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 앤 리스백’도입 논란

▲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하우스푸어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깡통주택 때문에 난리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졸지에 집을 잃고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해법이 검토되고 있다.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이다.

직장인 박찬식(가명·52세)씨는 20 08년 노모와 세대를 합치면서 남양주시 도농동에 위치한 전용면적 162㎡(약 49평) 짜리 아파트를 7억8000만원에 샀다. 역세권이어서 교통이 편리한데다 근처에 청사가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박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4억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오르던 집값은 예상과는 다르게 박씨가 매입한 뒤 하락세를 타다가 최근엔 4억원대로 떨어졌다.

박씨는 지금까지 월급의 절반을 원리금으로 지급해 왔지만 곧 은퇴를 앞두고 있어 앞일이 막막하다. 4년간 박씨가 지급한 윈리금은 8000만원이 넘는다. 게다가 은행은 담보인정비율(LTV) 초과분에 대해 원금상환을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시가보다 1000만~2000만원을 더 싸게 집을 내놓아도 수요가 없다는 점이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예상 낙찰가는 약 4억원이다. 대출금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 4년 전 구입한 집 때문에 한 푼 없이 거리로 내몰릴 형편이다.

 
주택담보대출금에 대한 원리금으로 월급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붓는 ‘하우스푸어’가 500만명에 달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수년째 꽁꽁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겠다며 양도소득세 중과세 폐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등 주택거래 활성화 방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효과가 거의 없다. 시세차익을 얻을 기대로 구입한 집이 한국경제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하우스푸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하우스푸어의 근본 원인인 부동산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하우스푸어에 대한 직접적인 구제책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 back)’방식이다.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당, 우리은행은 각각 태스크포스팀(TFT)을 조직해 세일 앤 리스백의 실효성과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하우스푸어 구하기 정책 봇물

 
세일 앤 리스백은 정부나 은행이 하우스푸어의 집을 시가보다 조금 싼 가격에 매입한 후 집을 판 사람에게 임대하는 방식을 말한다. 원 주인에게는 몇 년 뒤에 되살 수 있는 권리도 주어진다.

세일 앤 리스백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현행 방식보다 여러 면에서 하우스푸어에게 유리하다. 우선 정부나 은행이 책정하는 매입가격은 경매로 넘어갔을 경우의 낙찰가보다 높다. 또 하우스푸어는 집의 소유권을 잃게 된 후에도 살던 집을 떠날 필요가 없다. 원래 살던 집에서 월세를 내면 된다. 당장은 어렵지만 향후 여건에 따라 집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 권리가 주어지는 것도 장점이다.

새누리당이 검토하고 있는 세일 앤 리스백은 두가지 방안을 병행한다. 금융권이 공동출자하는 방식으로 배드뱅크(부실자산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기관)를 설립해 이 배드뱅크가 하우스푸어의 주택이나 주택담보대출채권을 매입하는 방안과 공적기관이 부실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사들이는 방안이다. 매입 주체가 될 공적기관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금융공사등이 거론되고 있다.

우리금융의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은 조금 더 복잡하다. 하우스푸어가 처분신탁으로 집을 맡기고 현재 시가에서 대출금을 제외한 잔액의 50%를 현금으로 받는다. 나머지 50%에 대해서는 신탁지분을 받게 된다. 이 후 집값의 5% 정도를 은행에 임대료로 내고 그 집에서 그대로 지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시가 1억원 짜리 주택을 담보로 7000만원을 대출 받은 하우스푸어가 세일 앤 리스백을 신청하게 되면 1억에서 대출금 7000만원을 제하고 남은 3000만원의 절반인 1500만원을 현금으로 받는다. 이 후 연 500만원의 임대료를 은행에 지불하고 살던 집에 계속 살 수 있다. 나머지 1500만원에 대해서는 신탁지분을 받는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집값이 7000만원 이하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손해를 보지 않고 매달 임대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또 대출금의 20%에 해당하는 법정 대손충당금도 환입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1억원의 집이 7000만원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우리금융 경영연구소 김홍달 상무는 “철저히 상업적 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시중은행과 하우스푸어가 윈윈할 수 있다”며 “하우스푸어의 매물이 쏟아져 집값이 하락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이 성과를 내면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원금상환 부담이 없어진 하우스푸어의 구매력이 높아지면 소비가 늘어 경기회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도 줄어들 전망이다.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소지도 있다.

하지만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을 도입하려면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무엇보다 매입가격 결정이 쉽지 않다. 매입가격이 높으면 금융권이나 재정에 무리가 따른다. 150만 가구로 추정되는 하우스푸어 가구 중 10%만 구제하려 해도 (평균 집값을 1억으로 잡으면) 15조원이 필요하다. 또한 집값이 매입가격보다 떨어지면 재정이 부실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매입가격이 낮으면 매입에 응하는 하우스푸어가 없을 게 불보듯 뻔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도 정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에 허덕이는 이들을 뭉뚱그려 하우스푸어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진짜 ‘푸어’를 선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모럴 해저드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가령 연체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빚을 갚을 수 있는 형편임에도 혜택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환을 미루는 이들이 속출할 게 뻔하다.

무주택자 소외시키는 정책이란 비판도

형평성 문제도 있다. 최근 전세자금 대출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급등한 전세값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이 늘면서 ‘렌탈푸어’ ‘하우스리스푸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무주택 서민을을 위한 재정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세차익을 노리고 집을 구입한 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 주어지는 환매권리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집값이 오르면 되사고, 하락하면 사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은 특혜라는 주장이다. 정부가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의 도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권은 9월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제회의에서 “세일스 앤 리스백의 세부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아서 평가하기 어렵다”면서도 “실제로 어느 정도의 규모로 실행할지, 매입금액이 얼마나 될지를 정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할 문제”라고 말했다.

심하용 기자 stone @ thescoop.co.kr |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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