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회원국 중 두번째 높아
한경연 “세계은행 자료 근거”  
노동전문가 “장난 같은 자료”

한국경제연구원은 OECD의 해고비용을 분석하면서 퇴직금을 해고비용에 포함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런 분석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국경제연구원은 OECD의 해고비용을 분석하면서 퇴직금을 해고비용에 포함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런 분석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 해고비용이 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많이 들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게 쉽지 않다.” 민간경제연구소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주장이다. 조선업 침체로 해고된 사람, 한국GM의 공장폐쇄로 갈 곳을 잃은 사람,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비정규직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지 모른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이 주장, 팩트에 기반한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난해한 질문의 답을 찾아봤다. 

“어린애들 장난처럼 낸 자료에 불과하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할 일이 없어 그러겠나. 특정한 의도를 갖고 아전인수 격으로 낸 자료로 볼 수밖에 없다(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지난 9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한국의 해고비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터키 다음으로 높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발표하자, 이를 두고 일부 학자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왜일까.

한경연의 주장을 좀 더 보자. 한경연은 “세계은행(WBㆍWorld Bank) 자료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2019’를 이용해 OECD 회원국의 법적 해고비용과 해고규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노동자 1명을 해고할 때 평균 27.4주치 임금이 발생했다”면서 “OECD 36개국 중 이보다 법적 해고비용이 높은 국가는 29.8주치 임금을 지급하는 터키뿐이었다”고 밝혔다. 

한경연이 밝힌 법적 해고비용이란 ‘해고수당’과 ‘해고 전 예고비용(해고예고비용)’을 주급으로 환산해 합산한 금액이다. 여기서 해고수당이란 퇴직금을 뜻한다. 해고 전 예고비용이란 해고가 곧바로 이뤄지지 않고 해고의 예고기간만큼 고용이 유지돼 발생하는 임금이다. 예컨대 예고기간이 30일이면 1개월치의 월급이 해고예고비용인 셈이다. 

한경연은 또 “우리나라의 ‘해고 전 예고비용’은 22위로 낮은 수준이지만, ‘해고수당’은 터키ㆍ칠레ㆍ이스라엘과 공동 1위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면서 “우리나라는 해고비용ㆍ규제, 노동시장 경직성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보다) 해고가 어려워 경기변동이나 산업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리고는 “한국 기업의 해고비용(27.4주치 임금)이 OECD 평균(14.2주치)보다 높은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합리적인 해고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기업들이 근로자 1명을 해고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으니 관련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인데, 논란은 크게 3가지다. 

먼저 해고비용의 정의다. 한경연이 자료를 낸 다음날 고용노동부는 이런 해명자료를 냈다. “퇴직금은 해고 여부와 관계없이 지불된다. OECD의 고용보호지수(EPLㆍEmployment Protection Legislation)에서도 퇴직금을 임금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퇴직금을 해고비용(수당)으로 보는 건 타당하지 않다.” 한경연 주장의 근거가 약하다는 비판이다. OECD 회원국들의 노동정책이나 사회복지제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이와 다르지 않다. 

퇴직금은 해고비용 아니야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해고의 경직성을 얘기할 때는 주로 OECD가 내놓는 고용보호지수를 사용한다. 여기에 해고비용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어서다. OECD는 2013년 이후 퇴직금을 해고비용으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퇴직금을 (해고비용에서) 제외했는데, WB의 자료로 다시 퇴직금을 끌어들여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 참고 : 물론 고용보호지수가 해고비용을 제대로 잘 설명해주는 건 아니다. 이 지수 역시 제도적인 측면에서만 들여다 볼 뿐이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다만 그런 한계를 넘는 연구자료를 내놓는다면 몰라도 아직은 고용보호지수가 최선이라는 주장이 많다.]

실제로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봐도 퇴직금은 ‘임금’이지 ‘수당’이 아니다. 국내법에서도 임금으로 판단하고 있는 퇴직금을 한경연은 수당이라고 자의적인 해석을 한 거나 다름없다. 정년퇴직자나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이들에게도 퇴직금은 지급한다. 하지만, 그들을 해고됐다고 표현하지는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경연 관계자는 “연봉협상 시에 퇴직금까지 묶어서 협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임금으로 보기 힘들다”면서 “우리는 WB의 자료를 근거로 통계를 만들어 발표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비판은 한경연의 주장대로 설사 퇴직금을 해고비용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해고비용이 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다고 할 수 있느냐는 거다. 김윤태 고려대(사회학) 교수는 “해고비용은 단순 비교하기가 곤란한 측면이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상당수 유럽 복지국가들은 노동자가 해고돼도 각종 사회안전망 덕분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사회안전망에 투입되는 비용은 기업들이 사회보험료로 상당 부분 부담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률이 높지도 않고, 오래 부담한 것도 아니다. 사회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다. 연금보험료 가입은 물론 퇴직금도 없이 쫓겨나는 비정규직이 넘쳐나는데, 해고비용이 높다고 할 일인가. 따라서 퇴직금만을 놓고 해고비용이 높다고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

일례로 독일의 기업들은 노령연금(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 보험료와는 별도로 직장연금 보험료를 부담하기도 한다(전액 사측 부담). 노사합의에 따라 운영되는데,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들은 이런 시스템을 두고 있다. 

논란거리는 또 있다. 한경연이 주장한 ‘해고 규제가 많다’는 것도 논박이 가능하다. OECD 회원국의 상당수는 해고예고기간이 근속연수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최대 기간도 우리나라(3개월 이상부터 30일)보다 훨씬 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한경연이 말하는 해고 전 예고비용이 많을 수밖에 없고, 해고가 간단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한경연은 해고 관련 규제가 하나 더 많다는 이유로 규제가 강하다고 주장한다. 한경연은 보도자료에서 “OECD 회원국의 해고 관련 규제는 평균 3개 조항(집단해고 시 제3자 통지, 재훈련 및 전보배치의무, 우선해고순위)을 두고 있는데, 한국은 4개 조항(경영상 필요에 의한 해고, 개별해고 시 제3자 통지, 집단해고 시 제3자 통지, 해고자 우선 채용 원칙)을 두고 있다”면서 “해고 규제가 더 많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해고비용이 OECD 중 두번째로 높다고 했지만, 이 주장은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해고비용이 OECD 중 두번째로 높다고 했지만, 이 주장은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숫자보다는 내용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상당수 국가는 경영상 이유로 해고를 하더라도 사회적 여파 등을 신중히 고려하도록 법적 기준을 세워놓고 있다. 사용자의 자율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하는 우리나라의 해고 관련 규제가 과연 강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논란거리 많지만, 검증은 없어

김윤태 교수 역시 “일부 국가에선 재취업이 좀 더 쉬운 신규 취업자나 부양가족이 없는 사람을 해고 우선 대상자로 선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측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의 안정성을 고려한 기준”이라면서 “우리나라처럼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저성과자라는 딱지를 붙여 내쫓는 식의 상황과는 분명 다르다”고 꼬집었다. 

한경연의 “한국의 해고비용이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는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자료가 팩트와 현실을 충실하게 담았는지는 의문이다. 보도자료 내용의 근거와 기준을 다시 한번 꼬집어봐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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