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사계 강우태의 봄] 페인트칠이요? 꿈의 벽 만듭니다
[창업가 사계 강우태의 봄] 페인트칠이요? 꿈의 벽 만듭니다
  • 이지원 기자
  • 호수 336
  • 승인 2019.05.02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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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 5人의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 강우태 라주어코리아 대표

“페인트는 유해하다.” 강우태(58) 라주어코리아 대표에게 가장 깨부수기 힘든 편견이다. 친환경 페인트를 바른 집에서도 새집 증후군을 앓는 이들이 수두룩하니, 소비자를 탓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강 대표는 “친환경 페인트와 천연 페인트는 다르다”고 말한다. 라주어코리아는 천연 페인트를 라주어 기법으로 시공하는 업체다. 단순히 페인트를 바르는 게 아니라 색채공간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하는 것이 강 대표의 일이다. 더스쿠프(The SCOOP)의 창업가 4계, 이번엔 강우태 대표의 봄 편이다.  

라주어코리아 사무실에는 천연 페인트와 기자재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라주어코리아 사무실에는 천연 페인트와 기자재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1988년. 스물일곱살의 청년 디자이너 강우태 라주어코리아 대표는 출장차 일본 도쿄 땅을 밟았다. 그에게 디자이너라는 꿈을 꾸게 한 일본 디자인계 거장 가메쿠라 유사쿠龜倉雄策(1915~1997년)의 나라였다. 강 대표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가메쿠라 유사쿠의 1964년 도쿄 올림픽 포스터는 현재까지 가장 완벽한 올림픽 포스터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일본은 디자인 면에서 한국을 훨씬 앞서 있었고, 이는 강 대표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상을 보면서 그의 마음엔 작은 꿈 하나가 꿈틀거렸다. “예술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품 포장재를 만드는 디자이너에서 미술학원 교사로, 교사를 교육하는 교육자로 일하며 먼길을 돌아야만 했다. 꿈을 꾼 지 20여년 만인 2013년 그가 세운 시공업체 라주어코리아가 ‘예술로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드림 팩토리(Dream Factory)였다. 라주어코리아는 천연 페인트를 수채화 기법 중 하나인 ‘라주어(lazureㆍ밝은 색부터 겹겹이 칠하는)’ 기법으로 칠하는 시공업체다.

혹자는 “페인트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 “페인트를 예술로 치환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느냐”고 묻는다. 강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단순히 페인트를 칠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창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살아 숨쉬는 벽을 만드는 겁니다. 이를테면 꿈의 벽이죠.” 살짝 어렵다. 강 대표의 속내를 더 들어봐야겠다.

✚ 촉망 받는 디자이너에서 창업가로 변신한 계기가 뭔가요.
“1987년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식품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했습니다. 당시로선 드문 전문경영인 체제였는데, 식품회사임에도 디자인을 사업의 중요한 요소로 꼽았죠. 디자이너에게 거는 기대도 컸습니다. 재미나게 일했어요. 하지만 3년 후 대표가 물러나면서 회사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쯤 지나고 나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디자이너에서 창업가로…

✚ 사표를 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다행히도 가족들은 제 결정을 지지해줬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했고, 네살 된 아이가 있었으니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죠. 당장 충무로에 있는 디자인 전문 광고대행사에 들어갔습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주체적으로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라주어코리아 사무실 벽면은 강우태 대표가 직접 그린 ‘라주어(lazure · 밝은 색부터 겹겹이 칠하는)’ 기법으로 꾸며져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라주어코리아 사무실 벽면은 강우태 대표가 직접 그린 ‘라주어(lazure · 밝은 색부터 겹겹이 칠하는)’ 기법으로 꾸며져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예상이 맞았나요.
“아니요? 전혀요(웃음). 고객의 의뢰를 받아서 전단지나 포장재를 주문대로 만들어주는 일이었어요. 매일같이 야근하며 일에 매달렸지만, 어느 순간 ‘내가 길가에 버려지는 쓰레기만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디자인을 통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미술학도의 순수한 열망은 현실 앞에서 고꾸라졌다. “더 이상 내 꿈은 디자이너가 아니다”면서 마음을 접었고 1년여 만에 광고대행사를 나왔다. 당시 함께 미술을 전공한 아내가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던 만큼,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때는 1992년께였다.

✚ 미술학원 운영은 순조로웠나요.
“아내가 안산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당시 한국에는 8000여개의 미술학원이 있었는데, 보육시설이 지금처럼 잘 갖춰지지 않은 때라서 미술학원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상업적인 학원이 많았죠. 미술 전공자가 아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경우도 숱했습니다.”

✚ 당시 미술학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였나요.
“아이들 모두가 똑같은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였습니다. 예컨대 선생님이 아이의 손을 함께 쥐고 ‘그림은 이렇게 그리는 거야’라고 가르쳐주는 식이죠. 당연히 아이들의 내면에 있는 예술성을 끄집어내서 창의적인 그림을 그리게 하기는 어려웠죠. 아이들 발달에 맞는 미술 지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라주어코리아의 밑그림을 그린 건 이때부터였다. 미술학원 선생님이 된 지 4년 후인 1996년, 독일의 대안학교 발도로프로 교육시스템을 배우러 떠나면서다. 강 대표는 사비를 털어 2주간 독일로 연수를 떠났다. 그가 찾은 발도로프학교는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획일화한 공교육에 저항해 1919년 세운 대안학교였다.

