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레몬법 한계

올해 1월 1일 시행된 ‘한국형 레몬법’ 개정 자동차관리법. 신차를 구매한 후에도 교환이나 환불이 용이하도록 하겠다는 게 이 법의 골자다. 하지만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한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자동차 제조사의 선의善意가 없으면 교환이나 환불이 어렵기는 똑같기 때문이다. 
 

‘한국형 레몬법’이 만들어졌지만, 실효성 있는 소비자 피해구제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뉴스]
‘한국형 레몬법’이 만들어졌지만, 실효성 있는 소비자 피해구제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뉴스]

“뽑기를 잘 해야 된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이들에게 주변에서 하는 말 중 하나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누가 수천만원씩 들여 사는 자동차를 두고 뽑기를 운운하겠는가. 심각한 하자가 있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선 환불이나 교환을 받기 어려우니 나온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오죽하면 지난 2015년 한 소비자가 2억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벤츠를 해당 브랜드 대리점 앞에 세워두고, 골프채와 야구방망이로 때려 부수는 일까지 생겼을까. 최근엔 또다른 소비자가 5000만원이 넘는 포드 자동차를 해당 브랜드 대리점 앞에서 야구방망이로 부수기도 했다. 신차를 구매한 그는 기술법인 전문가가 ‘수리한 차량’이라고 감정한 내용을 토대로 포드코리아 측에 “수리 차량을 신차로 속여 팔았다”면서 소송을 벌였다가 패소해 이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BMW 화재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영문도 모른 채 ‘불타는 자동차’를 타야 했지만, 환불이나 교환은 쉽지 않았다. 결국 같은 피해를 입는 소비자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정부가 나서 BMW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밝힌 후에야 교환이 이뤄졌다. 물론 리콜 후에도 비슷한 사건은 반복되고 있다. 몇만원짜리 옷을 사도 하자가 있으면 교환해주는 요즘, 수천만원을 웃도는 차량을 사고도 교환을 못 받는 소비자로선 황당하기 짝이 없다. 

소비자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우리나라에선 유독 환불이나 교환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례로 미국에는 차량이나 전자제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도록 하는 ‘매그너슨-모스 보증법(Magnuson-Moss Warranty Act)’이라는 게 있다. 일정 횟수 이상 반복적으로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제품을 교환 또는 환불해주도록 한 법이다. 일명 ‘레몬법(Lemon law)’이라고도 한다. 달콤한 오렌지(정상적인 차량)인 줄 알고 샀는데, 먹기 힘들 정도로 신 레몬(하자 있는 차량)을 산 것을 빗댄 용어다. 

 

소비자의 마음을 정치인도 이해한 걸까. 지난해 ‘한국형 레몬법’으로 불리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그동안 자동차 제조사 측은 제품에 하자가 있어도 소비자 과실로 몰아가기 일쑤였고, 이로 인해 소비자 스스로 과실이 없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보상을 받기도 힘들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형 레몬법은 자동차 소비자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제조사 재량에 달린 피해 구제

특히 개정법은 차량이 소유자에게 인도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된 하자는 ‘인도된 때’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도록 했다. 소비자의 입증책임 부담을 줄인 셈이다. 교환ㆍ환불을 위한 중재절차와 이에 관한 업무를 수행할 자동차안전ㆍ하자심의위원회도 별도 설치하도록 했다.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에 한발 다가간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새로운 자동차관리법으로 실질적인 소비자 피해 구제가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소비자가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기 위해선 몇가지 조건이 있는데,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해서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자발생시 신차로의 교환 또는 환불을 보장하는 사항이 포함된 서면계약’에 따라 판매된 자동차여야 한다. 이런 계약을 자동차 제조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계약을 강제할 규정은 없다. 현재 상당수 수입차 브랜드가 한국형 레몬법을 이행하지 않는 이유다. 

둘째, ‘자동차안전기준에 따른 구조나 장치의 하자로 인해 안전이 우려되거나, 경제적 가치가 현저하게 훼손되거나, 사용이 곤란한 자동차’여야 한다. 예를 들어 선루프 지붕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서 똑같은 수리를 반복적으로 받아도 안전에 문제가 없고, 비가 새지도 않으며, 연료를 더 잡아먹는 상황이 아니라면 교환이 어렵다.

셋째, ‘소비자에게 인도된 후 1년 이내(주행거리 2만㎞ 이내)에 원동기ㆍ동력전달장치ㆍ조향장치ㆍ제동장치 등의 중대한 하자(국토교통부령)는 2회 수리, 일반 하자는 3회 수리하고도 결함의 시정에 실패하거나 총 수리기간이 30일 초과한 자동차’여야 한다.

 

더구나 위와 같은 기준을 모두 충족하면 곧바로 교환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그제야 소비자는 자동차안전ㆍ하자심의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중재절차마저 복잡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조사가 빠져나갈 구멍은 한두개가 아닌 셈이다. 소비자도 지칠 수밖에 없다. 개정법을 두고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 인식도 바뀌어야

그럼 소비자는 법이 다시 손질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 소비자가 현명하게 한국형 레몬법을 계약에 적극 반영하는 자동차 제조사를 선택한다면 다시 법을 손보지 않고도 현실을 바꿀 수 있어서다. 물론 자동차의 품질과 브랜드 선호도도 중요하겠지만, 제품을 선택함에 있어 한국형 레몬법을 수락한 브랜드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선택한다면 제조사들도 새로운 입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특히 소비자 권리는 법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성숙한 면모를 보일 때 비로소 보호받을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뻔뻔하게 연비를 속인 자동차 브랜드라도 가격을 내리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시장이라면 소비자 권리도 보호받기 어렵다.
박재정 IBS법률사무소 변호사 pjj@ibslaw.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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