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 건면과 메가 브랜드 전략

라면시장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농심 ‘신라면 건면’이 출시 40일 만에 1000만개가 판매되면서 건면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면은 새로운 제품이 아니다. 1969년 첫 출시 후 사라진 건면제품은 수두룩하다. 농심이 건면제품 때문에 골치를 썩은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건면 열풍을 일으킨 건 건면이 아니라 신라면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건면 열풍에 숨은 메가 브랜드 전략을 살펴봤다.

농심 신라면은 대표적인 메가 브랜드로 꼽힌다.[사진=농심 제공]
농심 신라면은 대표적인 메가 브랜드로 꼽힌다.[사진=농심 제공]

2조원대에서 정체 중이던 라면시장에 ‘건면 열풍’이 불고 있다. 건면(비유탕면)은 일반 라면과 달리 면을 기름에 튀기지 않아 깔끔한 맛과 낮은 칼로리가 장점이다. 이 시장에 불을 지핀 건 농심이다. 농심이 2월 9일 출시한 ‘신라면 건면’은 40일 만에 1000만개가 팔려나갔다.

그런데, 건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제품이 아니다. 신라면 건면이 ‘건면 잔혹사’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농심은 1977년 처음으로 건면제품을 출시했다. ‘느끼하지 않읍니다(당시 표준어)’라고 봉지에 큼지막하게 써놓은 ‘길면’이 첫 건면이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1984년 야심차게 이름 그대로 ‘건면’을 출시했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농심은 1990년 ‘쌀탕면’, 2006년 ‘쌀국수포들면’, 2009년 ‘둥지쌀국수’ 등 건면제품을 잇따라 내놨지만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논프라잉(non-frying) 공법을 강조하고 다시 한번 건면을 전면에 내세운 ‘건면세대(2007년)’의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농심의 건면 잔혹사를 끊은 게 신라면 건면인 셈이다. [※ 참고: 멸치쌀국수(1997년), 둥지냉면(2008년), 야채라면(2013년) 등 10여종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그렇다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신라면 건면의 인기는 ‘건면’ 덕분일까, 강력한 브랜드인 ‘신라면’ 덕분일까. 답을 추정할 만한 근거는 몇가지 있다. 만약 건면 덕이라면 수십년에 걸친 ‘건면제품의 실패’를 설명하기 어렵다. 비단 농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69년 국내 최초로 건면 칼국수를 출시한 삼양식품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1년 라면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풀무원 역시 건면시장을 두드렸지만 빅히트 제품은 없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건면 제품이 큰 인기를 끌지 못한 건 소비자들이 기름진 유탕면 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신라면 건면이 뜬 이유를 ‘건면’에서 찾는 건 객관적이지 않다. 되레 메가 브랜드(Mega Brand) ‘신라면’의 힘을 톡톡히 누린 결과물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신라면은 라면 판매율 1위 자리(aTㆍ소매점매출액 기준)를 고수하고 있는 대표적인 메가 브랜드다. 가지를 친 브랜드는 신라면 블랙(2018년 11월), 신라면 건면(2019년 2월) 등 두개다.

오비맥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카스를 메가 브랜드로 키운다는 전략을 세워왔다.[사진=연합뉴스]
오비맥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카스를 메가 브랜드로 키운다는 전략을 세워왔다.[사진=연합뉴스]

농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훌쩍 넘는다. 지난해 농심 매출액이 2조2364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7000억원가량이 신라면(블랙ㆍ해외 매출 포함)에서 발생했다는 얘기다. 농심 관계자는 “신라면 건면은 신제품이라기보다는 신라면이라는 메가 브랜드의 라인업을 강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메가 브랜드의 효과는 상당히 크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건 기본 효과다. 신라면 건면 역시 ‘브랜드 홍보’엔 별다른 비용을 쏟아붓지 않았을 것이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신라면 건면은 신라면의 브랜드력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다”면서 “브랜드 확장 제품으로 광고ㆍ판촉비를 절감하고 판매량은 증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가 브랜드를 활용해 ‘시장점유율’을 뒤집은 예도 있다. 오비맥주 ‘카스(CASS)’가 대표적이다. 1994년 출시한 맥주 브랜드 ‘카스’를 메가 브랜드로 키운다는 방침을 세운 오비맥주는 ‘카스 레드(2007년)’ ‘카스 레몬(2008년)’ ‘카스 라이트(2010년)’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메가 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맥스(2006년)’ ‘S(에스ㆍ2007년)’ ‘드라이피니시d(2010년)’ 등 각각의 브랜드로 승부를 건 하이트진로와 다른 길이었다.

결과는 엇갈렸다. 만년 2등이던 오비맥주는 2011년 부동의 1위 하이트진로를 꺾었다. 오비맥주의 맥주시장 점유율은 현재 60%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적도 껑충 뛰었다. 오비맥주의 매출액은 2009년 8161억원에서 1조6635억원(2017년 기준)으로,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963억원에서 4941억원으로 증가했다. 오비맥주의 맥주 매출액 중 카스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80%대에 이른다.

그렇다고 ‘메가 브랜드 전략’에 위험 요인이 없는 건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좇지 못하거나 신제품 출시에 게으른 반응을 보일 때가 적지 않다. 오비맥주가 발포주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올 1월에야 발포주 필굿을 출시한 오비맥주와 달리 하이트진로는 2017년 4월 발포주 필라이트를 내놓고 시장을 선점했다.

신라면 건면 열풍이 남긴 의문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메가 브랜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메가 브랜드 등에 올라타면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후광효과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하면 모母 브랜드의 이미지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으로선 뿌리치기 힘든 ‘유혹’인 셈이다.”

어쨌거나 신라면은 ‘건면’을 띄우는 데 성공했다. 농심의 실적도 늘어날 공산이 커졌다. 농심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4.6%(5888억원ㆍKB증권), 10.4%(38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신라면이란 메가 브랜드에 의존할수록 하위 브랜드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 ‘안 팔리면 신라면’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순간, 브랜드는 치열함을 잃기 시작한다. 과연 신라면 건면은 농심에 힘이 될까 독이 될까. 소비자의 폭발적인 반응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신라면 건면의 열풍이 남긴 의문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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