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열풍 2년 後

2017년은 비트코인의 해였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내건 탈중앙화라는 가치에 공감했고,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덕분에 2017년 말엔 ‘1비트코인 2만 달러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하지만 상승세는 거기까지였다. 이슈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듯 시세가 출렁였다. 최근 시들했던 가상화폐가 또다시 꿈틀대고 있지만 이전의 약점이 해소됐는지는 의문이다. 가상화폐는 여태껏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또다시 불붙고 있는 가상화폐의 리스크를 점검했다. 

가상화폐 투자자 사이에서 시장이 다시 상승장에 들어섰다는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가상화폐 투자자 사이에서 시장이 다시 상승장에 들어섰다는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2017년 5월 21일.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시세가 2000달러를 돌파했다. 1월만 해도 900달러 남짓이었는데 넉달만에 몸값이 두배 넘게 뛰었다. 비트코인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쏟아졌다.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인정한 나라(일본)까지 등장했다. 당연히 비트코인 미래에 낙관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비트코인의 매력적인 콘셉트인 ‘탈중앙화’가 근거였다. 창립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거대 투자은행의 탐욕과 중앙은행의 무력함이 빚어낸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비트코인을 창안했다. 비트코인의 수식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중앙은행과 같은 발행자가 없다. 중간관리자도 없다. 그럼에도 안전하게 거래내역을 저장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서다. 암호화된 데이터 블록고리를 거래에 참여한 모든 컴퓨터에 분산ㆍ저장해 서로 대조하게 만들면, 개인과 개인이 안전하게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비트코인이 기존 화폐를 대체할 혁신적인 아이템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가격은 고삐가 풀린 듯 치솟았다. 2000달러를 돌파한 지 불과 7개월 뒤인 2017년 12월 18일엔 최고가인 1만9666달러를 기록해 10배나 값이 뛰었다.몸값만이 아니었다.

비트코인은 다양한 분야에서 화제를 양산했다. 백수에서 수백억원 자산가가 된 청년들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심심찮게 들렸고, ‘존버(기를 쓰고 버틴다는 은어)’ ‘가즈아(상승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은어)’ 등 유행어도 파생됐다. 열풍은 담론으로도 번졌다. 비트코인의 지속적인 상승을 예측하면서 실제 투자에 뛰어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혹자는 가상화폐의 급등세를 두고 “거품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투기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각국이 가상화폐 거래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우리 정부는 실명제 도입을 시작으로 규제의 고삐를 죄었다. 미국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다른 디지털자산들을 화폐가 아닌 ‘증권’으로 분류해 소득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했다.

정부 규제 때문인지 가상화폐 열풍은 잠잠해졌다. 두 사람만 모이면 너도나도 비트코인을 입에 올리거나 가상화폐 시세표에 골몰하던 2017년과 2019년 지금은 다른 양상이다. 무엇보다 가상화폐 투자로 크게 벌겠다는 ‘한탕주의’가 사라졌다. 2년 전처럼 비트코인 시세가 급등하는 일도 없었다. 되레 우하향 곡선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화폐를 대체하겠다는 비트코인의 꿈은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이유다.

1비트코인 2만 달러 시대

하지만 뜻밖에도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를 반기고 있었다. “세상이 우려하던 거품이 꺼졌다. 지금은 가상화폐 생태계가 정화되는 과정이다.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실물경제에 기능할 날이 멀지 않았단 얘기다.” 투기꾼이 사라지고, 비트코인의 미래를 보는 진짜 투자자만 남았으니, 다시 옛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 비트코인 가격 추이는 반등세다. 올 1월만 해도 3000달러 중반대에서 움직이던 비트코인 시세는 5500달러(4월 25일 기준)에서 거래 중이다. 다른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가상화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2년 전 50달러에 팔리던 이더리움은 현재 170달러선에서 팔린다. 2017년 4월 15달러에 불과하던 라이트코인의 가치는 현재 70달러를 상회한다.

이렇게 보면 ‘비트코인의 실험은 실패’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가상화폐의 위상이 여전히 견고한데다 올 하반기 다시 상승장에 들어설 거라는 낙관론까지 확산되고 있어서다. 하지만 정말로 가상화폐 시장에 다시 봄이 올지는 의문이다. 블록체인 기술 전문가 이병욱 크라스랩 대표의 설명이다. 

“비트코인은 가까운 미래에도 화폐로 쓰일 수 없다. 결제속도가 느린 데다, 변동성도 높다. 비트코인의 기치인 탈중앙화를 현실화하는 데 실패했다. 가상화폐 시장은 채굴파워가 센 소수의 세력과 가상화폐 거래소가 쥐락펴락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이 사실상의 중앙 시스템이 됐는데, 탈중앙화가 웬 말인가. 이는 다른 알트코인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의 탈중앙화는 이론으로만 완벽했다. 현실에선 딴판이었다.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선 너무나도 많은 전기와 컴퓨팅 파워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시설을 갖춘 세력이 채굴을 독식했다. 현금으로 이들이 채굴한 비트코인을 사는 것도 탈중앙화와는 무관했다. 거래를 중계하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막대한 중간 수수료를 챙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은 화폐의 기본 가치인 안전성과 편의성을 해결하지 못했다. 비트코인 열풍이 불던 2년 전에도 지적됐지만, 개선 여지가 없다.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은 모든 네트워크 참여자가 “이 거래는 위ㆍ변조될 수 없다”는 걸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다음 세대에 나온 가상화폐들이 이를 단축하려 했지만, 소수의 참여자만 승인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거꾸로 블록체인의 신뢰도를 담보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완전무결한 보안을 갖췄다면서 거래를 중개하는 중개소의 지갑에선 보안 취약점을 드러내고 해킹을 당하기도 했다.

무너진 비트코인의 신념

홍기훈 홍익대(경영학) 교수는 “가상화폐가 한국을 휩쓴 지 2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비트코인을 왜 써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는 없다”면서 “비트코인을 화폐가 아닌 금처럼 성장할 거라 전망하는 이도 있지만, 누구도 그 가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전자산이라 부를 수 없는 노릇”이라고 꼬집었다.

일부에선 “정부의 규제 강도가 지나친 탓에, 가상화폐 시장이 시나리오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난센스다. 진정한 탈중앙화라면 정부정책에도 흔들리지 않고 생태계를 구축했어야 했다. 가상화계가 ‘블록체인’이란 신기술을 세상에 알리긴 했지만 이 역시도 아리송하다. 아직까지도 뚜렷한 적용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또다시 꿈틀대는 가상화폐의 한계는 2년 전과 같다. 그렇다면 내년, 아니면 내후년엔 달라질까. 장담할 수 없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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