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보험의 허와 실

보험시장에 펫보험 열풍이 불어닥쳤다. 최근 반려동물 연관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펫보험 시장도 활성화할 거란 기대감에서다. 하지만 이를 가로막는 리스크가 숱하다. 반려동물은 표준진료비가 없고, 개체 식별이 어렵다. 과장ㆍ허위진료를 유발해 손해율을 높이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리스크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보험개발원이 해외사례를 참고해 참조요율을 내놨지만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펫보험의 그림자를 들여다봤다. 

반려동물 연관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펫보험 열풍도 불어닥쳤다. 하지만 펫보험을 둘러싼 리스크는 숱하게 많다.[사진=연합뉴스]
반려동물 연관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펫보험 열풍도 불어닥쳤다. 하지만 펫보험을 둘러싼 리스크는 숱하게 많다.[사진=연합뉴스]

최근 반려동물을 위한 TV채널이 등장해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산업구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TV채널뿐만이 아니다. 반려동물 호텔과 스파, 심지어 유치원까지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반려동물 관련 산업은 최근 부쩍 성장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국내 반려동물 관련 산업 규모는 2조3322억원에 달했다. 일본ㆍ중국ㆍ미국 등 해외에 비하면 아직 한참 작지만 2012년까지만 해도 산업 규모가 1조1854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장속도가 꽤 빠른 편이다.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들이 최근 반려동물보험, 이른바 ‘펫보험’을 앞다퉈 출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펫보험이란 보험료를 내면 반려동물의 병원 진료비나 타인의 반려동물에 입힌 피해배상액, 장례비용 등을 보장해주는 보험상품이다. 쉽게 말해, 반려동물을 위한 실손의료보험인 셈이다.

기존 펫보험은 삼성화재의 ‘파밀리아스 애견의료보험2’와 현대해상의 ‘하이펫’과 롯데손해보험 ‘마이펫’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화재 ‘애니펫’, DB손해보험 ‘아이러브펫’, 메리츠화재 ‘펫퍼민트’, 한화손해보험 ‘펫플러스’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1년여만에 펫보험 수가 크게 늘었다.[※참고 : KB손해보험의 ‘사회적협동조합반려동물보험’은 협동조합 가입자에게만 판매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제외했다.]

하지만 이런 펫보험 열풍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펫보험은 동물보호법 시행(2008년)을 앞둔 2007년 처음 출시됐지만 저조한 가입률과 높은 손해율로 실패한 바 있기 때문이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메리츠화재도 앞서 출시했던 펫보험의 판매를 중단했다가 재출시한 경우다. 당시 펫보험이 실패했던 원인의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펫보험 열풍에 편승한 거라면 되레 날선 부메랑을 맞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 불어닥치고 있는 펫보험 열풍은 과거의 실패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전 경험에서 미뤄보면 보험요율을 얼마나 정확하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공산이 크다. 손보사 관계자는 “12년 전엔 내부 통계자료가 없어 임의로 보험요율을 산정했다”면서 “일부 질병은 치료비를 보장하지 않았음에도 손해율이 컸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반려동물 진료비와 병원 이용 빈도 등과 관련한 자료가 없어 적정 수준의 보험료를 정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보험요율을 산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리스크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표준진료비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의 진료비는 통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의료수가를 정한다.

반려동물 진료비는 그렇지 않다. 동일한 진료를 받아도 병원별 비용이 다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최대 5배까지 차이가 난다. 반려동물의 개체 식별이 어렵다는 점도 펫보험의 안착을 어렵게 만드는 고질적인 변수다. 2014년 반려견 동물등록제가 의무화됐지만 아직까지 등록률이 절반을 밑돌고 있다. 이런 리스크는 정확한 진료비 통계를 막는 방해요소다. 과잉ㆍ허위진료를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펫보험에 가입된 반려동물의 진료비가 가입되지 않은 반려동물보다 30~40%가량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보험개발원 자료). 

보험개발원은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펫보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손보사들이 참고할 만한 참조순보험요율을 마련했다. 펫보험이 자리를 잡은 해외의 자료와 국내 통계를 기반으로 산출했다. 일부 손보사들이 출시한 펫보험은 이 참조요율을 따르고 있다.

문제는 이 참조요율에도 허점이 많다는 점이다. 국내 상황과 맞지 않은 해외 통계를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언급한 것처럼 국내에선 표준 진료비 부재와 반려동물 식별 리스크가 산적해있지만 해외에선 이런 문제점을 완화할 만한 보완책을 두고 있다. 그만큼 과잉ㆍ허위진료 우려가 적어 진료비 통계와 손해율이 다를 수 있다는 거다. [※참고 : 자체 통계자료가 부족한 중소형 손보사들은 신상품을 개발할 때 해외의 통계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펫보험처럼 아직 시장이 불완전하고 변수가 많은 경우엔 통계치가 정확하게 맞지 않을 수 있다.]

국내 펫보험의 가입률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도 해외 통계가 국내에 맞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보험계리사의 설명에 따르면 가입률이 높고 가입자가 많을수록 보험료 수익이 증가해 손해율이 안정된다. 통계량이 많아지면 더 정확한 요율을 산출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국내 펫보험의 가입률은 0.02%에 불과하다.

반면, 펫보험 가입률이 가장 높은 스웨덴은 약 40%다. 영국과 노르웨이도 각각 25.0%, 14.0%에 이른다. 벤치마킹 사례로 사용했다는 일본은 펫보험 가입률이 6.3%에 그치지만 펫보험 시장 규모는 약 5200억원으로 우리나라(약 10억원)보다 크다. 반려동물 등록률도 월등히 높다. 

국내 한 손보사의 펫보험 개발부서 직원은 “내부통계가 부족하면 참조요율이나 해외통계를 쓰긴 하지만 정확히 들어맞는 건 아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보험개발원이 참조요율을 만들었지만 회사 내부 통계에 따르면 손해율이 더 높아 보험료를 더 받고 있다. 더구나 가입률이 저조한 현재 상황에선 위험률이 높은 사람만 가입할 가능성이 높은데, 역선택 우려가 해소되려면 가입률이 30~40%는 돼야 할 것이다.”

이런 한계는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펫보험에 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펫사료협회가 지난해 반려동물 보호자 712명에게 펫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이유를 물은 결과, ‘필요성을 못 느낀다(31.9%)’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보험료가 부담이 된다’는 이들도 22.3%에 달했다.

펫보험 상품을 출시하는 이유가 ‘문제의 해결’에 있지 않고, ‘시류에 편승’하려는 데 있다면 손보사들은 과거의 실패 전철을 또다시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야심차게 펫보험을 내놓은 일부 손보사는 높은 손해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개인 판매를 중단했다. 손해율이 낮은 상품도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의미 있는 손해율이 나오려면 적어도 3~4년은 통계를 축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펫보험 열풍 이면에 산적한 리스크는 아직 그대로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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