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최장수 증권사 3곳

2009년 62개까지 증가했던 증권사가 56개로 감소했다. 10년 전 시장을 이끌던 대형증권사 3곳은 사라졌다. 증권업계가 생존의 심판대에 올라섰다는 얘기다. 증권업계에 대형화 및 특화 바람이 함께 부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자기매매’란 옛 방법으로 제자리를 지키는 증권사가 있다. ‘무늬만 증권사’로 불리는 부국증권·유화증권·한양증권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세 증권사가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봤다.

부국증권·유화증권·한양증권 등은 여의도의 대표적인 ‘은둔형’ 증권사로 불린다.[사진=뉴시스]
부국증권·유화증권·한양증권 등은 여의도의 대표적인 ‘은둔형’ 증권사로 불린다.[사진=뉴시스]

최근 10년 사이 증권업계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경기침체, 증시부진 등이 끊임없이 이어진 탓이었다. 증권업계를 이끌었던 대우증권·삼성증권·현대증권·SK증권·한화투자증권·하이투자증권·현대차증권 등 대기업 계열 증권사 중 남아 있는 곳은 삼성증권과 한화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등 세곳밖에 없다. 대형화를 꾀한 증권사는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렸고, 중소형 증권사는 틈새시장에서 생존전략을 폈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증권·선물회사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56곳의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은 5195억원을 기록했다. 3분기 9576억원 대비 4381억원(-45.7%)이나 감소했다.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인 수탁수수료는 8829억원으로, 전분기(9103억원) 대비 274억원 감소했고 2분기(1조3048억원)과 비교하면 4219억원이나 줄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증시가 하락세를 타면서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망도 밝지 않다.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국내 증시가 박스권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실적 우려에 증권사가 꺼내든 카드는 몸집 줄이기다. 지난해 12월 KB증권을 시작으로 신한금융투자·미래에셋대우 등이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늬만 증권사’란 꼬리표가 달려 있는 부국증권(1954년)·한양증권(1956년)·유화증권(1962년)이 제자리를 꼿꼿하게 지키고 있는 건 흥미롭다. 부국증권은 1954년 설립돼 사명을 바꾸지 않은 최장수 증권사다. 한양증권과 유화증권도 각각 1956년과 1962년에 설립됐다. 세 증권사의 업력을 합하면 185년에 이른다.

긴 역사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세 증권사가 ‘은둔형 증권사’라고 불린다. 이들에게 붙어 있는 또 다른 꼬리표도 있는데, 언급했듯 ‘무늬만 증권사’다. 브로커리지·법인영업·자금조달 등으로 수익을 올리는 일반적인 증권사와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어서다.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국증권의 주 수입원은 자기매매다. 부국증권은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개별기준) 239억9165만원 중 92억5294만원(38.5%)을 보유한 자산을 투입해 수익을 올리는 자기매매로 거둬들였다. 위탁매매 순이익은 12.9%(30억8470만원)에 불과했다.

유화증권과 한양증권도 비슷하다. 유화증권은 지난해 3분기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의 32.3%에 해당하는 26억1900만원을 자기매매로 벌었다. 자기주식을 사고파는 자사주 거래도 여전하다. 최근 60거래일 간 유화증권은 자사주 15만5628주를 팔고 12만9045주를 사들였다. 이는 유화증권 주식을 거래한 금융투자자 중 가장 많은 수치다. 한양증권도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 56억6016만원의 절반이 넘는 31억1989만원을 자기매매 수익으로 올렸다. 같은 기간 한양증권의 위탁매매 순이익은 5억1355만원에 불과했다.

세 증권사의 또 다른 수익원은 부동산 임대료 수익이다. 유화증권·부국증권·한양증권은 지난해 3분기 각각 11억4500만원, 16억3764만원, 8억1977만원을 임대료 수익으로 벌었다. 당기순이익의 적게는 6%, 많게는 17%가 부동산 임대료에서 발생한 셈이다. 세 증권사가 ‘무늬만’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세 증권사는 자기매매로 돈을 버는 대표적인 증권사”라며 “증권업계에선 증권사가 아닌 전업투자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지분율이 높은 대주주가 배당의 대부분을 가져간다”며 “전업투자자가 직원을 고용해 자기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세 증권사의 배당성향은 증권사 평균인 30%를 훌쩍 뛰어넘는다. 2017년 기준 유화증권의 배당성향은 96.74%에 달했다. 부국증권(94.74%), 한양증권(31.87%) 등도 업계 평균을 웃돌았다. 

문제는 이들 세곳이 ‘변신의 바람’이 거센 증권업계에서 얼마나 더 제모습을 지킬 수 있느냐다. 무엇보다 증시부진, 채권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자기매매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부동산 임대 수익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 여의도를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던 금융위원회는 2012년 여의도를 떠났다. 그로부터 2년 후 예탁결제원도 부산으로 둥지를 옮겼다.

다른 금융회사들도 탈脫여의도를 꾀하고 있다. 유안타증권(2014년), 미래에셋대우(2016년), 대신증권(2016년) 등이 여의도를 떠났다. 여의도에 본사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세 증권사의 부동산 임대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서울시 평균을 밑돌았던 여의도의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12.7%를 기록하며 서울시 평균 공실률 11.4%를 따라잡았다.

부국증권 관계자는 “우리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기업금융 등에 특화돼 있다”며 “1조원대 규모의 다른 중소형 증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유화증권 관계자는 “시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을 알고 있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업 뒷전인 무늬만 증권사

한양증권은 은둔형 증권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부동산 금융전담부서를 신설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양증권 관계자는 “투자은행(IB) 인력을 영입하는 등 강소 증권사로의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업무 영역을 강화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60년 가까이 유지한 은둔형 전략으로는 증권사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업계의 변화로 중소형 증권사의 생존이 더 어려워졌다”며 “자기매매·부동산임대수익 등 손쉽게 수익을 올리는 사업에 안주하는 중소형 증권사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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