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쫓겨난 사람들
도시재생, 쫓겨난 사람들
  • 최아름 기자
  • 호수 334
  • 승인 2019.04.17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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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반복되는 도시정비사업
계획부터 따로 놀면서 잡음 발생
도시재생 시끄러운 진짜 이유

# 자! 용어부터 보자. 재개발의 방식은 두개다. 재정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철거 등 낡은 재개발이다. 도시재생은 요즘 떠오른 말로, 함께 도시를 살리자는 것이다. 

# 여기 세운상가가 있고, 청계천·을지로 구역이 있다. 도시재생 방식으로 다시 태어난 세운상가는 ‘아름다운 꽃’이 됐다. 반면 낡은 재정비가 추진된 청계천·을지로 구역은 ‘시들해진 꽃’으로 전락했고, 그곳 상인들은 실망감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끝내 낡은 재정비가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청계천·을지로 상인들이 유별나게 법석을 떤다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그런데, 여기엔 한가지 비밀이 있었다. 세운상가도, 청계천·을지로 구역도 ‘도시재생’의 공간이었다. 청계천·을지로 구역이 낡은 재정비와 도시재생으로 동시에 묶이는 바람이 이 난리가 났던 거였다. 어떤가. 청계천·을지로에 눈물이 흐르게 만든 건 누구인가. 거친 상인들이 법석을 떨었기 때문인가. 더스쿠프(The SCOOP)가 답을 찾아봤다. 

도시재생에서도 쫓겨나는 사람들이 생긴 이유는 결국 느슨한 계획에 있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월 16일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이 중단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면 재검토’ 지시를 내린 탓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곳 상인들이 난리법석을 떤 결과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재개발 작업이 중단된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또 누구의 잘못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이는 없었다. 답은 정말 뜻밖이다. 서울시의 경험부족 탓이었다. 세운상가 청계천·을지로 주변 상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은 셈이다.

2019년 1월 16일 청계천·을지로 일대 재개발 사업이 멈춰 섰다. 모든 언론이 ‘을지면옥’ 논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35년 된 을지면옥이 50년이 넘은 함흥냉면보다 더 중요하냐는 문제 제기와 함께 보상 금액을 높여 불렀다는 논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서 진행된 재개발 사업이 왜 멈춰섰는지, 바로 옆에 있는 세운상가의 도시재생은 왜 멈추지 않았는지는 주목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에도 ‘을지면옥에 돈이 있니 없니’ ‘을지면옥 같은 노포를 살리느니 마느니’ 같은 작은 이슈에 매몰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청계천·을지로 일대 재개발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예고된 일이었다. 재정비(청계천·을지로)와 도시재생(세운상가)이 겹친 탓에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더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을지면옥을 포함한 세운상가군의 양옆 블록(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은 재정비 촉진지구인 동시에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이었다.”

1980년대부터 재정비 필요성이 제기된 세운상가 일대는 재정비 촉진지구인 동시에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묶였다. 모순이었다.[사진=서울시]

뜯고 부숴서 재정비하는 ‘재개발’과 다시 살려 정비하는 ‘도시재생’이 한데 묶여 있었으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대체 어디서 비틀어진 걸까.

시계추를 1970년대로 돌려보자. 주상복합건물로 만들어진 신식건물인 세운상가의 양옆에는 일제강점기 때 형성된 ‘제조업 상권’이 있었다. 1980년대부터 세운상가군을 제외한 제조업 상권을 재개발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경제침체와 맞물리면서 힘을 잃었다.

이렇게 잊힌 세운상가군의 재개발이 다시 이슈로 떠오른 건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하던 때였다. 오 전 시장은 세운상가 일대를 ‘신도심’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녹지축(2009년)’이었다.

오 전 시장은 종로의 세운상가부터 청계천의 대림상가를 거쳐, 충무로의 진양상가까지 이어지는 건물을 정리하고 종묘부터 남산까지 이어지는 공지에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플랜을 발표했다. 나름의 이주대책도 있었다. 세운상가 양옆에 고층건물을 만들어 장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노포가 문제가 아니다

실현 가능성은 없었다. 세운상가가 문화유산인 종묘 주변에 있는 탓에 고층건물을 짓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고도제한 탓이었다. 2008년 시장을 뒤흔든 글로벌 경제위기도 ‘녹지축 플랜’의 명분을 희석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오 전 시장이 스스로 시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세운상가 일대를 둘러싼 도시정비계획은 유야무야됐다. 이를 다시 꺼내든 건 2011년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다만, 콘셉트가 재개발에서 재생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전면철거 방식의 뉴타운·정비사업 관행을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공동체·마을 만들기 중심으로 바꾸겠다.” 바로 이것이 2012년 발표된 ‘뉴타운 출구전략’이었다. 마구잡이식 도시 개발 대신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원주민이 쫓겨나지 않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박원순식 도시정비의 목표였다. 건물을 부수지 않고 기존 산업을 유지하며 개발을 하겠다는 새로운 방식에 세운상가 일대의 도시정비계획도 새 국면을 맞았다.

2014년 3월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1구역)와 청계상가·대림상가(5-2구역)를 재정비 촉진지구에서 제외했다. 세운상가에 철거식 재개발 대신 건물 원형을 보존하는 도시재생 방식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됐던 사다리꼴의 땅에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상가 건물만 고스란히 ‘그대로 남겨서 유지하는’ 존치구역이 됐다[※참고 : 커버 파트2]. 그다음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 일대는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2015년 12월)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여기엔 세운상가군뿐만 아니라 재정비 촉진지구에서 빠지지 않은 세운상가군의 양옆 일대도 포함됐다. 세운상가군 주변 지역이 재정비 촉진지구인 동시에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이 된 것이었다. 주변 지역 상인들은 당연히 “이전처럼 밀려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무너뜨리고 쫓아내는 철거식 재개발이 아니라 ‘아름다운 도시재생’에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세운상가의 도시재생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젊은 제조업자들이 세운상가 보행 데크에 있는 ‘메이커스 큐브’에 자리를 잡았고 주변 지역의 소규모 제조업체에서 필요한 부품을 얻고 노하우를 배웠다. 하지만 이는 세운상가군만의 이야기였다. 도시재생지역이지만 여전히 재정비 촉진지구였던 세운상가군 일대(청계천·을지로)에선 철거가 진행됐고, 시공사가 결정됐으며, 새 건물(써밋타워)이 세워졌다.

세운상가의 도시재생에 몰두하는 사이, 그 주변에선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도시재생과 멀어지는 재정비 사업에 제조업 상인들의 실망은 깊어졌다. 그렇다고 철거 방식의 재개발에 하소연을 할 길도 없었다. 도시재생지역에 묶여 있긴 하지만 재정비 촉진지구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전혀 없었다. 2019년 1월 16일 이 지역의 재개발이 ‘전면 재검토’ 수순에 들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도시재생과 재정비 촉진지구가 한데 묶인 탓이었다. 서울시의 실책이자 경험부족이었다.

‘전면 재검토’ 결정은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이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 2014년 세운상가 도시재생 사업은 ‘계획수립’ 단계에서부터 삐거덕댔다. 불안한 계획이 불안한 결과를 낳았다. 2019년 현재 서울시에서 ‘계획수립’ 절차를 밟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지는 총 14곳이다.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사업에서 ‘전면 재검토’ 이상의 대안을 찾아낼 수 없다면 나머지 사업지의 미래 역시 불 보듯 뻔할 수밖에 없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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