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가로 막힌 한국경제

한국에선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해도 제도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당연히 기업들의 불만이 많았고, 첨단기술력은 성장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게 규제 샌드박스다. 혁신 사업모델로 인정받으면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서비스를 시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막 첫 발을 뗐는데,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정해둔 법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론 혁신이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정해둔 법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론 혁신이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국내 경제 관련 정책은 포지티브 규제가 주를 이뤘다. 포지티브 규제란 ‘법에 규정한 것만 합법, 나머지는 불법’으로 간주하는 정책이다. 이 때문에 신산업 규정과 법을 일일이 만들어야 하고, 합법화 과정에서 기존 업계 반발에 부딪히는 등 난항을 겪어야 했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금지사항 몇개를 빼고 허용하는 네거티브 정책으로 전환했다. 덕분에 신산업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중이다. 그에 반해 규제에 꽉 막힌 우리는 세계적인 경쟁력 있는 기업 육성에 실패했다.


규제 체계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역대 정부 모두 말로만 규제혁신을 한다고 하고 여론의 역풍에 밀려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꼭 규제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사업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책이나 기술평가를 둘러싸고 담당부처 간 이기주의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고인 물을 썩지 않게 만든답시고 순환보직 근무를 진행하다 보니 고위직 간부는 물론 실무진까지 교체돼 정책이 멈추는 웃지 못할 사례가 숱하게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이 발전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올해 분위기는 다르다. ‘규제 샌드박스’를 본격 시행하면서다. 규제 샌드박스란 신산업ㆍ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래 놀이터처럼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해 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샌드박스라는 단어를 붙였다.

지난 2월 11일엔 ‘도심지역 수소차 충전소 설치사업’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검사(DTC) 유전체 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 ‘디지털 사이니지 버스광고’ ‘애플리케이션(앱) 기반 전기차 충전 콘센트 허가’ 등 4건이 1호 (특례)사업으로 선정됐다.

출발은 좋다. 하지만 우려가 없진 않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규제 샌드박스의 핵심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다. 분야별로 나눠서 진행하다보니 부처간 혼선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부처의 목표보다는 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쟁력 확보라는 상위 목표를 보고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는 게 시급하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4건의 1호 사업을 뽑는 데만 해도 수많은 갑론을박이 오갔다고 한다. 앞으로 특례 사업을 점차 확대할 텐데, 얼마나 많은 진통을 겪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누가 봐도 명확하게 불합리한 규제마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까 우려스럽다. 이런 식이면 융합적 혁신성장을 도모하기도 어렵고, 또 다른 규제를 양산할 가능성도 높다.

현재 한국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경기침체로 지갑을 열지 않는 국민이 수두룩하고, 글로벌 사회에는 보호무역 경계령이 울렸다. 일자리 전담 부처까지 만들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위기를 맞았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자동차 산업의 현황도 신통치 않다. 고비용 저생산 구조와 강성노조 이슈 등으로 악재만 쌓여있는 상황이다. 부디 규제 샌드박스 정책이 순조롭게 첫발을 떼 활력과 희망이 넘치는 한국 경제로 탈바꿈하는 데 시금석이 되길 바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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