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와 합의금 분쟁, 양치기의 유혹

여기 교통사고 피해자 최씨가 있다. 고령이기 때문인지 최씨에게 나타난 교통사고 후유증(허리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1년이 지나자, 보험사 직원이 찾아왔다. 그는 “할머니, 향후 후유증이 발생하면 배상해 드릴게요”라면서 합의를 종용했다. 보험사는 과연 합의 후에도 최씨 할머니에게 추가배상을 할 생각이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와 변호사닷컴이 추가배상과 보험사의 유혹을 살펴봤다.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예상되면 보험사와 합의를 할 때 신중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예상되면 보험사와 합의를 할 때 신중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흔히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사고를 낸 당사자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사고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다. 이를 통해 사고 피해자는 병원치료를 받는다. 치료가 금방 끝나는 경미한 사고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후유증이 남는 경우엔 좀 다르다.

사고 피해자는 더 많은 치료를 받길 원하지만, 보험사는 보험금을 언제까지 지급해야 할지 기약이 없으니 빨리 합의를 해서 마무리하려 한다. 사고를 낸 당사자도 보험료가 올라가니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럴 때 보험사는 사고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데, 사고 피해자는 합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지 사례 하나를 통해 살펴보자.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올해 72살의 할머니 최동희(가명)씨는 지난해 봄 같은 아파트 단지 사람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갔다. 그런데 잘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관광버스 기사가 도로의 요철을 못 본 채 그냥 지나쳤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버스는 잠깐 위로 튕겨 올랐다. 그 바람에 뒤쪽에 타고 있던 최씨 역시 위로 튕겨 올랐다가 자리에 떨어졌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음에도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에 엉덩방아를 찧은 건데, 이로 인해 최씨는 전치 8주의 허리 부상을 입었다. 관광버스 측은 100% 과실을 인정하고 최씨가 보험사를 통해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처리했다. 

문제는 병원 측이 “최씨의 허리부상은 원상복구될 수 없는 부상”이라면서 “향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 발생했다. 최씨의 통원치료가 1년을 넘기자 보험사 측은 최씨에게 일정 금액의 합의금을 제시하면서 합의를 종용했다.

최씨는 “합의금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허리 통증이 계속되고 있고, 향후엔 어떤 치료가 더 필요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합의를 해야 한다니 좀 황당하다”고 하소연했다. 최씨가 이렇게 나오자 보험사 측은 “당장 합의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가 제시하는 합의금조차 못 받을 수도 있다”면서 으름장을 놨다. 

 

자!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일반적으로는 보험사 측이 하자는 대로 합의를 한다. 보험사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이고, 사고 피해자는 보험 관련 지식이 별로 없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행여 보험사 측이 “우리는 할 만큼 했고 더 이상의 의무가 없다”면서 채무부존재 소송이라고 걸어오면 평생 법원 근처에도 가보지 않고 살아온 이들은 벌벌 떨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기도 한다. 

보험사, 치료비 늘자 합의 종용

물론 후유증이 남지 않을 만한 가벼운 사고라면 보험사 규정대로 합의금을 받고 단순 합의로 빨리 종결짓는 게 서로 간에 좋다. 소송의 실익은 투입되는 비용이나 시간, 노력에 비하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처럼 향후 후유증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럴 때는 쉽게 합의를 해줘선 안 된다. 

보험사 직원이 “향후 후유증이 발생하면 다시 배상해드리겠다”면서 “합의서에도 이런 내용을 포함해주겠다”고 사고 피해자를 유혹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합의서가 실제론 거의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에서다. “합의 이후 발생한 후유증에 추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합의 당시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던 범위 내의 손해’는 여전히 합의가 된 것으로 본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관련 후유증이 합의 당시엔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예견할 수 없었다는 걸 입증하는 것도 피해자의 몫이다. 

이를 최씨 사례에 적용해보자. 전제는 최씨가 ‘나중에 배상하겠다’는 보험사의 말을 믿고 합의했을 경우다. 만약 합의 후 후유증으로 허리통증이 계속된다면 최씨는 추가배상청구를 하기가 힘들다. 허리통증이 합의 당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추가배상을 받으려면 최씨가 허리통증 외에 또 다른 질병을 찾아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허리통증에 시달리는 최씨가 계속 치료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합의를 보지 않고 계속 치료를 받을 방법은 마땅히 없다. 보험사는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얼마나 현명하게 합의를 하느냐다. 

먼저 사고 피해자는 무작정 보험사 직원의 권유에 따라 합의에 응하기보다는 이미 발생한 치료비와 향후 발생 가능한 치료비, 위자료 등의 손해액을 산정한 후 보험사 직원이 제시한 합의금과 비교해 적절한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합의를 진행하는 게 순리다. 

채무자는 피해자 아닌 보험사

보험사는 만만찮게 반응할 게 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합의가 잘 안 될 경우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해 압박할 수도 있다. 명심할 건 사고 피해자가 겁 먹을 일은 전혀 없다는 거다. 채무자는 사고 피해자가 아니라 보험사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중재를 통해 합의로 마무리되지 않고 끝까지 갈 경우 보험사의 부담도 적지 않다. 보험사가 소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합의금을 낮추겠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만약 형편이 어렵다면 소송구조訴訟救助 제도를 이용해 볼 수도 있다. 이 제도는 소송비용을 지출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 법원이 신청 또는 직권으로 재판에 필요한 일정한 비용(인지대, 변호사 보수, 송달료, 증인여비, 감정료 기타 재판비용)의 납입을 유예 또는 면제해주는 제도다. 패소할 게 명백하지 않은 사건에 한해 법원이 재량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신청하더라도 나쁠 건 없다. 
김성경 IBS법률사무소 변호사 ksk@ibslaw.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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