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업체만 아는 ‘착한 PB’의 갑질
영세업체만 아는 ‘착한 PB’의 갑질
  • 고준영 기자
  • 호수 332
  • 승인 2019.04.07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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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과 PB상품은 착할까
프로모션 강요하는 유통사
요구 거절하면 매대 밀려
PB 이면엔 단가 후려치기
유통사의 할인행사로 인한 손실부담은 제조사가 떠맡는 경우가 많다.[사진=연합뉴스]
유통사의 할인행사로 인한 손실부담은 제조사가 떠맡는 경우가 많다.[사진=연합뉴스]

경기침체로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통사의 할인행사와 가성비를 높인 PB제품은 소비자들로부터 환영을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좋아해야 할 일인지는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유통사가 가격을 낮추는 이면에는 제조사들의 아픔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할인행사와 PB제품의 이면을 살펴봤다.

가격할인ㆍ원 플러스 원(1+1) 등 프로모션은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유통사들이 가장 만만하게 꺼내드는 마케팅 전략이다.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얻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높은 물가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회다. 마트ㆍ편의점을 비롯한 각종 유통채널에서 이런 프로모션을 흔히 진행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프로모션이 착하기만 한 건 아니다. 언뜻 인심이 후한 유통사들의 친親소비자 전략쯤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유통사들의 이익은 보전하고, 손해는 제조사들에 떠넘기는 갑질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제조업체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유통사들의 강요에 따라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하는데, 그에 따른 손해는 대부분 제조사에 전가된다.

육류가공식품을 만드는 한 제조업체 영업직원의 말을 들어보자. “유통사들이 할인이나 원 플러스 원 행사를 요구하는 제품은 대부분 이익률이 3~5% 정도로 낮은 인기 제품이다. 유통사가 이 제품군(냉동식품)에서 가져가는 마진율은 약 25%다. 그렇다면 유통사도 마진을 낮춰 부담을 덜어주면 좋겠지만 기껏해야 1~2% 낮추는 게 전부다. 물량을 많이 빼주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발주물량을 확실하게 얘기하지 않는 경우도 많을뿐더러, 이 경우엔 팔면 팔수록 마이너스다.”


 

할인행사를 진행하면 유통사는 매출이 늘지만 제조사는 되레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제조사가 유통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당 제조사의 신제품을 받지 않는다거나, 오프라인 진열대를 구석으로 밀어내는 식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다. 

힘이 없는 중소 제조업체일수록 피해는 크다. 또다른 가공식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마트에 갔는데 농심라면이 없으면 어떨지 생각해봐라, 메이저 제조사는 피해를 덜 당한다”면서 “문제는 메이저 제조사에서 손해를 본 마진을 중소 제조사의 단가를 후려치면서 채운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통사의 부당한 갑질은 그뿐만이 아니다”면서 “예전엔 유통사가 제조사로부터 판매장려금을 받았는데, 이게 문제가 되자 마진율에 더해서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유통사들은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6%를 떼어갔다. 가령, 월말에 유통사가 제조사에 지불해야 할 돈이 100만원이라면 6%를 뗀 94만원만 줬다는 얘기다. 하지만 판매장려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실상 금지가 됐고, 대신 그만큼 마진율이 올라갔다. 이를테면 기존에 유통사가 가져가던 마진율이 25%였다면 이젠 31%가 됐다는 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아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PB(Private Brand) 상품의 이면에도 유통사의 갑질이 도사리고 있다. 유통사들이 우월한 시장 지위를 이용해 하청 제조사들의 단가를 부당하게 깎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중소기업벤처부는 지난 2년간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가 PB상품을 납품하는 제조사에 입힌 피해액이 10억원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진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연구보고서 ‘PB상품 전성시대, 성장의 과실은 누구에게로 갔나?’라는 보고서에서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 제조사들의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유통사들이 PB상품을 통해 유통마진은 높이고, 제조사들의 제조이익률은 낮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 제조사와 중소 제조사가 PB상품 제조를 통해 버는 이익률은 각각 15.5%, 10.7%였다. 제조사 자체브랜드(NBㆍNational Brand)의 이익률이 11.0%와 13.0%였으니, 대형 제조사는 혜택을 본 반면 중소 제조사는 되레 수익이 악화된 셈이다.

유통사의 유통마진은 중소 제조사 기준 약 30%(NB상품)에서 34.4%(PB상품)로 높아졌다. 더구나 유통사들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합리적 이유도 없다. 대다수 PB상품은 기존 상품의 특성을 조금 변형(51.8 %)했거나, 포장만 바꾼 경우(26.2%)이기 때문이다. 

PB상품이 NB상품의 대체 상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PB상품 시장이 커질수록 중소 제조사들의 실적은 악화할 공산이 크다. 이는 눈앞에 닥친 문제다. PB상품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이마트의 노브랜드 매출이 2015년 230억원에서 2017년 2900억원으로 훌쩍 늘어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지난해 11월 대형 유통사들은 PB상품 생산 과정에서 하청 제조사들의 단가를 부당하게 깎았다는 지적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대형 유통사들은 PB상품 생산 과정에서 하청 제조사들의 단가를 부당하게 깎았다는 지적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한 할인행사 요구와 PB상품을 통한 단가 후려치기. 문제는 이런 불공정한 갑질 행위가 쉽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유통업의 구조가 대형 유통사 위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유통사들의 소매점포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통사와 제조사들의 시장 지위 불균형 문제도 더 커질 수 있다. 

이진국 연구위원은 “제조업체는 소매시장 지배력을 더 많이 확보한 유통업체에 납품해야 할 유인이 높아지고, 유통업체는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제조업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면서 “이런 변화가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 지위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할인행사와 가성비 높은 PB상품, 가격이 저렴하다고 ‘착한상품’인 건 아니다. 그 이면엔 서글픈 갑을 관계가 숨어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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