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초반 흥행의 그림자

5G 시장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가입자 확보 속도가 LTE보다 빠르다. 흥행 원인으로는 ‘혁신 서비스’가 아닌 ‘불법 보조금’이 지목되고 있다. 판매 현장에서 법을 어기고 수십만원의 보조금을 주겠다는 곳이 수두룩하다는 거다. 휴대전화 유통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는 상황, 그런데도 정부는 관리ㆍ감독에 미온적이다. ‘기습 상용화’를 주도할 정도로 5G에 애착을 갖는 정부로선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5G 초반 흥행의 그림자를 취재했다. 

5G 초기 가입자 모집을 위한 과열 경쟁 때문에 단통법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5G 초기 가입자 모집을 위한 과열 경쟁 때문에 단통법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5G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 수가 26만명을 돌파했다.” 4월 29일 기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집계다. 세계 최초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지 24일 만에 거둔 실적이다. 초기 가입자 46만명을 모으는 데 3개월가량 걸린 LTE 서비스와 견주면 놀라운 흥행 속도다.

애초 5G의 초반 흥행을 점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5G가 가능한 단말기가 ‘갤럭시S10’ 1종에 불과한 데다, 서비스 지역도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3사는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만 망을 구축했다. 단말기 출고가가 130만원을 훌쩍 넘고, 요금제가 최대 12만원으로 고가란 점도 걸림돌이었다. 


그렇다면 5G가 시장에서 먹히는 이유는 뭘까. 주한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사무국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5G는 미완의 서비스다. 대리점, 직영점 등 일선 판매현장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기조는 ‘5G 퍼스트’다. 이통3사가 5G 가입자 확보에 혈안이 된 탓인지 다른 요금제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장려금을 판매현장에 쏟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현장에선 불법행위까지 빈번하게 벌어지는 중이다. 단통법이 여전히 유효한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시 ‘아이폰 대란’ ‘갤럭시 대란’ 시절의 2013년 시절로 회귀한 듯하다.”

실제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스마트폰 판매 현장의 주요 가이드라인이다. 2017년 10월을 기점으로 3년 한시 규정으로 포함돼 있던 지원금 상한제(출시 15개월이 지나지 않은 휴대전화에 33만원 이상의 공시지원금을 책정할 수 없는 제도)만 폐지됐다. 

이통3사는 매주 사이트를 통해 지원금을 공시해야 하고, 한번 공시하면 최소 일주일을 유지해야 한다. 이 공시지원금과 판매채널의 추가지원금(지원금의 최대 15%) 외 다른 보조금을 주는 건 여전히 불법이다. 이밖에도 지원금 차별 금지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번호이동, 기기변경, 신규가입 등 가입유형이나 요금제 등의 조건에 따라 지원금 규모를 부당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스마트폰 판매 현장에선 이를 비웃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공시지원금 외 10만~30만원가량의 상품권을 지급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지불한 휴대전화 비용을 현금으로 다시 돌려주는 ‘페이백’도 성행 중이다. 

단통법 비웃는 5G

최근 이통사 직영점에서 5G 단말기를 구입했다는 한 소비자는 “액정이 깨져 휴대전화를 교체하러 갔는데 통신사의 공시지원금과 추가지원금 외에도 30만원짜리 모바일 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혹해 5G 스마트폰으로 교체하게 됐다”면서 “불법이 아니냐는 말에 ‘5G는 괜찮다’며 안심시켰다”고 털어놨다. 

이 소비자는 “단통법 감시가 극심했을 때도 불법 보조금 지급은 은밀하게 있었다”면서 “국민은 보조금을 혜택을 받고, 5G 가입자 수를 늘릴 수 있는데 문제가 되느냐”며 되물었다. 

하지만 불법 보조금에 따른 폐해는 심각하다. 정부가 정한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면 판매 채널별로 보조금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보를 알면 싸게 사고, 모르면 바가지를 써 ‘호갱님’이 되는 상황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소비자별로 가격차별을 하면 단말기를 비싸게 구입한 사람들이 저렴하게 구입한 사람의 요금을 보조해주는 구조가 된다. 단통법의 핵심 입법 취지 역시 소비자간 정보 비대칭에 의한 차별을 줄이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당장 규제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이통3사의 위반사항을 확인하는 데 서두르지 않는 눈치다. 불법이 횡행하는 현장과 달리 방통위 관계자는 “아직 불법보조금 적발 사례는 없는 상황”이라면서 “5G 출시 초기엔 과열 양상이 있었지만 점차 완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업계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남다른 속사정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악화일로를 걸었던 정부와 이통3사의 관계가 5G 출시 전후를 기점으로 긴밀해졌다”면서 “정부가 5G 산업을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면서 보조금 마케팅으로 가입자 수를 늘리는 시장의 불법을 눈감아주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LTE 서비스 초기만 하더라도 정부가 가입자 수를 집계해 발표하는 일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5G 상용화를 향한 정부의 집념은 일찍이 드러났다. 상용화를 기습 선포한 게 대표 사례다. 이통3사는 당초 상용화 일정보다 이틀 앞당긴 4월 3일 밤 11시를 기점으로 5G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심야시간에 기습적으로 5G 개통 이벤트를 벌여야 했던 사연이 있다. 미국의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상용화 일정을 앞당길 것이라는 소식 때문이었다. 미국에 ‘세계 최초’란 타이틀을 빼앗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정부 주도로 이통3사, 제조사까지 모여 논의한 끝에 기습 개통을 결정했다.

5G에 올인한 정부

정부의 이런 태도는 이통3사 입장에서 나쁠 게 없다. 시장 점유율 추락과 영업이익 하락으로 고전 중인 이들이 가입자를 선점할 무기로 ‘보조금 마케팅 전략’을 얻었기 때문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불법이 횡행하는 지금이라도 이를 엄벌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면서 “당분간 이통3사와 판매 현장은 안심하고 보조금으로 가입자를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소비자는 다르다. 당장 보조금을 많이 받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차별이 극심한 시장의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보조금으로 5G 열기를 끌어올리는 건 산업 전체로 따져봤을 때도 이로울 게 없다. 이미 이용자들은 불안정한 5G 통신 환경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5G 데이터가 자주 끊기는 데다, LTE 전환도 먹통이 된다는 거다. 정부와 이통3사가 합작한 ‘5G 실적주의’의 촌극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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