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의 사라진 권리

어렵게 국제 결혼한 다문화가정들. 잘 살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숱하게 많다. 문제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다문화가정 여성의 경우,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이들을 제약하는 장치들이 워낙 많아서다. 그들이 알아야 할 법적 구체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와 변호사닷컴이 답을 찾아봤다.

다문화가정 여성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사는 경우가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문화가정 여성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사는 경우가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혼자서 살아갈 일도 막막한데 애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양육권은 포기했어요. 재산분할이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죠. 그냥 이혼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고, 뭘 요구할 수 있는 줄도 몰랐어요.” 한국인과 결혼해서 15년 가까이 살다가 지난해 이혼한 몽골 여성 A씨가 법률상담을 받으러 왔다가 털어놓은 한탄이다. 

A씨는 결혼 후 가정부처럼 일만 했다고 한다. 경제권은 남편이 다 갖고 있었고, 약간의 생활비만 타서 쓰는 게 전부였다. A씨는 그런 생활도 별 상관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폭력은 참을 수 없었다. A씨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지난해 합의 이혼했다. 

문제는 A씨가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무런 재산분할도 못 받았다는 거다. 남편은 A씨의 명의로 된 보험을 해약해 해약금까지 챙겼다. 남편이 보험료를 내왔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집에서 가정부처럼 일만 해서 세상물정을 전혀 몰랐다”면서 “내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하다”고 말했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들을 가진 다문화가정 여성은 한둘이 아닐 거다. 실제로 배우자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뭘 해야 되는지 모르거나 혼자서 막막한 상황에 처할 것을 걱정해 이혼조차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혼을 하겠다고 굳은 마음을 먹는다 해도 말 못할 고충이 많다. 말이 잘 안 통하는 건 둘째치고, 외모만으로도 차별이 심한 한국에서는 혼자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어서다. 자칫하면 이혼과 동시에 한국을 영영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A씨는 결혼생활을 했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혀 본국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현행법상 외국인이 혼인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2년 이상 계속해서 한국에 주소가 있는 경우’ 혹은 ‘혼인한 후 3년이 지나고 혼인한 상태로 1년 이상 계속해서 한국에 주소가 있는 경우’여야 한다. 결혼 후 ‘일정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재갈 물고 있는 다문화 여성

이처럼 다문화가정의 여성을 옥죄는 규제는 숱하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구제책은 거의 없다. A씨의 경우를 따져보자. 이미 합의이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혼한 날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A씨는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가 없어야 한다. [※참고 : 여기서 협의란 이혼이 전제됐다는 걸 서로 인지하고, 강압 등이 없이 증빙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출된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원은 협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혼을 전제하지 않은 각서도 법적 효력이 없다. 이 때문에 협의의 유무는 재산분할 청구 과정에서 자주 다투는 사안이다.]

A씨처럼 양육비 때문에 아이를 못 키울 것을 걱정해 양육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양육을 하고 있으면 남편에게 양육비지급청구를 할 수 있어 무조건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A씨의 이름으로 남편이 가입했던 보험 해약금을 남편이 가져간 문제는 조금 다르다. 남편이 본인을 계약자로 보험계약을 체결했다면 보험 해약금을 따지는 건 힘들다.

그럼 많은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고민하는 국적 문제는 어떨까. 언급한 것처럼 ‘일정 기간’을 채워야 국적이 인정되지만, 이혼을 한다고 무조건 쫓겨나는 건 아니다.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또는 그 밖에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사람’이거나, ‘그 배우자와의 혼인에 따라 출생한 미성년자를 양육하고 있거나 양육해야 할 사람’이라면 잔여기간을 채운 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귀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배우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 무조건 겁부터 먹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증거를 수집하는 건 기본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 이혼 소송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일단 소송 중이라는 점을 서류로 소명하면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또한 이혼의 귀책사유가 한국 국민인 배우자에게 있고 자녀를 국내에서 양육하려는 경우라면 그 사정을 소명해 체류기간 연장을 할 수 있다.

최근 베트남 여성이 한국인 남편과 헤어지면서 함께 동거하며 낳은 유아를 베트남으로 데리고 나가자 남편이 이 여성을 미성년자약취죄로 고소한 적이 있다. 법원은 “여성이 자녀를 폭행하거나 협박해서 데려간 게 아니라면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다문화가정 여성 지원정책 등으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됐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다문화가정 여성을 위한 지원센터도 꽤 많이 생겼다. 

물론 “큰소리 한번 안내고 잘 살다가 국적을 취득하자 아내가 돌변했다”는 한국인 배우자의 고충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긍정적인 변화로 보인다. 다문화가정의 여성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김성환 IBS법률사무소 변호사 shkim@ibslaw.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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