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동산 신탁사와 메기 역할

부동산 신탁시장에 새로운 참여자가 생겼다. 금융위원회가 증권사 3곳에 신규 부동산 신탁업 예비인가를 내주면서다. 그러면서 그들에 ‘메기’ 역할을 주문했다. 이들은 과연 금융당국의 주문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의견은 분분하다. 일부에선 혼탁한 시장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따가운 지적도 나온다. 혼탁한 물에선 제아무리 팔팔한 메기도 맥을 못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새로운 부동산 신탁사의 역할을 취재했다. 

부동산 신탁업이 증권사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리스크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사진=뉴시스]
부동산 신탁업이 증권사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리스크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사진=뉴시스]

“부동산 신탁시장의 ‘메기’가 될 수 있도록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구축ㆍ운영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부동산 신탁회사가 출범할 수 있도록 본인가 심사를 철저히 하고, 부동산 신탁사의 건전성도 차질 없이 관리해 달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3일 신영증권(신영자산신탁), 한국투자금융지주(한투부동산신탁), 대신증권(대신자산신탁)에 부동산 신탁업 예비인가를 내주면서 각 기업과 금감원에 당부한 말이다.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신규 부동산 신탁업 자격을 내주는 이유를 분명히 적시한 셈이다.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신규 참여자를 시장에 풀어 서비스경쟁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거다. 

부동산 신탁업은 최근 높은 수익을 올려 금융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일례로 2017년 기준 11개 부동산 신탁사의 영업수익(매출)은 1조325억원, 영업이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6705억원, 5047억원(영업수익 대비 수익률 48.9%)이었다. 5년 전인 2012년보다 2.63배, 4.47배, 4.46배 올랐다. 부동산 신탁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모두 수익률이 크게 향상됐다. 부동산 신탁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는 이유다. 

물론 금융당국이 부동산 신탁사들의 호실적만을 이유로 경쟁을 부추기겠다고 한 건 아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금융산업경쟁도평가위원회를 통해 부동산 신탁업 경쟁도를 평가했다. 해당 위원회는 지난해 9월 내놓은 평가 보고서에서 “2009년 이후 약 10년간 신규 진입이 없었고,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는 다른 업권(은행ㆍ보험사ㆍ증권사ㆍ카드사 등)에 비해 매우 양호하며, 정량지표로 판단한 경쟁도 역시 다른 업권보다 낮은 수준”이라 분석하면서 “정량지표와 가격ㆍ비가격경쟁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장집중도와 경쟁도를 분석한 결과, 부동산 신탁업은 경쟁이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금융위가 부동산 신탁이라는 새 ‘메기’를 시장에 풀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요한 건 신규 참여자들이 메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다. 일단 이해관계가 있는 증권사들은 긍정적이다. “부동산 신탁업 자격을 얻으면 ‘차입형 부동산 신탁(부동산 신탁사가 직접 자금을 조달하고 부동산을 개발하는 것)’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사업구조를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김형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침체기라 해도 개발을 원하는 토지주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개발 모델만 잘 만든다면 수익을 낼 수 있다”면서 “그동안 주거용 개발에만 치중한 결과, 주택시장 침체에 타격을 입었지만 사실 맘먹고 개발을 하려 하면 상가나 오피스텔ㆍ공장ㆍ리츠(REITs) 등 다양한 사업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행동반경을 넓혀 놓으면 다양하게 머리를 굴려볼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그렇게 된다면 경쟁에 의한 서비스 개선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노림수는 차입형 부동산 신탁

그렇다고 긍정론만 있는 건 아니다. 차입형 부동산 신탁업은 고수익ㆍ고위험의 전형이다. 2017년 기준 부동산신탁사 11곳이 신탁보수 업무로 받은 수익 총액은 6887억원. 이 가운데 차입형 토지신탁을 통한 보수는 4339억원(63.0%)이다. 2012년(1248억원)보다 3.47배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부채 역시 5075억원에서 1조5974억원으로 3.14배 늘었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는 48.9%에서 66.7%로 높아졌다.

금융위원회가 새 참여자의 ‘차입형 부동산 신탁 업무’를 2년간 유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스크가 큰 만큼 경험을 쌓고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차입형 부동산 신탁의 리스크가 워낙 큰 만큼 ‘2년 유예’와 별개로 새 참여자들이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딱 봐도 분양이 잘 될 것 같은 곳은 투자자가 넘친다. 리스크도 적다. 문제는 차입형 토지신탁의 경우, 매력도가 낮은 토지에서 부동산 신탁사가 위험부담을 안고 진행하는 사업이라는 점이다. 주로 지방에 집중돼 있고, 위치도 애매한 토지들이 많다. 시행 관리를 잘못해서 분양에 실패하면 그대로 손실로 이어진다. 그래서 수수료도 높은 거다. 증권사들의 펀딩 노하우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시행 관리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메기’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 날카로운 지적도 있다. 부동산 신탁시장이 혼탁하기 짝이 없는데 새 참여자의 등장만으로 활기가 감돌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신탁사가 주택을 지어 분양하는 과정에서 수분양자의 원성을 산 게 한두번이 아니다. 주로 분양사기와 관련이 많은데, 다음과 같은 구조를 통해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부동산 신탁사가 시행사로 나서고, 그다음에 분양대행사를 선정한다. 분양대행사는 수분양자들에게 “대금을 분양대행사로 보내라”고 말한다. 일부 잘 모르는 이들이 분양대행사 계좌에 입금을 하면 분양대행사는 돈을 가로챈다. 부동산 신탁사는 수분양자에게 ‘돈을 잘못 줬으니 권리가 없다’면서 내쫓는다. 수분양자는 돈도 잃고 집도 잃는다. 

부동산 신탁사 모럴해저드 막아야

불법을 저지른 분양대행사 대표가 다행스럽게도 잡히면 쇠고랑을 찬다. 하지만 부동산 신탁사는 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분양대행사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선정한 잘못도 있을 법한데, 현 제도는 부동산 신탁사에 책임을 거의 묻지 않는다. 부동산 신탁업이라는 것 자체가 ‘위탁사무’이고, 적극적으로 뭔가 하라는 규정이 없어서다. 

부동산 신탁사를 둘러싼 수분양자 피해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익명을 원한 부동산 신탁업계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신탁사가 분양대행사 등과 손잡고 의도적으로 시장을 무너뜨리려 한다면 이를 사전에 막을 장치가 없다”면서 “부동산 신탁사 신규 진입도 좋지만 금융당국은 시장 정화를 위한 시스템부터 효과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메기 효과’는 기대만큼 좋은 실적을 낸 적 없다. 그만큼 시장에 새롭게 참여자가 생태계를 흔들 확률은 높지 않다. 부동산 신탁업을 새롭게 받은 증권사 3곳은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까. 시장엔 기대만큼 우려도 많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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