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모르는 ‘탁상공무원’이 일 키웠다

일반음식점으로 위장해 운영되는 유흥주점이 숱하게 많다. 그곳에선 불법과 탈법, 탈세가 판을 친다. 문제는 위장등록된 유흥주점을 찾는 게 너무도 쉽다는 것이다. 객실 안 무대장치만 있으면 유흥주점이다. 그런데도 위장등록이 많다는 건 공무원들이 현장조사를 게을리했다는 점이다. 관계 당국은 “인력이 부족해서 현장에 나가기 힘들다”면서 “위장등록을 적발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버닝썬 같은 위장등록 유흥주점이 그토록 많은 이유를 취재했다. 
 

영업 신고 후 1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시설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사진=뉴시스]
영업 신고 후 1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시설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사진=뉴시스]

‘클럽’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있었지만 버닝썬은 사실 ‘일반음식점’이었다. 경찰청, 국세청,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지자체는 올해 초부터 일반음식점으로 슬쩍 둔갑한 ‘유흥주점’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특히 식약처는 “조사 이후에도 재점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유흥주점의 위장등록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금까지 유흥주점의 위장등록을 잡아내는 정기적인 단속은 없었다. 빈번하게 위장등록을 자행하는 사업자를 막는 규제도 전무했다. 당국은 “이번 조사를 마무리한 후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재발 방지책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위장등록을 빈번하게 하는 사업자를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국세청과 검찰이 민생을 해치는 탈세범죄를 단속하는 ‘상설 협의체’를 운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운영이 위장등록을 적발하는 ‘맞춤형 처방전’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흥주점의 위장등록이 워낙 쉬운데다 사업자가 위장등록을 해야할 필요성도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현장조사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단속을 비웃는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너무 쉬운 위장등록 = 유흥주점과 일반음식점을 나누는 식약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유흥 종사자 고용 여부, 손님의 가무행위 허용 여부, 특수조명이나 노래방 기계 등 객실 안 무대장치가 있는지 등이 일반음식점과 유흥주점의 차이가 된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버닝썬’이 처음부터 일반음식점으로 등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등록 절차가 지나치게 허술해서다. 건축물 도면, 건축물 대장, 보건증, 위생교육수료증 등을 제출하면 인터넷으로도 일반음식점영업 신고를 할 수 있다. 안전시설 완비증명서, 조리사면허증도 내야하지만 이는 위장등록을 가려낼 수 있는 서류가 아니다. 

이들 서류만 갖춰진다면 일반음식점 영업 신고는 즉시 처리된다. 일반음식점이란 간판이 달려있어 들어가보면, 유흥주점인 경우가 숱하게 많은 이유다. 느슨한 행정의 총체적 결과물이다.

■현장조사 안 하는 공무원 = 물론 일반음식점을 등록하기 전, 현장에서 유흥주점이 아닌지 확인을 하면 ‘느슨한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다. 클럽처럼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둔 업소는 방문만 하면 ‘위장등록’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다.

법적 규정도 있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제42조 제10항’에 따르면 식품접객업종은 영업신고가 처리된 시점을 기준으로 1개월 이내에 반드시 현장조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조사는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경찰청이 올 2~4월 업소 65곳을 집중단속한 결과, 대상업소 중 13곳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한 다음 유흥주점으로 운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장 공무원들도 모든 신규 등록 사업장의 실사 조사는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 공무원은 “하루에도 점검해야 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라면서 “등록되는 모든 곳을 찾아가서 조사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 위장업소를 단속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허점이다. 2019년 상반기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유흥주점 집중단속 역시 경찰청·지자체·국세청·식약처 등이 합동으로 진행하는데, 권한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위장영업을 하는 유흥주점 단속은 각 지자체의 보건소가 담당한다. 보건소는 영업정지(최장 2개월), 영업취소(3회 이상 적발) 등 행정처분을 한다. 형사처벌은 경찰이 맡는다. 문제는 이를 종합적으로 운영·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다.

일반음식점으로 영업 신고하는 유흥주점 사업자들의 목적은 대부분 탈세다.[사진=뉴시스]<br>
일반음식점으로 영업 신고하는 유흥주점 사업자들의 목적은 대부분 탈세다.[사진=뉴시스]

또 다른 공무원 역시 “항상 합동 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단속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제까지 유흥주점 단속은 기관별로 이뤄져왔다”면서 “지시가 내려와 재검사를 여러 번 하는 지자체가 있는 반면 아닌 곳도 있다”고 말했다.

■편법·탈법 난무하는 이유 = 유흥주점이 일반음식점으로 둔갑해 운영해야 할 필요성은 상당히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이다. 유흥주점은 일반음식점보다 2배 이상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일반음식점이 내는 부가가치세 10%와 함께 유흥주점은 매출의 10%를 개별소비세로 납부하고 3%는 교육세로 따로 낸다. 처음 영업을 신고할 때도 유흥주점은 도시철도 채권(201만원·서울 기준)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유흥주점의 위장등록이 끊임없이 자행될 수밖에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영업의 편의성이다. 유흥주점은 교육시설 인근에 만들 수 없다. 학교 정문으로부터 200m 이내에 들어서는 유흥주점은 교육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학교와 주택가, 상업지대가 촘촘하게 혼재된 경우엔 주점을 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원하는 장소에서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유흥주점이 아니라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일대 주민들은 “저런 업소가 생기기 전 있던 매장들은 세탁소나 수선집처럼 생활에 꼭 필요한 가게들이었다”면서 “하나둘씩 유흥주점으로 바뀌면서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관계기관이 총출동한 유흥주점 집중단속은 5월 24일에 마무리된다. 위장한 유흥주점을 근절할 묘수를 생각 중이라지만 너무도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현장조사다. 공무원들은 십수년째 “인력이 부족해 현장에 나가는 게 어렵다”면서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 정도 발품도 팔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묘수 따위가 아니라 발품이란 거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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