래서인지 강간의 문제가 다뤄지는 시각 역시 철저히 남성적이다. 강간이라면 당연히 폭력의 수반을 전제로 할 텐데 묘하게도 영화 속 강간 장면에서 폭력은 보여주지 않는다.

사무라이의 아내가 저항조차 ‘제대로’ 안 하고 당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오늘날에도 강간 사건을 다투다 걸핏하면 그것이 정말 강간이냐 혹시 화간和姦은 아니냐는 말들이 오간다. 여자가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해야 강간으로 인정될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정절을 잃은 아내를 쳐다보는 사무라이 남편의 싸늘하고 경멸에 찬 시선이 압권이다. 남편이라는 자는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의 무능에 괴로워하지도 않고 강간범 다조마루에게 치를 떨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대신 오로지 강간당한 아내에게 오만 정이 떨어질 뿐이다. 강간당한 아내를 사무라이가 아예 데리고 떠난다 해도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관아에서 이뤄지는 재판정에서도 여자는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 남자들과는 다르게 걷잡을 수 없이 감정적이다. 때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끼는가 싶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분노에 절규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자란 ‘종잡을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오늘날 인터넷상에선 여성을 성적으로 다루고 평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사진=뉴시스]
오늘날 인터넷상에선 여성을 성적으로 다루고 평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사진=뉴시스]

쓰러져가는 성문(라쇼몽羅生門)에서 비를 피하던 남자들은 풍문으로 들은 숲속의 강간사건을 심심풀이 삼아 마치 목격이라도 한 듯 때로는 근엄하게 또 때로는 야비하게 시시덕댄다. 그들은 결코 강간의 피해자인 여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소문을 옮기고 각색하고 평가하는 방식은 오늘날 인터넷과 무척 닮았다. 여성을 성적으로 다루고 평가하는 주제는 아무 자리나 어렵지 않게 올라간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미투’가 번지지 않는 곳이 없다. 이를 두고 ‘미투’가 아니라 ‘질투’라는 말도 나오고 강간이 아닌 불륜일 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어느 말이 맞는지 그 깊숙한 내막을 알 도리는 없다. 아마 당사자들조차 헷갈리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미투를 둘러싼 이 모든 소란과 어지러움이 11세기 헤이안 시대부터 21세기 오늘날까지 여성을 바라보고 대하는 변하지 않은 시각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진통으로 이해하고 싶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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