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원전서 날아온 항의서한의 의미

한국수력원자력이 ‘정기인사’를 이유로 UAE 바라카 원전에 파견돼 있던 직원을 교체했다. 발주처인 아랍에미리트원자력에너지공사(ENEC), 계약주체인 한국전력도 까맣게 모르는 일이었다. ENEC 측은 이 문제를 김종갑 한전 사장에게 서한을 보내 공식적으로 따졌다. 한수원 측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지만 논란의 여지가 숱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UAE 원전에서 날아온 항의서한의 의미를 취재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무통보 인력 교체로 한국전력에 아랍에미리트원자력에너지공사의 항의 서한이 전달됐다.[사진=뉴시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UAE 바라카 원전에 파견됐던 원전 기술자들을 발주처(아랍에미리트원자력에너지공사·ENEC)와 국내 주계약자인 한전과 협의도 없이 교체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알 하마디 ENEC 사장은 한수원의 예고 없는 인력 교체를 이유로 김종갑 한전 사장에게 ‘항의서한’까지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참고: 바라카 원전 공사의 계약자는 한전KPS와 한수원이고, 주계약자는 한전이다.]

이 서한에서 알 하마디 사장은 “예고도 없이 우수인력을 교체했다는 것에 놀랐다”면서 “한수원의 일방적 결정으로 빠진 우수인력 문제를 (한전이) 빠르게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한수원 관계자는 “ENEC와의 오해는 모두 풀렸다”면서 “원전에서 제외했던 우수인력도 다시 배치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한수원 측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바라카 원전은 우리나라가 해외에 수출한 첫번째 한국형 원전이다. 건설이 끝난 1호기는 시운전을 마쳤고, 2~4호기는 건설 완료를 앞두고 있다. 4호기 건설계약만 20조원, 운영계약과 부품수출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90조원에 이를 정도로 경제적 효과가 크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도 바라카 원전을 ‘국가적 사업’으로 다루고 있다.

지난 2월 UAE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를 만나 ‘바라카 1호기 연료장전·시운전·운영을 위한 협력 선언문’을 채택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점에서 한수원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UAE 측이 ‘항의서한’까지 발송됐다면 허투루 넘길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장기정비계약(LTMA) 수주를 앞둔 중요한 시기다.

바라카 원전 1~4호기를 건설하거나 건설 중인 우리나라가 정비까지 맡는다면 2조~3조원(10~15년간)대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알 하마디 사장이 항의서한에서 “한수원이 원전인력을 맘대로 뺀 시기는 LTMA 입찰이 진행 중이던 중요한 때였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왜 독단적으로 인력을 교체했느냐다. 한수원 측은 이렇게 답했다. “인력 교체는 내부문제였다. 정기인사의 기준은 내규內規이기 때문에 다른 기관이나 회사에 통보할 이유가 없다. UAE 측과 체결한 계약에 그런 내용이 명시된 것도 아니다.” 바라카 원전이 제아무리 국가적 사업이더라도 ‘내규’가 그러니 통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애매한 답이다. 언급했듯 바라카 원전의 운영권은 한전KPS와 한수원이 갖고 있다. 원전 인력의 교체 사실을 UAE 측에 알리는 건 기본이다. 내년에 바라카 원전의 상업 운전을 시작해야 하는 ENEC도 한수원의 인력 운용 방식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전 사장이 항의서한 받은 이유

더 큰 문제는 컨소시엄의 주계약자인 한전이 항의서한을 전달받을 때까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점이다. 한전 관계자는 “인력 교체와 관련해 한수원으로부터 통지 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말을 이었다. 한전 역시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1월에 이미 오해가 풀리고 해소된 일인데, 이제 와서 이런저런 의무관계를 따져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자세한 건 한수원에 물어보라.”

작은 건설 현장에서도 핵심 인력이 바뀔 땐 발주처에 알려준다. 정부사업이든 민간사업이든 다르지 않다. 바라카 원전이 국가적 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전과 한수원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발주처에 일언반구도 없이 현장을 지휘하는 인력을 교체하는 일은 작은 현장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인사 문제는 사장 고유의 권한이지만 발주처에 예고도 없이 인력을 바꾸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김종갑 한전 사장에게 전달된 항의서한을 가장 먼저 입수한 A의원실의 관계자는 “내부 규정에 따른 인사라지만 한수원 안팎에서 이런 저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 “한수원 내부 인사 문제 때문에 바라카 원전에 파견된 인력들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 통보도 없이 인력을 뺀 이 문제가 바라카 원전 LTMA 계약에 영향을 미친다면, 책임 소재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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