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BI 경제학

현대건설이 BI 힐스테이트를 살짝 바꿨다. 영문 대신 한글을 표기했고, 그 밑에 ‘현대건설’이란 문구를 넣었다. 대우건설은 그 유명한 P트리(푸르지오 BI)를 둥근 모양으로 바꿨다. 이유는 뻔하다. 건설경기가 악화일로를 걷자,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 문제는 BI 리뉴얼이 얼마만큼의 성과로 이어지느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아파트 BI 리뉴얼 열풍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아파트의 입면과 측면은 아파트의 얼굴이다. 특히 BI가 적용되는 측면은 아파트를 차별화하는 핵심요소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파트의 얼굴은 외벽이다. 사람을 알아볼 때 얼굴을 먼저 보는 것처럼 아파트를 구분할 땐 벽면을 본다. 아파트의 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광고판이다. 수백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도 정면(입면)과 측면을 보면 아파트 단지를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 구분의 핵심은 건설사별로 아파트에 붙이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BI)다.

아파트의 외벽에 입주민이 가지는 관심은 상당히 크다. BI가 아름답지 않고 과하게 크다는 이유로 조정을 요구하는 입주민은 숱하다. 때론 아파트 측면의 디자인이 착시효과를 주거나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변경을 원하기도 한다. 아파트의 상징인 BI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 들어 BI를 리뉴얼한 건설사만 현대건설(힐스테이트)·대우건설(푸르지오)·호반건설(베르디움)·태영건설(데시앙) 등이다. 올 하반기까지 BI를 바꾸거나 교체하겠다고 선언한 건설사도 여럿이다. 이는 흥미로운 분위기다. 2000년 대림산업(e편한세상)과 삼성물산(래미안)이 브랜드 아파트를 만든 이후 지금까지 BI를 리뉴얼하거나 변경한 건설사가 없던 건 아니다. 

가령, 2015년 법정관리를 졸업한 금호산업은 2017년 브랜드 아파트 ‘어울림’의 BI를 리뉴얼했다. 금호산업과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동문건설도 같은해 ‘동문굿모닝’의 BI를 변경했다. 그럼에도 한해에 4곳 이상의 건설사가 집중적으로 BI를 리뉴얼하는 건 드문 일이다.

가장 큰 변화를 시도한 곳은 현대건설이다. 아파트 측면에 영문 BI ‘힐스테이트(HILLSTATE)’를 표기해온 현대건설은 앞으로 준공하는 아파트엔 한글 ‘힐스테이트’를 사용한다. 현대건설과의 연계성도 강화한다. 

현대건설은 1947~2000년 ‘현대아파트’, 2000~2006년 ‘현대홈타운’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했지만 2006년부터는 ‘현대’가 들어가지 않는 ‘힐스테이트’만을 표기해왔다. 올해부터 준공되는 ‘힐스테이트’에는 로고 아래에 현대건설의 로고와 이름이 함께 들어간다. 

대우건설도 6년 만에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의 BI를 살짝 변경했다. 2003년 푸르지오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 이번이 세번째 개편이다. ‘P’ 모양을 하고 있어 ‘P트리’로 불렸던 푸르지오의 캐릭터는 8개였던 P모양이 5개, 다시 1개로 줄었다. 이번엔 ‘P트리’를 둥근 형태로 바꾸는 등 이미지보다 텍스트에 가까운 형태로 변형했다. 밝은 초록색인 색상도 채도를 낮췄다. 고급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 4곳이나 BI 교체

대우건설 관계자는 “BI를 변경하면서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과 조경도 더 체험하기 쉬운 방식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BI 개편 이후에는 ‘푸르지오’의 이름을 딴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했다. 부동산 상식이나 인테리어 팁 등을 알려주는 것이 목표다. BI 리뉴얼을 단순한 디자인 개선으로 풀이하기 힘든 이유다. 

BI를 리뉴얼하는 건 대형 건설사뿐만이 아니다. 중견 건설사도 ‘뉴 BI’를 론칭한 곳이 많은데, 대표적인 기업은 호반건설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호반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베르디움’의 BI를 타원형의 집합에서 자연을 상징하는 사각형 형태의 디자인으로 바꿨다.

사실 아파트 BI를 완전 변경하거나 리뉴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는데다 입주민과의 갈등이 발생할 소지도 크다. 가령, 현대건설이 ‘현대홈타운’에서 ‘힐스테이트’, 삼성물산이 ‘삼성아파트’를 ‘래미안’으로 바꿀 때, 변경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아파트 입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다. 

2000년 브랜드 아파트가 탄생한 뒤, 많은 건설사가 BI를 만들거나 변경해왔다.[사진=현대건설, 대우건설 제공]<br>
2000년 브랜드 아파트가 탄생한 뒤, 많은 건설사가 BI를 만들거나 변경해왔다.[사진=현대건설, 대우건설 제공]

이런 위험요인에도 건설사들이 최근 BI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뭘까. 건설업계 사람들은 한껏 치열해진 국내 주택시장의 경쟁을 첫째 이유로 꼽는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분양열기가 가라앉으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시들해졌다. 한건이라도 더 수주를 해야 하는 건설사로선 수요자를 유혹할 만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럴 땐 BI를 새롭게 선보일 경우가 많다.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아도 잠재적 수요자의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브랜드 이원화 전략의 후유증이다. 2010년대 들어 건설사들은 ‘고급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했다. 현대건설의 ‘디에이치(2015)’, 대우건설의 ‘푸르지오써밋(2017)’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기존 브랜드인 ‘힐스테이트’ ‘푸르지오’에 낡은 이미지가 덧붙었다는 점이다. 이런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 BI를 리뉴얼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그동안 고급 브랜드인 ‘디에이치’에 집중했기 때문에 ‘힐스테이트’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2가지 브랜드의 특색을 모두 살리기 위해 힐스테이트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BI 리뉴얼이 특별한 성과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외적 화려함도 중요하지만 내실(내부시설)이 탄탄하지 않다면 ‘포장술’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우연의 일치인지, BI를 리뉴얼하겠다고 나선 건설사들의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힐스테이트를 리뉴얼한 현대건설은 올 1분기 전년 보다 6%나 적은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푸르지오를 살짝 바꾼 대우건설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5%나 줄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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