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손잡이 안전한가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가파른 계단에 설치된 ‘안전손잡이’. 그런데 말이 ‘안전’이지 이리저리 휘청이기 일쑤다. 안전손잡이의 지지대가 부식된 탓인데, 겨울철 빙판을 녹이기 위해 뿌린 염화칼슘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안전손잡이의 재질이 염화칼슘과 상극인 ‘알루미늄’이기 때문이다. 종로구청은 숭인동 등 친환경 계단 정비사업에 무려 31억원이나 쏟아부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안전손잡이의 문제점을 취재했다. 
 

염화칼슘에 알루미늄 안전손잡이가 부식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염화칼슘에 알루미늄 안전손잡이가 부식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하철 1호선 동묘앞 역에 내려서 롯데캐슬 천지인의 뒤로 걷다 보면 경사가 가파른 골목(숭인동 지봉로)이 나온다. 숭인근린공원까지 이어지는 이 오르막길은 겨울에는 빙판으로 변해 계단이라 하더라도 넘어지기 십상이다. 그 계단에 보행을 돕는 안전손잡이가 설치된 이유다.

새로 생긴 안전손잡이는 종로구가 2012년부터 진행한 ‘친환경 계단 정비사업’의 일환이었다. 곳곳이 패어 있었던 콘크리트 계단은 튼튼한 화강암 계단으로 정비됐다. 계단 중앙에 안전손잡이가 생긴 것도 이때다. 겨울이 되고 눈이 오자 주민들은 평소처럼 골목과 계단에 염화칼슘을 뿌렸다. 빙판에 미끄러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안전손잡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똑바로 서서 손잡이를 잡고 흔들면 좌우로 30도 이상 휘청일 정도였다. 노인을 위한 안전손잡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이유는 안전손잡이의 재질에 있었다. 더스쿠프가 안전손잡이 밑동에 떨어져 있는 파편의 재질을 청계천 공구상인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염화칼슘과 상극인 ‘알루미늄’이었다. 알루미늄 안전손잡이가 염화칼슘을 버티지 못하고 삭아버렸던 거였다.

그럼 안전손잡이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이유는 뭘까. 황당하게도 답은 ‘미관’ 때문이었다. ‘친환경 계단 정비사업’의 목적은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고 골목 경관을 개선하는 것 두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골목에 알루미늄 안전손잡이가 설치됐다. 재질을 검증하는 과정은 없었다.

종로구청 건축과 담당자는 “시공 후 1년까지는 지자체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최근에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적합하지 않은 재질로 만든 손잡이를 설치했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알루미늄 재질인 안전손잡이의 교체 시점이다. 종로구청 담당자는 “올겨울까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예산상 한계가 있다. 부식이 생겨서 위험한 곳부터 스테인리스 재질로 일단 바꿀 예정이다. 전체 교체 시점은 알 수 없다.”


종로구의 친환경 계단 정비사업엔 현재까지 31억원이 투입됐다. 그런데도 외부 설치물에 어떤 재질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기준은 없다. 그러니 염화칼슘과 상극인 알루미늄으로 안전손잡이를 만드는 촌극이 발생한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촌극 탓에 삭아가는 안전손잡이 등 설치물의 숫자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지자체의 행정 자체가 ‘안전 사각지대’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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