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남 지브라테크놀로지스 한국 지사장

유통산업이 IT와 만나 한단계 도약을 꾀하고 있다. 밤에 고른 메뉴가 아침 식탁에 오르는 건 이제 신기한 일도 아니다. 완전한 무인매장을 준비 중인 기업도 여럿이다. 우리가 마주할 유통의 미래는 과연 편리하기만 한 것일까. 우종남(52) 지브라테크놀로지스 한국 지사장은 “혁신은 분명 좋지만 고용감소와 기술 양극화는 우리가 곰곰이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우 지사장을 만나 4차 산업혁명과 유통혁신의 방향을 물었다.  

우종남 지사장은 “중소기업을 위한 IT 솔루션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고 강조했다.[사진=천막사진관]
우종남 지사장은 “중소기업을 위한 IT 솔루션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고 강조했다.[사진=천막사진관]

고객이 유통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CCTV가 고객의 동선을 파악하고 고객이 집어든 상품에 탑재된 바코드를 촬영한다. 고객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아도 상품을 자동으로 결제한다. 미래에나 가능할 법한 풍경 같지만, 현재 유통업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백화점ㆍ쇼핑ㆍ마트ㆍ편의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기업이 기술 혁명에 드라이브를 거는 중이다.

글로벌 기업 지브라테크놀로지스(지브라) 역시 이런 혁명에 기여하고 있다. 지브라는 상품ㆍ물류를 관리할 수 있는 러기드 스마트폰(Rugged Smartphoneㆍ강력한 내구성을 가진 스마트폰), 바코드 스캐너, 산업용 프린터 등을 취급하는 B2B 전문기업이다.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지브라의 영향력은 적지 않다.

글로벌 매출이 4조원을 훌쩍 넘겼고, 국내에서도 제품 대부분이 업계 수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앞서 언급했던 무인 매장 솔루션도 지브라의 작품이다. 우종남 지브라 한국 지사장은 현장에서 이런 치열한 고민들과 맞부딪치는 IT 솔루션 전문가다. 그가 바라본 한국 유통기업들의 미래는 어떨까.

✚ 유통업계가 기술혁신으로 분주하다. 성과가 있다고 보는가.
“제품이 고객 현관 앞까지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만 봐도 그렇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새벽배송, 당일배송은 꿈같은 일이었다.”

✚ 단지 ‘빨라졌다’에 그치는 게 아닌가.
“배송시간 단축엔 함의가 크다. 트럭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관건은 상품을 보내는 물류창고인데, 사람의 직관이 재고를 관리하던 시기에는 배송시간 30분을 단축하는 데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지금은 축적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 상품 적재부터 재고관리ㆍ포장ㆍ출하ㆍ배송 등의 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시스템인 ‘풀필먼트(Fulfillment)’가 유통업계의 대세가 됐다. 아마존에서 시작된 물류혁명이 한국에서도 본궤도에 오른 셈이다.”

✚ 실제로 국내 많은 기업이 아마존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아마존을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면적 차이는 어마어마하지만, 한국 유통기업들의 배송 속도는 아마존만큼 빠르지 않은가.”

✚ 그런데도 우리나라 유통산업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기술은 파괴력이 세다. 당장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것들이다. 기업도 그런 기술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문제는 이런 기술은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이다. 고객들의 기대와 현실의 기술에 늘 간극이 있는 이유다. 어쩌면 지브라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무슨 말인가.
“직장인이라면 하루에 열번쯤은 우리 제품을 만난다. 편의점에서 제품을 사고 바코드를 찍을 때나, 카페에서 마일리지를 적립할 때가 대표적이다. 수많은 물류창고 현장이나 매장에서 지브라의 이름을 만날 수 있지만, 우린 깜짝 놀랄 만한 기술을 만드는 곳은 아니다. 소비자가 늘 겪는 작은 불편사항을 하나씩 해소하는 데 집중한다. 이런 사소함도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 혁신엔 그림자도 있다. 고용감소가 대표적인데.
“유통업계가 기술 발전에 따른 고용감소의 직격탄을 맞을 거란 의견엔 동의한다. 하지만 무인화는 트렌드이고, 비대면 서비스가 확산되는 건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감소율을 두고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나는 고용이 절망적으로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쪽이다.” 

✚ 왜 그런가.
“기업이 IT 혁신을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아니다. 제품을 많이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다. 그런 관점에선 여전히 사람의 손길로 소비자를 유혹해야 할 영역이 많다. 인건비 절감으로 수익을 개선하자고 고용을 무차별적으로 줄일 순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지브라 본사가 발표한 ‘2019 글로벌 쇼핑객 비전 연구 보고서’는 흥미롭다.”

✚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고객들이 온라인 쇼핑보다 매장 쇼핑에서 더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매장 내 쇼핑을 더 선호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다. 아울러 많은 고객이 매장 직원들도 스마트 디바이스를 적극 활용하길 원하고 있었다. 아무리 신통한 무인매장도 ‘인간다운 소비’가 주는 희열과 만족을 쉽게 넘어설 수는 없다.”

✚ 고객이 ‘인간다운 소비’를 원하기 때문에 고용이 절망적으로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건가. 
“그렇다. 무인매장 등 유통혁신의 부작용을 두고 ‘고용감소’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 그게 뭔가.
“유통혁신의 이점을 대기업만 누리고 있다는 거다. 유통 대기업은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자체적으로 TF팀도 만들면 된다. 외부의 걸출한 IT기업과 협업하는 것도 쉽다. 그런데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은 어떤가. 당장 기술혁신의 근간이 되는 빅데이터만 해도 언감생심이다. 이들이 모인 데이터를 두고 AI로 분석하고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하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결국 기술발전이 업계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거다.”

✚ 해결 방법은 없나.
“IT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브라 한국지사가 최근 소규모 책방이나 유통기업에도 IT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건 그런 맥락이다. 이들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경영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 끝으로 한국 유통업계에 조언을 한다면.
“혁신과의 전쟁은 거의 모든 산업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통기업은 고객과의 접점이 많은 영역이다. 기술의 장단점이 확연히 드러나게 될 공산이 크다. 이를 잘 추려 생태계 구성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혁신이 되길 바란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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