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관제 스튜어드십’ 논란 차단할 독립성ㆍ전문성 갖춰야
[양재찬의 프리즘] ‘관제 스튜어드십’ 논란 차단할 독립성ㆍ전문성 갖춰야
  • 양재찬 대기자
  • 호수 322
  • 승인 2019.04.01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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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 훼손 오너 퇴출, 대한항공 사태 
대한항공 사태로 도래한 ‘주주행동주의 시대’는 투명성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 사태로 도래한 ‘주주행동주의 시대’는 투명성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사진=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다.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필요한 찬성표를 얻지 못한 것이다. 대기업 대표, 그것도 오너 일가가 자발적 판단이 아닌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로 사실상 경영권을 잃는 첫 사례다. 조 회장은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겠지만, 이사회 참석 등 공식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게 됐다.

조 회장의 이사직 박탈에는 국민연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어 격론 끝에 조 회장의 연임 반대를 결정했다.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평가대로 대한항공 사태는 기업가치를 훼손한 대주주 전횡에 경종을 울렸다. 조양호 회장 가족은 ‘땅콩 회항’ ‘갑질 폭행’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조 회장 본인도 납품업체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받는 등 270억원대 횡령ㆍ배임 등 혐의로 기소됐다. 오너 일가의 비리와 부도덕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캐나다연금 등 해외 공적연금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도 등을 돌린 배경이다. 

한국에도 이제 ‘주주행동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오너라도 도덕성이나 경영능력에 문제가 있으면 자리를 보존하기 어려워졌다. 기업의 부당지원, 경영진의 사익 편취, 과도한 임원 보수 등 문제가 될 만한 사안들에 대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면 자본시장에도 변화가 일 것이다. 기업들은 달라진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주주들이 원하는 투명경영을 해야 한다. 

조양호 회장이 대표이사 연임에 실패한 이튿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물러났다. 조 회장이 주총에서 표 대결 끝에 밀려난 마당에 회사 경영이 악화한 아시아나항공도 총수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내 양대 항공사 오너가 경영악화와 신인도 하락에 책임지고 동반 퇴진하게 됐다.  

오너가 물러나자 주식시장에서 두 기업의 주가는 올랐다. 시장이 오너 회장의 연임 실패와 퇴진을 그룹 계열사 체질 개선의 전기로 받아들였음이다. 외신들이 “재벌의 기업 지배구조 문화에서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한 배경이다.  

그렇다고 반길 일만은 아니다. 대한항공 사태는 법원의 확정판결 이전이라도 국민연금이 나서면 개인의 일탈이나 범법행위 등 꼬투리를 잡아 경영권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국민연금 지분이 많은 기업들로선 신경이 쓰일 수 있다. 자사주 매입 등 경영권 방어에 신경을 쓰며 투자나 고용을 소홀히 하는 부작용을 빚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기업경영 간섭을 천명해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나섰다. 올 1월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에서 “탈법과 위법을 한 대기업 대주주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주문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를 위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화답했다.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97개. 이들을 포함한 상장사 오너들 입장에선 정권에 밉보이면 경영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며 불안해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보다 신중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입장문을 낸 배경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제도를 바꿔야 한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20명 중 5명이 현직 장ㆍ차관이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당연직이다.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검토하는 수탁자책임위원회 위원 14명도 기금운용위원회 추천을 받아 복지부 장관이 위촉한다. 정부와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구조다. 

자산규모 기준 해외 5대 연기금의 위원장은 기업ㆍ학계 전문가가 맡는다. 일본ㆍ캐나다ㆍ네덜란드 연기금 이사회 내 정부 인사는 한명도 없다. 모두 경제ㆍ금융ㆍ연기금 전문가이거나 기금을 조성하는 사용자ㆍ노동자 대표로 구성된다. 

주주의 주주권 행사는 보호돼야 한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정당한 평가를 받으려면 기금운용위와 수탁자책임위부터 균형있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특정기업 손보기 등 관제 스튜어드십 코드 논란을 피할 수 있다. 640조원 규모의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세계 3대 연기금답게 기금 운용이나 기업 의결권 행사에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서둘러 갖춰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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