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ㆍ성능ㆍ기술… 중국은 어디까지 왔나

‘차이슨(Chison)’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가. ‘다이슨 부럽지 않은 가성비를 갖춘 중국산 가전제품’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런 차이슨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수입액도 매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중국 제품이 이렇게나 괜찮았나”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현상을 과연 ‘대륙의 실수’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차이슨에 숨은 의미를 취재했다.  

중국산 가전제품들이 국내 시장을 빠른 속도로 점령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중국산 가전제품들이 국내 시장을 빠른 속도로 점령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대륙의 실수 ‘차이슨(Chison)’.” 요즘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가전제품을 검색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제품 홍보문구다. 차이슨은 ‘중국(China)’과 명품 가정용 청소기로 유명한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DYSON)’의 합성어다. 쉽게 말해 ‘다이슨을 모방한 중국산 가전제품’을 의미한다. 디자인도 다이슨 제품과 매우 흡사하다. 

주목할 점은 겉모양이 비슷하다고 차이슨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거다. 차이슨이라는 말에는 ‘다이슨 부럽지 않은 가성비를 가진 중국산 가전제품’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시장에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있다는 건데, 오픈마켓에 올라온 차이슨 제품 사용 후기를 보면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의외로 많다. 인터넷엔 차이슨 제품 사용 영상들도 꽤 많이 올라와 있다. ‘대륙의 실수’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다이슨보다 품질이 낫다는 건 아니다. 가성비가 훌륭하다는 거다. 차이슨보다 6~7배가량 비싼 다이슨 제품을 20년 쓰는 것과 차이슨 제품을 3년씩 교체하면서 사용하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는 논리다. 차이슨 제품을 3년 이상 쓰면 되레 득得이라는 말도 나온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강하게 불신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그 덕분인지 판매량도 늘고 있다. 다이슨 청소기를 그대로 베낀 듯한 디베아 청소기가 대표적이다. 디베아 한국 공식 총판업체인 욜로닉스의 관계자는 “2018년 기준으로 모델별 월간 판매량을 따져 보면 연초 3000여대에서 연말 7000여대로 2배가량 늘었다”면서 “공식 총판 외에 다른 경로로 수입ㆍ판매되는 제품까지 합하면 판매량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만큼 추세로 볼 때 판매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쯤되면 ‘차이슨 돌풍’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늘어나는 차이슨 제품 수입액

주목할 점은 또 있다. 차이슨 돌풍이 ‘대륙의 실수’에서 비롯된 우연한 결과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업계의 일부 관계자들은 ‘대륙의 실수’가 아닌 ‘대륙의 실력’이라고 말한다. 차이슨이 ‘대륙의 실수’라면 중국산 가전제품 판매 증가는 일부 제품에서만 나타나야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014~2018년 5년간 한국이 수입한 중국산 가전제품은 전 품목에서 꾸준히 늘었다. 

관세청이 집계한 같은 기간 대중對中 가전제품 수입액을 살펴보면, TV는 1억4964만 달러에서 4억939만 달러(증가율 173.6%), 냉장고는 3001만 달러에서 1억6819억 달러(460.4%), 에어컨은 7654만 달러에서 2억6593만 달러(247.5%), 진공청소기는 3137만 달러에서 1억1486만 달러(266.22%)로 늘었다. 국내에서 중국산 가전제품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과거와 달리 가격 대비 질이 향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제품의 질은 그냥 좋아졌을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직도 가격만 싸고 품질은 엉망이던 ‘메이드 인 차이나’를 떠올린다면 큰 오산이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인수ㆍ합병(M&A)과 기술제휴 등을 통해 빠르게 기술력을 개선했다. 제품질이 향상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현재 한국 가전업체와 기술격차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최근 몇년간 중국 가전업체들은 글로벌 가전 브랜드들을 빠르게 집어삼켰다. 중국 종합가전업체 하이얼은 일본 산요와 파나소닉의 가전부문(2012년)을 비롯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GE의 가전부문(2016년)까지 집어삼켰다. 올해 1월엔 이탈리아 가전업체 캔디를 인수했다. 캔디는 산하에 다이슨보다 더 오래된 영국 가전브랜드 후버를 갖고 있다. 

매출 기준으로는 세계 최강 가전업체인 메이디그룹은 일본 도시바 백색가전부문을 인수했다(2016년). 또한 세계 2위 산업용 로봇업체인 독일의 쿠카를 인수(2016년), 제품 생산효율성을 끌어올렸다. 중국 내 TV판매 1위 업체인 하이센스는 샤프 멕시코 공장 인수(2015년), 도시바 TV부문 인수(2017년) 등을 통해 기술을 축적했다.

또다른 TV제조사 스카이워스는 2015년 TV와 세탁기를 생산하는 도시바 인도네시아 공장과 독일 TV제조사 메츠를 사들여 몸집을 키웠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가전업체들을 중국 기업들이 싹 먹어치운 셈이다. 중국 가전제품들이 차이슨이라는 이름으로 활개를 치는 밑바탕에는 어마어마한 자본투자가 있었다는 얘기다. 

IoT로 가전시장 재편 노림수

이쯤에서 생각해 볼 게 있다. 몸집을 키운 중국 가전업체들이 한국만을 노리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베이징 지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중국의 가전제품 제조기술은 국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하지만 통신기술과 사물인터넷(IoT) 기반 인식기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관련 기술 분야에서는 매우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가전산업 성장 잠재력은 매우 풍부하다.” 

 

중국 디베아 청소기가 ‘차이슨 청소기’라는 별칭으로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디베아 제공]
중국 디베아 청소기가 ‘차이슨 청소기’라는 별칭으로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디베아 제공]

중국 가전업체들이 IoT와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 가전업체의 브랜드 경쟁력은 삼성전자ㆍLG전자보단 훨씬 뒤처져 있지만, 대신 새로운 기술특허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4~5년 전 업계에선 이런 분석이 나왔다. “한국 가전산업은 중국의 가성비, 독일이나 일본의 기술력과 품질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지금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졌다. 가성비와 기술력, 품질에 4차 산업혁명 기술까지 겸비한 중국이 우리의 시장점유율을 갉아먹을 태세다. 차이슨은 이미 ‘중국제품의 무덤’이라는 한국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차이슨 돌풍’을 예사롭게 봐선 곤란한 이유다. 몸을 풀던 중국이 깃발을 들었다. 다음은 진격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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