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0.0%인데, 수입맥주 ‘가격의 배신’
관세 0.0%인데, 수입맥주 ‘가격의 배신’
  • 이지원 기자
  • 호수 334
  • 승인 2019.04.17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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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맥주 가격 적정한가
맥주 수입량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맥주 수입량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수입맥주 인기가 뜨겁다. 2015년 이후 수입맥주 ‘4캔에 1만원’ 할인판매가 증가하면서 수입맥주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부쩍 늘었다. 수입맥주 할인 행사가 활발해진 건 미국ㆍ유럽연합산産 맥주의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지난해 1월과 7월 미국과 유럽연합의 관세가 0.0%로 완전 철폐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수입맥주 가격은 여전히 ‘4캔에 1만원’이다.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수입맥주에 숨은 가격의 진실을 취재했다. 

은퇴한 직장인 김용섭(60)씨는 요즘 수입맥주를 마시는 재미에 빠졌다. 대형마트에 가면 셀 수 없이 많은 수입맥주를 고르는 재미가 있는 데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서다. 김씨는 “국산 맥주와 가격차이가 크지 않고, 다양한 맛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수입맥주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입맥주 전성시대다. 2017년 기점으로 주요 대형마트(이마트ㆍ롯데마트)와 편의점(GS25ㆍCU)에서 수입맥주 매출 비중이 50%대를 넘어서며 국내맥주를 앞질렀다. 맥주 수입량은 매년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38만7891t으로 2015년(17만919t) 대비 126.9% 증가했다.

수입맥주의 인기가 본격화한 건 ‘4캔에 1만원’ 할인행사가 등장한 2015년 전후다. 맘껏 마시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던 수입맥주의 가성비가 좋아진 건데,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아니었다. 그저 관세 인하의 영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수입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하면서 맥주에 붙는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됐다. [※참고: 수입맥주(과세표준:수입신고가+관세)는 국내맥주(출고가)와 달리 판관비ㆍ마진에 주세가 부과되지 않아 가격경쟁력이 높다.]

실제로 2010년 30.0%이던 EU산 맥주의 관세율은 2012년 22.5%, 2016년 7.5%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 7월 0.0%로 완전 철폐됐다. 2010년 30.0%에 달했던 미국산 맥주의 관세율도 지난해 1월 0.0%로 떨어졌다. 관세가 낮아지자 이들 국가로부터 맥주를 수입ㆍ유통하는 업체가 급증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수입된 맥주 중 EU산 비중은 전체의 43.9%, 미국산은 14.1%에 달했다.

소비자의 기대감도 커졌다. EUㆍ미국산 맥주에 무관세가 적용되면 수입맥주를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을 거란 전망에서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주요 유통채널에서 수입맥주 가격은 여전히 ‘4캔에 1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관세 인하가 소비자가격과 연동되지 않은 셈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미국산 맥주(355mL) 가격을 분석한 결과, 수입가격(수입단가×환율)은 2016년 383원에서 지난해 상반기 281원으로 26.6% 떨어졌다. 수입가격에 관세를 붙인 통관가격은 같은 기간 416원에서 281원으로 32.5% 줄었다. 반면 소비자가격은 2036원에서 2177원으로 6.9% 증가했다.

네덜란드산 맥주(500mL)의 경우, FTA 발효 이전보다 가격이 되레 상승했다. 수입가격은 2011년 상반기 492원에서 지난해 상반기 343원으로 30.3% 감소했고, 통관가격은 같은 기간 639원에서 356원으로 44.3% 저렴해졌다. 하지만 소비자가격은 3000원에서 3073원으로 73원(2.4%) 비싸졌다. 관세 인하의 효과를 맛본 건 소비자가 아닌 수입ㆍ유통업체라는 방증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일부 수입업체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소비자가 관세 인하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건 일부 업체가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어서 가격 경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입맥주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병행수입 등을 장려하고 있지만, 중소업체가 대형수입업체와 경쟁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국내 맥주 수입업체는 271개(2017년ㆍ한국무역통계진흥원)이지만 상위 10여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85%(한국주류수입협회)에 이른다. 업체별 시장점유율(2016년 기준)은 롯데아사히(18.0%ㆍ일본산 수입), 비어케이(16.0%), 하이네켄코리아(15.0%), 오비맥주(14.0%), 필스너우르겔코리아(9.0%), 하이트진로(6.0%) 등이다.

이중 네덜란드산 맥주 하이네켄을 수입하는 하이네켄코리아의 매출액은 2016년 811억원에서 지난해 1165억원으로, 영업이익은 248억원에서 383억원으로 증가했다. 독일산 에딩거와 중국산 칭따오 등을 수입하는 비어케이의 매출액은 같은 기간 860억원에서 1263억원으로, 영업이익은 147억원에서 237억원으로 불어났다.

EU·미국산 맥주의 관세가 완전 철폐됐지만, 소비자가격의 변화는 미미하다.[사진=뉴시스]
EU·미국산 맥주의 관세가 완전 철폐됐지만, 소비자가격의 변화는 미미하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수입업체나 유통업체는 ‘소비자가격과 관세 인하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맥주 수입업체 관계자는 “관세 인하분은 가격에 선반영돼 추가적인 가격 인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부 수입업체와 유통업체는 ‘남탓’만을 거듭했다. 또다른 수입업체 관계자는 “수입업체는 도매상과 유흥채널에 제품을 판매할 뿐, 소비자가격을 결정하는 건 유통업체”라고 말했다. 반면 대형마트 관계자는 “수입맥주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건 수입업체의 납품가격에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면서 “유통사가 폭리를 취하는 건 아니다”고 반박했다. 수입맥주의 적정 가격에 의문을 갖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건 어쩌면 이 때문이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가격을 높게 책정한 후 상시 할인 판매하는 것을 꼬집는 소비자가 부쩍 많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정희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가격을 높게 책정해 놓으면 소비자는 수입맥주 가격이 원래 전반적으로 비싸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서 “소비자에게 혼돈을 주고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전략인 셈이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수입맥주의 가격이 떨어지기는커녕 더 오를 공산이 커졌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가 4월 중 맥주의 주세를 기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기 때문이다. 심기준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맥주 1L당 주세 835원을 일괄 부과하는 종량세로 전환할 경우, 국내맥주(이하 500mL)의 소매가격은 2137원으로, 기존보다 363원 저렴해진다.

반면 수입맥주 소매가격은 2589원으로, 종전보다 89원 비싸질 전망이다. 어쨌거나 수입맥주는 또 다시 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높아졌고, 소비자는 봉이 될 확률이 커진 셈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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