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료율 인상에 숨은 불편한 진실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고용보험료율 인상이 사실상 증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고용보험료율 인상이 사실상 증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노동자와 사용자가 납부한 돈으로 만들어지는 고용보험기금. 사업은 크게 고용ㆍ일자리, 실업급여 두가지다. 이중 실업급여 계정엔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고용보험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최근 고용보험료율 인상을 추진하자 ‘사실상 증세가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실업급여 고용보험료율 인상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취재했다.

정부(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료율 인상을 추진 중이다. (실업급여) 고용보험료율을 높여 보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2017년 12월 고용보험위원회가 이런 내용을 의결했고, 지난해 4월엔 국회에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정부 방안은 현재 1.3%인 실업급여 보험료율을 1.6%로 올리는 거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0.15%씩(노동자의 급여 대비) 총 0.3%를 더 부담하게 된다. 2013년 1.1%에서 1.3%로 올린 지 6년 만이다. 인상 비율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지만 이로 인해 고용보험기금은 연간 2조원가량(2017년 인상 논의 당시 기준) 늘어난다.  

돈 더 내라는 정책을 반길 사람은 없다. “고용보험기금으로 사업을 늘렸다가 재원에 문제가 생기니까 고용보험료를 올리겠다는 것 아니냐” “보험료를 내지도 않은 이들을 위한 사업에도 기금이 들어가는데 타당하냐”는 지적들이 나온다.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고용보험기금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사업, 청년내일채움공제 기업지원금 사업,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 등을 추가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이 너무 많아 복잡하다”고 털어놨다. 기금 재정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고용보험기금 재정은 수입(10조7696억원)보다 지출(11조5778억원)이 더 많아 회계상 8082억원의 적자를 냈다.

그럼에도 “정부가 기금 사업을 잔뜩 늘려놓고 보험료율을 올린다”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기금의 사업은 크게 ‘고용안정ㆍ직업능력개발사업’과 ‘실업급여’ 두개로 나뉜다. 먼저 ‘고용안정ㆍ직업능력개발사업’의 보험료는 사용자가 전액 부담한다(사업장 규모별 0.25~0.85% 차등 부담). 정부가 늘린 사업 대부분이 이 계정에 속한다. 

반면 ‘실업급여’의 보험료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반반씩 부담한다. 사업도 구직급여ㆍ취업촉진수당ㆍ육아휴직급여ㆍ출산전후휴가급여 등이 전부다. 이번에 고용보험료율을 인상하는 이유도 실업급여를 늘리기 위해서다. 정부도 “실업급여 보장성을 더 강화하는 것”이라며 고용보장률 인상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렇다면 실업급여 계정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 실업급여 계정은 ‘밑빠진 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지 오래다. 실업급여 부정수급 문제 때문이다. ‘환수율이 평균 80%를 넘는다(2014~2018년)’는 옹호론도 있지만 따져봐야 할 게 많다. 

실업급여 보험료율 인상 문제없나

안타깝게도 환수기간 시효가 고작 3년이다. 실업급여 부정수급 형사처벌 시효(5년)보다 2년이나 짧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건데, 고용노동부는 이를 개선할 계획이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환수기간 시효 연장건을 논의한 적 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보험료율 인상이 ‘사실상 증세’라는 것이다. 실업급여 사업 중 하나인 모성보호육아지원 사업(육아휴직급여ㆍ출산전후휴가급여)의 예를 들어보자. 실업급여 사업 대부분의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이지만 이 사업에는 일반회계 전입금(세금)이 들어간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세가지다. 첫째, 정부가 세금을 투입했다는 건 그 사업이 ‘정부의 역할’에 속한다는 의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모성보호육아지원 사업은 고용노동부만의 역할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저출산 관련)에서 필요한 사업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일반회계 전입금이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달리 말하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고용보험기금에 맡겨놓고 있다는 거다. 

둘째, 해당 사업에 들어가는 일반회계 전입금의 규모다. 2011년 일반회계 전입금은 102억원에서 조금씩 늘어 2017년 907억원으로 805억원 늘어났다. 그런데 같은 기간 모성보호육아지원 사업 비용은 5092억원에서 9356억원으로 4264억원 증가했다. 모성보호육아지원 역할을 고용보험기금에 맡겨놓은 것도 모자라 재원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낸 보험료로 충당했다는 얘기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직급여 수급자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1조원 규모로 늘어난 모성보호육아지원 사업 비용 때문에 실업급여 재정이 불안해졌다. 우리가 쥐꼬리만한 일반회계 전입금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2019년 일반회계 전입금은 1400억원이다.”

셋째, 일반회계 전입금의 투입 기준이 제멋대로라는 거다. 언급했듯 모성보호육아지원 사업이 정부가 챙겨야 할 사안이라면 세금 부담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일반회계 전입금은 정부 예산의 여력, 정부의 정치적 입장, 고용노동부의 재원 조달 능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
 
원칙이 있어야 투명성도 생겨

실제로 일반회계 전입금이 일정하지 않고 고무줄처럼 들쭉날쭉했다.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를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건 사실상 증세라는 지적을 근본부터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세금을 늘리면 반발이 심하니 슬그머니 보험료율을 올린 게 아니냐는 거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원칙이 없어서 벌어지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사회보험제도를 세금으로 운영할지 보험료로 운영할지는 선택의 몫이다. 하지만 재원 충당은 다른 문제다. 사회보험에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잔뜩 떠넘겨놓고 보험료만으로 재원을 충당하라는 건 옳지 않다. 비용이 많이 드느냐 적게 드느냐를 떠나서 고용보험기금에 정부 역할을 섞어 놨다면 재원도 섞든지, 섞겠다면 확실한 원칙을 만들든지 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 살림살이에 투명성이 생기고, 세금을 더 걷든 보험료를 더 걷든 설득도 할 수 있다.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정부 정책이 신뢰를 얻기 힘들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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