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와 아시아나 ‘잘못된 만남’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국내 2위 국적항공사가 매물로 나온 만큼 여러 후보군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중이다. 인수 후 시너지를 분석하는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누구나 군침을 흘릴 법한 기업이 왜 시장의 매물로 나왔느냐”를 되짚어 봐야 한다. 그래야 탄탄한 기업이 오너의 탐욕으로 휘둘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박삼구 금호 전 회장과 아시아나항공의 잘못된 만남을 분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에서 촉발된 회계 쇼크가 그룹 전체 위기로 번졌다.[사진=뉴시스]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에서 촉발된 회계 쇼크가 그룹 전체 위기로 번졌다.[사진=뉴시스]

83대 항공기 보유, 33개국ㆍ91개 도시 운항, 국내 유일 스카이트랙스 선정 5성급 항공사…. 명실상부 한국의 2대 국적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인수ㆍ합병(M&A) 시장의 매물로 나왔다. ‘경영환경 악화’ ‘경쟁 대열에서의 고전’ 등의 이슈 탓만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CEO이자 오너였던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오판과 실기도 아시아나가 항로를 이탈하는 데 한몫했다. 

■과욕과 재앙 =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은 심각하게 부족했다. 매년 6조~7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건실한 회사인데도 자금난에 시달렸다. 이는 박삼구 전 회장의 ‘금호그룹 재건 작업’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돈줄로 삼았기 때문이다.

2015년 박 전 회장은 ‘승자의 저주’로 공중분해된 그룹을 재건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핵심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보유한 금호산업을 채권단으로부터 되사오는 것이었다.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박 전 회장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금호기업에 계열사 자금이 동원됐다. 금호기업은 설립 이후 7개 계열사로부터 총 966억원을 차입했다.

문제는 이들 계열사가 모두 아시아나항공과 직접 연관된 회사였다는 점이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다. 아시아나IDT,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세이버,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은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다. 아시아나항공의 재산이 금호산업 인수전에 동원된 셈이다. 그룹 재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알짜자산이 헐값에 팔리기도 했다. 2016년 4월, 아시아나항공은 자산가치 8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던 자회사(지분 100%) 금호터미널을 2700억원에 팔아넘겼다. 매수자는 박 전 회장의 개인회사인 금호기업이었다. 

■ 넘버2 항공사 제살깎기 =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빚더미에만 앉힌 게 아니다. 기업 경쟁력도 깎았다. 2010년만 해도 이 회사는 영국 스카이트랙스에서 선정하는 톱100 항공사에서 1등에 선정되는 등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지난해 이 순위가 24위까지 추락했다. 2015년부터 뼈를 깎는 재무적 구조조정을 진행했지만 체질 개선에는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사태는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인 박삼구 전 회장의 오판에서 시작됐다.[사진=뉴시스]
아시아나항공 매각 사태는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인 박삼구 전 회장의 오판에서 시작됐다.[사진=뉴시스]

항공사로선 가장 중요한 항공기 라인업만 봐도 그렇다.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항공사 중 노후 항공기 비율이 가장 높다. 보유ㆍ임대 중인 항공기 83대 중 22.9%(19대)가 연료효율이 낮고 기령(항공기 연수)이 20년 이상인 노후기다.

지난해 7월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기내식 공급 차질’이란 대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15년간 계약해온 업체와 연장을 포기하고 2016년 말 새 업체와 계약했는데, 이 업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공급 일정이 꼬였다.

사건의 도화선이 된 ‘기내식 업체 변경’ 역시 박삼구 전 회장과 연관이 깊다. 새 기내식 업체의 모회사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금호그룹 지주회사에 16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기내식 업체 교체를 결정한 시기(2016년 12월)와 투자를 받은 시기(2017년 3월)도 엇비슷했다. 

이밖에 장거리노선에서 기내식 전에 제공되던 음료와 간식 서비스를 없애는 등 기내 서비스를 축소했다. 지난해에는 항공사 운영에 필수인 인천공항 제2격납고까지 담보로 내걸고 대출을 받기도 했다. 박 전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은 ‘마른 수건’이나 다름 없었다. 

■ 이동걸 체제 전까지… = 박삼구 전 회장은 딜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유가 있었다. 2015년 9월 7228억원에 인수한 금호산업의 최초 매각가는 1조213억원이었다.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무려 2985억원이나 낮췄다. 채권단이 일찍이 박 전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고, 별다른 경쟁 입찰자 없이 단독으로 거래가 진행된 덕분이다.

박삼구 전 회장이 효성과 코오롱, LG 등 백기사를 더하고 계열사 출자까지 동원해 자금을 마련할 때도 산업은행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렇듯 정부와 산업은행은 박 전 회장이 그룹을 재건한다는 명분으로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다 썼지만 눈을 감았다. 

그 때문인지 박 전 회장은 대담했다. 201 7년 1월 금호타이어 인수전이 본격화할 때 그가 산업은행을 향해 으름장을 놓은 건 대표적 사례다. 금호타이어 우선협상대상자로 중국의 더블스타가 선정되자 “컨소시엄 허용해 달라, 안 해주면 금호타이어를 포기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국내 2위 타이어 업체를 중국 기업에 넘겨서야 되겠냐는 토종자본론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동걸 체제가 들어선 산업은행은 이전과 달랐다. “박 전 회장 개인에게 속한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했다. 결국 혼자서 자금을 마련할 수 없던 박 전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를 포기했다.

문제는 그룹 지배구조

이를 기점으로 정부와 채권단의 태도는 달라졌다. 공공연하게 금호그룹에 압박을 가해 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어려움의 근본적 배경은 그룹 지배구조 문제”라고 했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모든 것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며 박 전 회장을 몰아붙였다. 대주주의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한 셈이다.

박 전 회장은 마지못해 ‘자진 사퇴’ 카드를 꺼냈지만 효과는 없었다. 사재출연 등 구체적인 회생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회계법인에 자료를 충분히 넘기지 않아 회계쇼크를 일으켰고,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현실화했다.

문제는 이런 박 회장의 도박이 단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가 앞으로도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상황이라서다. 박 전 회장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국민혈세를 낭비한 점도 뼈아프다. 이번 매각 사태를 단순히 경영 실패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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