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제품에 경쟁력 밀리는 국산 터빈
풍력단지 지분 사들여 발전기 납품
SPC 설립하면 공개경쟁입찰 피해

국산 풍력발전기는 해외제품보다 비싸고 기술 수준도 낮다. 발전사 입장에선 해외제품을 쓰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그렇다고 국산 풍력발전기를 외면하는 것도 상책上策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풍력발전기 제조산업을 육성하는 건 옳은 방향이어서다. 문제는 이런 명분 때문에 ‘꼼수’가 판을 친다는 거다. 자신들의 풍력발전기를 납품하기 위해 풍력단지조성사업에 투자하거나 SPC를 설립해 공개경쟁입찰을 피하는 식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풍력의 딜레마를 취재했다. 

정부는 풍력발전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풍력발전기의 경쟁력은 아직 부족하다.[사진=연합뉴스]
정부는 풍력발전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풍력발전기의 경쟁력은 아직 부족하다.[사진=연합뉴스]

2000년대 말 풍력발전은 미래 먹거리로 주목 받았다.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화석에너지 시대가 저물고 친환경에너지가 각광받을 것이란 전망에서였다. 조선 3사(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를 비롯해 STX중공업ㆍ효성중공업ㆍ두산중공업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풍력발전기 제조사업에 뛰어든 것도 그 즈음이었다.

풍력발전시장은 기대만큼 성장세를 보였다. 세계풍력발전협회(GWEC)에 따르면 2009년 15만9000㎿였던 세계 풍력발전 누적 설치량은 2017년 56만5000㎿으로 크게 늘어났다. 2020년엔 79만2000㎿ 규모로 성장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풍력발전시장에 뛰어든 국내 기업들은 성장의 날개를 펴지 못했다. 야심차게 출사표를 꺼냈던 조선 3사는 풍력발전사업에서 발을 뺐다. 경기침체로 조선업체들이 감량에 나선 탓도 있었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선사 관계자들은 “조선업이 불황을 겪지 않았어도 풍력발전사업은 접었을 것”이라면서 “수익도 나지 않았고, 사업성도 낮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조선 3사가 빠진 자리는 두산중공업ㆍ효성중공업ㆍ유니슨ㆍ한진산업 4곳이 메우고 있지만 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실적이 신통치 않다. 특히 효성중공업의 풍력발전사업을 맡고 있는 중공업 부문은 적자(지난해 하반기 영업손실 346억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엔 개발비 회수조차 어렵다는 이유로 육상풍력부문의 사업을 중단했다. 한진산업은 지난해 1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국내 기업들이 풍력발전사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해외기업과의 경쟁에서 힘을 못 쓰고 있어서다. 국내 기업의 기술개발 속도나 가격경쟁력은 글로벌 풍력발전기 제조업체인 베스타스(덴마크), 지멘스(독일), GE(미국) 등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일례로 베스타스는 8㎿급 발전기를 만들지만, 국내 기업들은 3㎿급 발전기밖에 만들지 못한다. 5.5㎿급 발전기도 개발했지만 아직 실증단계에 있다. 풍력발전시장의 추세가 발전설비의 ‘대형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기업들이 단기간에 경쟁력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가격경쟁력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계약별로 다르지만 통상 해외 제품가격은 국내 제품보다 40~50%가량 싸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국내 풍력발전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해외 기업들은 1년에 3000~4000대가량 생산하는 반면 국내 기업은 1년에 고작 10대가량만 생산한다”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찍어내는 회사의 제품이 단가가 제일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뒤집어 말하면, 국내 기업의 생산량이 대폭 증가하지 않는 이상 해외 기업과의 가격경쟁력 싸움에서 앞서 나가기 힘들 거란 소리다. 국내 풍력발전기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자율경쟁이 전제라면 국내 어떤 회사도 베스타스나 지멘스를 상대로 이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들이 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에 ‘지분’을 투자해 위기를 탈출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발비를 회수하고 실적을 내기 위한 고육지책인데, 어찌보면 꼼수다. 풍력발전단지조성사업에 지분을 투자하면 자사 제품을 사용할 수 있어서다. 두산중공업이 국내 최초 해상풍력단지 탐라해상풍력발전의 지분 36.0%를 사들인 것도 이 때문일 공산이 크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9월 탐라해상풍력단지가 준공된 이후 해당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익명을 원한 업계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풍력발전소를 지을 때 제조사들이 통상 20~30%의 지분을 투자하는데, 이는 공사를 맡거나 터빈을 공급하기 위한 투자다. 아직 발전소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효성이 태백ㆍ평창풍력발전, 유니슨이 영광ㆍ의령ㆍ정암풍력발전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들이 꼼수를 부리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공개경쟁입찰을 피하고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숱하다. 한국전력공사나 한국수자원공사 등 공기업과 계약을 체결할 땐 국가계약법상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통해야 하지만 SPC를 거치면 이를 피해갈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SPC는 풍력발전기 제조업체엔 실적을 올리는 수단이지만, 발전사로선 발전효율이 높고 단가가 낮은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국내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들이 풍력단지 지분을 사들이는 이유는 자사 풍력발전기를 납품하기 위해서다.[사진=뉴시스]
국내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들이 풍력단지 지분을 사들이는 이유는 자사 풍력발전기를 납품하기 위해서다.[사진=뉴시스]

이런 지적에 국내 한 풍력발전기 제조업체에선 이렇게 설명했다. “해외 기업들이 제품가격을 산정할 때 기술력만 가지고 매기진 않는다. 그 나라에 풍력발전기를 만드는 기업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가격은 크게 변동될 수 있는데, 국내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들이 그 저항선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기업들이 풍력발전기 제조사업에서 철수한다면 해외 업체들의 납품가가 크게 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주장을 십분 받아들인다 해도 누굴 위한 꼼수인지는 따져볼 만한 문제다.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게 합리적인 과정인지도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 풍력발전산업의 딜레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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