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감히 속세의 법전을… 당장 치워!!
[Economovie] 감히 속세의 법전을… 당장 치워!!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34
  • 승인 2019.04.16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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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어 퓨 굿맨 ❹

관타나모 해병대 기지 사령관인 제섭(Jessup) 대령은 부대의 치부를 외부에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는 산티아고 일병을 향해 ‘코드 레드(Code Red)’를 발령한다. 합의되고 위임받은 공권력에 의한 처벌이 아닌 비합법적이고 은밀한 사형私刑이다. 문서에 기록된 공식적인 지시일 리 없다. 피라미드 조직처럼 입에서 귀로 전 부대원들에게 전파된다. 

성역은 신계神界를 동경한 인간들의 상상에서 시작돼 권력장치로 변질됐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은밀한 명령인 ‘코드 레드’가 발동된 후 산티아고 일병은 같은 부대원들에게 살해된다. 흔한 군부대 사고사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의기충천한 조앤 갤러웨이(데미 무어) 소령과 재기발랄한 군법무관 캐피(톰 크루즈) 중위에 의해 점차 윤곽이 드러난다. 

결국 ‘코드 레드’ 발동의 수괴인 제섭 사령관이 군법정에 소환된다. 하지만 제섭 사령관이 누구인가. 전쟁의 신이고, 무수한 훈장을 모두 주렁주렁 매달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인물이며, ‘무려’ 백악관 안보회의 참석 멤버다. 한마디로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다. 

제섭 사령관은 당연히 어이가 없다. 법정 소환에 전혀 긴장하지도 않고 오히려 분기탱천憤氣撑天한다. 엄연한 피의자인 제섭 대령은 마치 점령군 사령관인 양 법정에 들어선다. 시종일관 군법무관들을 가르치려 들고 조롱해 마지않는다. 자신과 같은 대령인 재판장을 향해서도 자신에게 존경심을 갖고 말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해병대의 화신과도 같은 제섭 사령관은 하버드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캐피 중위의 교묘한 심문에 점차 가랑비 옷 젖듯 말려든다. 그럼에도 제섭 사령관은 우리네 고위직처럼 시시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치매환자 코스프레로 궁지를 모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기엔 해병대의 자긍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제섭 대령은 국가안보라는 영역이 '성역'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제섭 대령은 국가안보라는 영역이 '성역'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드디어 제섭 사령관이 올무에 걸린 맹수처럼 폭발한다. “나는 매일 아침 적의 철책선 300야드 떨어진 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이다. 너 따위가 해병대에 대해 뭘 알고 국가안보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드나? 아무것도 모르면 그저 침묵하든지, 아니면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나 하고 그냥 지나가라.” 

그리고는 과감하게도 자신이 산티아고 일병에게 ‘코드 레드’를 발령했다고 ‘실토’가 아닌 ‘포효’를 해버린다. 자폭이었다. ‘그래, 했다. 그게 뭐 어때서? 그래서 너희들이 나를 어쩔 건데? 다 덤벼!’하는 식이다. 그리고는 법정체포를 당해 헌병들에게 끌려나간다.

제섭 사령관에게 국가안보라는 영역은 ‘성역聖域’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이며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성스러운 영역’인 군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은 감히 ‘속세’의 기준으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속세의 법전을 들고 감히 성역으로 들어와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캐피 중위에게 성역을 지키는 천군은 기가 막히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성역의 생리를 알 만한 군사법정 재판관과 배심원들에게도 분노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곳곳에 수많은 성역들이 생겨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 사회에서는 곳곳에 수많은 성역들이 생겨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본래 성역이란 신이 임재臨在한다고 믿어지는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의 장소였지만, 차츰 권력이 개입해 오두막이나 천막 같은 인간의 구조물이 지정되고 그 주변까지 확대되면서 신전神殿으로 본격화됐다. 신계神界를 동경한 인간들의 상상에서 시작돼 권력장치로 변질된 셈이다.

지상에 구현한 신계인 성역들은 ‘인간계人間界’의 모든 잡다한 규율과 법에서 벗어나는 곳이었다. 인간들이 만든 모든 제도의 불완전성에 대한 ‘실토’일 수도 있고, 모든 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권력자들의 욕망의 발현일 수도 있다.

중세를 지나며 이런 종교적 성역들은 거의 사라져 가지만 오히려 사회에서는 수많은 성역들이 생겨나고 위력을 발휘한다. 군대만이 아니라 청와대나 사법부, 국회, 정부 부처들, 그리고 언론까지 모두 자신들만의 성역을 공고히 한다. 외부의 감시와 비판에 대응하는 그들의 논리와 항변은 제섭 사령관의 그것과 싱크로율 100%에 가깝다.

“그건 너희들 생각이고 우리에겐 너희들이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모르면 잠자코 있기나 해라. 너무 따지면 나라가 안 돌아가. 너희들 우리 덕분에 이만큼 사는 줄이나 알아라.”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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