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청구로 회의록 입수
세운상가 및 을지로·청계천 구역
“함께 개발하라” 조언 있었지만
서울시, 이런 조언들 외면해

세운상가를 복판에 두고 위아래에 자리를 잡은 곳은 청계천·을지로 일대다. 세운상가는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청계천과 을지로는 재정비란 명칭으로 ‘다시 개발’됐다. 개발이 진행되기 전인 2014년께 전문가들은 자문단 회의를 통해 세운상가와 청계천·을지로를 연계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끝내 문제가 터졌다. 더스쿠프(The SCOOP)가 2014년~2015년 세운상가 자문단 회의록을 단독입수했다.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자문단 회의에서 이미 주변 재정비 촉진구역과의 연계 필요성이 제시됐었다.[사진=뉴시스]

지난 1월 16일, 서울시가 돌연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청계천·을지로 재정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 세운상가 도시재생과 청계천·을지로의 재정비 사업이 사사건건 충돌을 빚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결단을 내렸던 거였다.

절차를 무시한 급작스러운 결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사업을 멈추고 재검토하는 건 다행스럽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청계천·을지로 재정비와 세운상가 도시재생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뭘까. 서울시의 원래 플랜은 또 무엇이었을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선 2014년께 열렸던 ‘세운상가군 활성화 방안 수립 자문단 회의’의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서울시 총괄 건축가가 여러차례 참석하기도 했던 자문단 회의는 2014년 3월부터 2015년 6월까지 1년여 이어졌다. [※ 참고 : 독자 편의를 돕기 위해 보고서에 나오는 용어를 먼저 정리한다. 청계천·을지로 재정비 사업은 ‘재정비 촉진구역’이라는 용어로 표현돼 있다. 세운상가 도시재생은 ‘세운상가군’으로 짧게 줄여놨다. 청계천·을지로 재정비와 세운상가 도시재생은 방법론적 분류이고, 재정비 촉진구역과 세운상가군은 지역적 구분이다.]

 

세운상가군 활성화 자문단 회의는 2014년부터 15차례에 걸쳐 진행됐다.[사진=천막사진관]
세운상가군 활성화 자문단 회의는 2014년부터 15차례에 걸쳐 진행됐다.[사진=천막사진관]

더스쿠프(The SCOOP)는 정보공개청구 절차를 밟아 ‘세운상가군 활성화 방안 수립 자문단 회의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회의 보고서는 크게 7차 회의까지 이어지는 전반부와 8차부터 15차까지 이어지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주요 내용이 8차 회의를 기점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1차에서 7차 회의까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세운상가군’ ‘재정비위원회’ ‘활성화’였다. 8차 회의부터는 ‘심사위원’ ‘설계’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첫 회의는 2014년 7월 15일 시작됐다. 회의의 목적은 ‘세운상가군 활성화 방안 수립’을 위한 용역에 착수하기 전에 전문가의 자문을 받겠다는 거였다. 자문단에 참석한 일부 관계자들은 청계천·을지로가 포함돼 있는 ‘재정비 촉진구역’을 ‘세운상가군’과 동일한 범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운상가군과 함께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지진 않지만, 세운상가 양옆에 있는 청계천·을지로에서 진행되는 재정비 사업이 도시재생과 궤를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한단계 더 나아가 일부 전문가는 주변 촉진지구의 계획까지 세운상가군 도시재생 사업과 비슷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운상가군과의 연계성을 고려, 주변촉진구역의 계획을 재정비위원회에 일임하기보다는 세운상가군 활성화 방안을 이해하는 조직을 통해 주변구역의 개별 사업을 자문할 수 있는 구도 필요….”

자문단의 조언을 종합하면 대략 이렇다. 세운상가군 양옆에 있는 청계천과 을지로의 재정비 사업을 세운상가군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함께 진행하라는 것이다. 도시재정비든 도시재생이든 방법론적 차이에 집착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실제로 자문단은 청계천·을지로 재정비 촉진구역에 세운상가군의 도시재생과 연계되는 ‘가이드라인’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회의(2차)의 결론도 “자문단 확대 운영 검토·시행(세운재정비촉진구역 포함)”이라는 방향으로 기록됐다. 그 이후에도 ‘세운상가군 아이디어 공모’를 대시민 홍보로 하기 위해선 ‘주변 지역 재생차원의 방향’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자문단 회의가 뒤로 갈수록 재정비와 재생을 함께 진행하자는 콘셉트는 힘을 잃었다. 되레 도시재생에서는 세운상가군만 단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잇는 ‘보행데크’였다. 서울시 총괄건축가가 ‘보행데크’는 이미 정해진 계획이고 ‘주변지역 도시재생’까지 여기서 거론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자문단 내에서는 촉진지구까지 구태여 언급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세운상가 도시재생과 청계천·을지로 재정비가 따로 놀기 시작하자, 이곳 상인들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을지면옥 논란으로 대표되는 재정비 사업의 문제가 터진 것도 세운상가군 도시재생과 청계천·을지로 재정비 사업이 따로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세운상가군의 도시재생은 세운상가군을 보행 네트워크의 중요한 축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라면서 “주변의 산업 생태계는 도시재생에서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더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회의록 전체를 요구했지만 서울시로부터 회의록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회의 보고서가 아닌 회의록의 경우 외부 용역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개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재정비 사업의 오답노트조차 서울시 밖에 있는 셈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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