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산 원유 수입금지에 숨은 셈법

우리나라가 이란산 원유(초경질유)를 수입할 수 있는 기간이 5월 3일로 종료된다. 미국이 허용해준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예외기간’이 만료된다는 건데, 국내 정유ㆍ석유화학업계에 좋지 않은 영향이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이란산 원유의 가성비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이 예외기간을 연장해주면 좋겠지만 미국은 뜻이 없어보인다. 그러는 사이 공교롭게도 미국산 초경질유의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에 숨은 셈법을 취재했다.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오는 5월 3일이면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예외기간(180일)이 만료된다. 지난해 8월 미국은 이란과의 핵협정(2015년)을 파기하고 대對이란 경제제재를 재개했다. 11월에는 제재의 연장선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때 한국ㆍ일본ㆍ인도ㆍ중국ㆍ터키 등 8개국에 한시적인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예외국으로 인정받았다. 이 예외기간이 곧 끝난다는 거다. 

그 때문인지 국내 정유ㆍ석유화학업계는 분주하다. 예외기간이 연장되지 않아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지 못한다면 업계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서다. 국내 업계가 이란산 원유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데,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이란산 원유의 특징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이란산 원유는 대부분 ‘콘덴세이트(초경질유)’다. 정유업계가 파라자일렌을 생산하는 등 전통적인 석유화학 분야에 뛰어들면서 초경질유 수입량은 2011년 1247만t에서  2017년 2819만t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 참고 : 초경질유 수입량은 지난해 2698만t을 기록, 전년 대비 약간 줄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에 따라 넉달간(9~12월) 이란산 수입을 중단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 늘어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초경질유는 석유화학 기초원료로 쓰이는 나프타 함량이 70~80% 수준으로 다른 유종에 비해 매우 높다. 일반적인 두바이유(중질유)를 정제했을 때 나프타는 약 12% 추출된다. 그중에서도 불순물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이란산 초경질유는 가격까지 저렴하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초경질유(HS코드 2709001090 기준)를 수입국가별로 놓고 볼 때, 1t당 가격은 이란산이 477달러(올해 2월 기준)로 가장 싸다. 지난 5년 간 평균가격을 따져 봐도 453달러에 불과하다. 

국내 정유ㆍ석유화학업계가 이란산 초경질유를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미국이 이란 원유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기 전인 2017년 이란산 초경질유 수입 비중이 전체의 45.18%에 달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란산 초경질유 수입이 제한될 경우, 원재료 비용이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석유협회 관계자는 “수입이 제한되면 이란산 초경질유의 강점이던 가성비가 약화할 것”이라면서 “이란 제재의 영향으로 대체 수입처를 확보하기 위한 수급다변화 경쟁이 일어나면 국내 업계의 원가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고 꼬집었다. 일부에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예외기간이 연장되도록 정부가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란산 수입 막히면 원가 상승

문제는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예외기간을 연장해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석유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의 원유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고, 주요 아프리카 산유국인 리비아 내전이 심화하고 있다. 세계 원유공급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원유 공급량이 줄면 유가상승이 불가피하고, 이는 유가하락을 원하는 미국의 플랜과 어울리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미국은 ‘예외기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브라이언 후크 미국 국무부 이란정책 특별대표는 지난 5일 NHK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신속하게 제로로 만드는 게 우리의 정책”이라면서 “더 이상 예외를 인정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업계의 예상도 비슷하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예외기간이 5월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 보지 않는다”면서 “이란의 원유 수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고, 유예 조치도 그 기간에 대안을 찾으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안이 있느냐다. 이 지점에서 업계의 시각이 갈린다. 한쪽은 미국산 초경질유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로이터통신도 “한국 석유화학업계가 이란산 초경질유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 초경질유를 테스트하는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도 두바이유보다 낮아진 상황에서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쪽에선 “단발성 대체는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적인 수입은 어렵다”고 반론을 편다. 미국산이 이란산에 비해 불순물이 많다는 까닭으로 풀이된다. 최근 SK종합화학과 현대오일뱅크는 미국산 셰일오일을 들여왔다가 이런 이유로 반품을 한 바 있다. 이 원유가 초경질유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동종업계 관계자는 “수출 전에 품질 확인을 할 텐데, 이런 일은 이례적”이라면서 “미국산 셰일오일 수출 시스템에 문제가 있거나 품질 외 다른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격도 문제다. WTI 가격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초경질유를 비교하면 이란산의 가격경쟁력이 여전하다. 미국산 초경질유의 올해 2월 기준 수입가격은 1t당 530달러다. 이란산보다 53달러나 더 높다. 5년 평균 가격을 봐도 517달러로, 이란산보다 64달러 더 높다. 

이란산 대신 미국산 수입 늘어

원유 가격만 비싼 게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수송비용 역시 중동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2배 가량 더 비싸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는 얘기다. 일부에서 “미국산보다는 오히려 카타르ㆍ러시아ㆍ호주산 초경질유로 대체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산 원유의 수입이 중단됐을 때 업계는 주로 카타르산ㆍ러시아산ㆍ사우디아라비아산ㆍ호주산 등으로 대체했다.

어쨌거나 가장 좋은 해법은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예외조치를 연장해주거나 수입금지 조치를 푸는 거다. 하지만 미국도 셰일오일 생산으로 남아도는 원유를 팔아치워야 하는 상황에서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전까지 수입이 전무하던 미국산 초경질유의 국내 수입 비중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핵협정 파기를 외친 지난해 5.19%(수입 비중 5위)로 치솟았다. 올해 1~2월 수입 비중은 12.42%로 더 높아졌다. 경쟁력이 없다고 평가받던 미국산 초경질유가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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