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ㆍ블록체인 정책 괜찮나

“가상화폐는 옥죄고, 블록체인은 공공 영역에 얹어라.” 2년 전 화두로 떠올랐던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관련 정부정책의 두 명제다. 늘 그렇듯 시장의 평가는 제각각이다. 특히 가상화폐 규제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여전히 거세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공공영역에 도입하겠다는 전략은 논박보다 비판이 더 많다. 블록체인의 콘셉트가 ‘탈중앙화’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정책이라는 혹평도 쏟아진다.

블록체인 기술을 공공서비스에 적용하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블록체인 기술을 공공서비스에 적용하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ICO 금지는 과연 악법일까 = “규제를 무조건 풀어달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있으면 방향을 맞춰갈텐데, 정부는 2년째 무대응 원칙만 고수하고 있다. 적절한 규칙으로 가상화폐 산업을 관리해야 투자자도 보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 투기이슈도 잦아들었으니 ICO를 조건부로 허가해주길 바란다.” 

가상화폐 업계가 정부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 시장이 움츠러든 원인이 ‘정부의 규제일변도 정책’이라는 거다. 특히 가상화폐공개(ICO)를 틀어막은 걸 두고 불만이 높다. 업계는 ICO는 가상화폐 시장의 핵심동력으로 꼽는다. 

ICO는 외부 투자자들에게 가상화폐를 발행해 자금을 유치하는 걸 뜻한다. 기업공개(IPO)가 투자금을 받고 그 대가로 주식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절차로 보면 된다. 사업계획서(백서)만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데다 전 세계를 상대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가상화폐 스타트업에는 필수요소다. 

정부는 가상화폐 상승장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2017년 9월 ‘ICO 전면 금지’를 발표했다. 그 이후에도 몇차례 “전면 금지 기조를 유지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가상화폐 스타트업들이 해외법인을 설립해 투자자를 유치하는 실정이다. 세계적으로 불붙은 블록체인 산업에서 국내 경쟁력만 약해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들끓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ICO를 불법으로 간주한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투자광풍이 불던 시기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 국내 투자자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거다. 

무엇보다 ICO는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다. IPO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IPO는 거래소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이 정보의 투명성과 정확성을 검증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평가할 접점이 생겨 해당주식을 살지 말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절차도 까다로운 데다,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IPO에 실패하기도 한다. 투자를 받은 만큼 기업의 책임도 커진다. 경영실적 등을 꼬박꼬박 보고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 내부정보가 유출될 리스크도 안아야 한다. 

“ICO 금지 풀어 달라”

반면 ICO는 백서를 공개하는 것만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을 수 있다. 이 백서가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어도 이를 검증하기 어렵다. 여기 담긴 정보가 대부분 기술적인 문구이기 때문이다. 사업자가 자금만 모으고 잠적해버려도 별다른 제재 방안이 없다. IPO의 증권거래소처럼 관리ㆍ감독하는 기관도 없다. 

사실 ICO에 IPO만큼의 책임과 규제를 씌우는 것도 난센스일 수 있다. ICO를 준비하는 기업 대부분은 스타트업이라 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공산이 커서다. ICO 전면금지 정책을 ‘폐지해야 할 악법’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는 얘기다. 

■블록체인 진흥책 흥할까 = 4월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9년도 블록체인 공공선도 시범사업’을 선정했다.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 서비스 플랫폼 구축’ ‘시간제 노동자 권익 보호’ ‘재난재해 예방 및 대응 서비스 구축’ 등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각종 공공서비스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거다. 총 사업규모는 85억원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공공서비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기술의 최대 강점은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분산ㆍ공유되고 위ㆍ변조가 매우 까다롭다는 거다. 이 때문에 원산지 검증이 중요한 식품이나 서류 업무가 복잡한 금융 등의 산업 영역에서 관심을 받고 있지만, 공공 영역에선 얘기가 다르다. 가령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누구에게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처리속도가 느린 점도 문제다. 이는 거래 원장을 곳곳에 분산하고 새로운 거래가 발생하면 모든 원장과 대조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에 발생하는 기술적 한계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컴퓨터에 자료를 저장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다. 이런 허점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은 기업 비즈니스에 시범적으로만 적용되고 있고, 뚜렷한 성공 케이스도 없는 실정이다. 

블록체인은 정말 쓸 만한가

블록체인 기술 전문가 이병욱 크라스랩 대표는 “블록체인은 개인이 중재자 없이도 직접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신뢰의 네트워크 기술”이라면서 “국가기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왜 탈중앙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왜 블록체인 기술을 공공서비스에 얹겠다는 걸까. 대형 SI기업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지난 2년간 블록체인 TF팀을 꾸린 기업이 많았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꼭 써야하는가’에 명쾌한 답을 내린 곳은 없었다. 중앙통제식 데이터 관리가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며 마케팅 차원에서 흉내만 내는 곳이 많다. 정부의 블록체인 진흥정책 역시 이런 물결에 휩쓸린 게 아니냐 싶다. 블록체인 강국으로 불리는 에스토니아도 냉정하게 따져보면 ‘공공데이터 디지털화’가 핵심이다. 블록체인이 중심에 있는 건 아니다.” 

블록체인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있으니, 유효한 정책이 나올리 없다는 일침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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