✚ 독일 발도로프 학교는 어떤 점이 한국과 달랐나요.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맞춰 교육하고, 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어요. 그 방법으로 예술교육을 강조했습니다. 획일적으로 교육하고, 성취도만을 평가하는 한국과는 달랐습니다.”

✚ 발도로프 교육을 접한 게 라주어코리아 창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발도로프 학교에서 한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100여년 전부터 교실 환경의 중요성을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발도로프 학교가 설립된 1919년은 1차세계대전 직후였습니다. 아이들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고, 공격성도 강했죠. 루돌프 슈타이너는 교실 색을 학생들의 발달 심리에 맞게 학년별로 다르게 칠했습니다. 천연 색채를 사용해 라주어 기법으로 칠했죠.”

색채공간이 미친 긍정적 영향 

✚ 어떤 효과가 나타났나요.
“아이들의 폭력성이 사라지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1987년 독일 정부가 ‘발도로프 졸업생 중 단 한명도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고 발표한 건 단적인 예죠. 감옥마저 연상되는 회색빛 교실에서 경쟁을 강요당하는 한국 아이들에게도 아동 발달 단계별 색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라주어코리아를 창업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1999년부터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발도로프 사범대학 교육학위를 이수했습니다. 2003년 이후엔 발도로프교육예술원 ‘아이라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러 학교의 예술수업이나 교사 연수기관에 강의를 나가면서, 발도로프의 색채공간을 알렸죠. 색채공간의 중요성에 공감한 교육기관에서 하나둘 시공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요청이 늘면서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하게 됐죠. 2010년 한국을 찾은 영국의 라주어 페인팅 전문가인 로버트 로드 영국 에머슨대(색채교육학) 교수에게 페인팅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라주어코리아 사무실에는 천연 페인트와 기자재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라주어코리아 사무실에는 천연 페인트와 기자재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준비 과정은 순탄했나요.
“종잣돈 500만원을 모아서 2013년 8월 라주어코리아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시청 앞에 보증금 300만원, 월세 13만원짜리 작은 사무실을 얻었어요. 남은 200만원으로 천연 페인트, 사다리 등 기자재를 준비했습니다. 직원은 아내와 저 둘뿐이었죠.”

✚  첫 작업은 언제 들어왔나요.
“몇주간 의뢰가 한건도 없었어요. 다행히 창업 한달을 넘기기 직전 영천 금호어린이집에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리모델링 예산 3000만원 중 1000만원이 페인트 시공 비용이었는데, 자재비를 빼고 나니 한달여 작업 만에 200만원이 남더군요.”

✚ 시공 의뢰는 꾸준히 들어오나요.
“발도로프 교육에 관심 있는 교육기관에서 알음알음 시공을 의뢰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국립공주대학교 부속유치원, 화성청원초등학교, 서울영훈초등학교, 서울샘터유치원, 경기도이천유치원 등 교육기관부터 조계종 봉녕사, 동수원교회 등 종교기관을 작업했습니다.”

✚ 라주어코리아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페인트 거부감을 줄이는 게 가장 어렵죠. 흔히 페인트는 냄새나고, 독성이 강해 실내에 칠하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일반 페인트는 실제로 새집증후군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 라주어의 페인트는 다른가요. 
“라주어는 독일산 아우로(AURO) 천연 페인트를 사용합니다. 한국에도 친환경 페인트가 많지만, ‘친환경’과 ‘천연’은 다른 개념이죠. 아우로 페인트는 100여가지 자연 원료만을 사용해 피부에 발라도 안전합니다. 새집증후군도 없습니다. 기존 페인트가 화학물질을 사용해 기존의 색을 덮어버릴 정도로 두껍게 발린다면, 천연 페인트는 여러번 덧칠할 수 있을 만큼 얇게 발리죠.”

✚  여러 번 덧바르는 만큼 비싸지는 않나요.
“천연 페인트를 둘러싼 오해 중 하나가 비싸다는 인식이에요. 일반 페인트는 18L 한통으로 60㎡(약 18평) 칠할 수 있지만 천연 페인트는 10L 한통으로 90㎡(약 27평)를 칠할 수 있어요. 그만큼 일반 페인트는 면적당 많은 양의 페인트를 바른다는 거죠. 이런 점을 고려하면 천연 페인트로 시공하는 게 오히려 더 저렴할 수 있어요.”

✚ 그동안 라주어코리아는 어떤 성과를 이뤘나요. 
“연간 30건 정도 시공하고 있습니다. 매출액은 연 2억원가량이고요.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의 의뢰가 70% 수준이다보니, 방학기간인 1~2월에 작업이 많이몰리는 편입니다.”

✚ 꾸준히 의뢰가 들어오는 게 중요하겠네요.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3년 전부터 환경부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친환경대전에 참가하고 있어요. 국내 페인트 시장은 대형 업체가 꽉 쥐고 있어서 천연 페인트가 자리 잡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점차 천연 페인트의 장점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국가기관이나 건설사가 주관하는 공모사업에도 제안서를 내고 있어요. 아직 성과는 없었지만 꾸준히 해볼 생각입니다.”

강 대표는 쉽지 않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한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라주어코리아가 한뼘 더 자라있을 여름에 만나기로 했다. 강 대표는 그때까지 홍제동 구립 어린이집과 천안 한들초등학교에서 색채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워놨다. 그가 칠한 ‘꿈의 벽’에서 아이들은 어떤 꿈을 그리고 있을까. 그의 여름이 궁금하다.
글=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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