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5년 그 후…
안전불감증 진단
여전히 허점 투성이

강원도 산불 원인이 전신주 개폐기의 발화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강원도 산불 원인이 전신주 개폐기의 발화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우리가 ‘세월호 5년, 대한민국은 안전해졌나’라는 주제로 취재와 기사를 마무리하던 4월 4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강원도에서 대형 산불이 났다. 전신주 개폐기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산불의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산불 규모에 비해 원인은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산불이 무시무시한 자연재해인지, 흔하디흔한 인재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사소한 스파크쯤을 미연에 막을 시스템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큰 산불로 이어졌을까.

# 우리가 취재한 것도 ‘사소한 안전문제’였다. 혹시 모를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지하철 전동차 내 소화기는 일정하게 관리되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지하철 승장장 안전문 중 상당수는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광고판 탓에 제 역할을 못했다. 어린이보호구역엔 보호울타리 하나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고, 미관을 이유로 땅 속에 매립한 주택용 도시가스 배관은 안전점검조차 할 수 없었다. 서울 중구 외엔 불법시설에 불과한 루프탑에서 사람들이 흥을 내는 것도 어찌 보면 잠재적 위험요인이었다. 

# 55년 전 우리는 ‘설마’에 당했다. 그렇게 큰 배가 기울어 바다에 빠질지, 해병대 캠프에 연수를 갔던 학생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지,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질지 예측한 이는 없었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2019년 4월은 어떤가. 좀 달라졌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생활 속 안전문제를 짚어봤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 하지만 현 정부도 안전시스템 개선에는 소극적이다. 입만 열면 규제완화를 외치면서 안전핀을 흔들기도 한다. 적당히 안전대책을 내놓고 책상머리에 앉아 ‘이쯤하면 성공’이라는 이상한 주장까지 편다. 지난해 타워크레인 중대재해가 한 건도 없었다는 이유로 건설공사 현장이 더 안전해졌다는 식의 논리를 편 건 끔찍한 사례다. 이래서야 대한민국이 안전해질 리 없다.
 

사람들이 바라는 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인재가 다시 반복되지 않는 거다.[사진=뉴시스]
사람들이 바라는 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인재가 다시 반복되지 않는 거다.[사진=뉴시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5년 전인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사망 299명ㆍ미수습자 5명)로 자녀와 친구, 선생님, 직장동료를 잃은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이 말엔 숨의 의미가 있다. “기업이 이윤만 따지지 않고 안전까지 따뜻하게 살폈다면, 정부가 안전만은 강력하게 규제했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는 인재人災로 규정되는 사고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갖췄다. 선박 자체의 결함, 검사시스템의 허점, 기업의 이윤 극대화, 마피아처럼 얽힌 기관과 기관 혹은 기업과 기관의 유착, 책임 떠넘기기, 매뉴얼 미준수, 안전교육와 초동 안전조치 미흡, 인명피해 대책보다 앞서는 전시행정 등이다. 마치 사고가 인재로 규정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잘 보여주는 ‘인재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정치권이 “대한민국 안전시스템은 세월호 참사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5주년을 맞은 2019년 4월 대한민국은 얼마나 안전해졌을까. 정부와 정치권은 선령 기준이나 선박검사 기준을 강화했고, 관피아를 막겠다면서 공직자의 재취업 규제도 강화했다. 승선 정원 관리도 까다롭게 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도 했다. 안전 예산도 꽤 늘렸다. 공공질서ㆍ안전에 쓰이는 예산은 지난 2017년 18조1000억원에서 2018년 19조100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20조원을 넘어섰다. 매년 1조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재발 방지를 위해 마련한 각종 대책들이 근본적인 안전시스템 개선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는 비슷한 유형의 선박사고를 막아달라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안전시스템을 개선하라는 건데, 정부가 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는지 완화하는지만 봐도 그렇다.

사실 안전과 규제는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강력한 안전규제가 많을수록 더 안전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안전검사를 더 꼼꼼하게 하도록 규제하면 더 안전한 제품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대선 공약으로 안전규제 강화를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는 이상하게도 사회 전반에 규제완화가 더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규제 입증 책임 전환’이다. 공무원이 해당 규제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규제를 폐지하겠다는 건데, 기업 입장에선 공무원만 잘 구워삶으면 각종 규제가 자동적으로 풀리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안전핀이 언제 빠질지 아무도 모른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사전 대비책보다는 사고가 발생한 후 후속대책을 내놓는 안전관리 방식도 그대로다. 안전관리가 여전히 수동적이라는 얘기다. 

생활 속 작은 안전불감증

일례로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건설현장을 보자. 그동안 숱한 안전 전문가들이 “현장의 안전관리자를 외주화(비정규직)하면 제 역할을 할 수 없으니 그들의 신분이 건설사에 얽매이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고용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비정규직 안전관리자가 ‘수박 겉핥기’ 식의 안전관리만 하고 있다. 

탁상행정과 보신주의도 여전하다. 현 정부는 지난해 타워크레인 중대재해(1명 이상 사망)가 한건도 없었다는 이유로 건설공사 현장이 더 안전해졌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문 대통령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인재가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현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만 해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12월), 각종 타워크레인 중대재해(4~12월), 2018년엔 밀양 세종요양병원 화재 사고(3월), 부산 해운대 엘시티 공사장 추락 사고(3월) 등이 고구마 줄기 엮이듯 줄줄이 터졌다. 

 

정부가 안전에 소극적인데 기업이 이윤 극대화보다 안전을 더 생각할 리 만무하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인재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얘기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국민만 불안할 뿐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하반기에 조사한 국민안전 체감도에 따르면 사회전반 안전체감도는 2.74점(5점 만점)으로 집권 초기인 2017년 하반기(2.77점)보다 낮았다. 재난유형별 총 13개 항목 중 7개 항목 안전체감도는 상반기보다 떨어졌다. 안전체감도가 오른 항목은 4개에 불과했고, 2개 항목은 동일했다. 

안전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지 않는 이상, 큰 변화는 일어나기 힘들다. 관점을 크게 바꿀 필요도 없다. 작은 것부터 하면 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세월호 참사 5주년을 맞아 생활 속 안전불감증을 조명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슈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과속버스 ▲감독 주체가 없는 지하철 전동차 내 소화기 ▲비상시 열 수 없는 승강기 수동안전문 ▲차도와 보행로 구분조차 없는 어린이 보호구역 ▲3일 만에 자격증 따고서 운전할 수 있는 소형무인타워크레인 ▲안전규정 어기고도 당당히 운영되는 상가 루프탑 ▲사용연한조차 없는 주택용 가스배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안전손잡이 등이다. 

정부가 안전시스템을 개선하려면 단단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예방효과가 확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헛돈 쓰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효과가 있더라도 그게 안전시스템 덕인지 사람 덕인지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가 안전시스템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 스스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국민과 약속을 했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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