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상해

경미한 교통사고에도 다치는 사람이 있고, 비교적 큰 사고지만 사람이 멀쩡한 경우도 있다. 내가 가해자라고 할 때, 두 사고에서 피해자가 상해진단서를 끊어서 나타난다고 해보자. 일반적으로 경미한 교통사고의 경우엔 “뭘 저 정도 갖고 저러나” 할 테고, 비교적 큰 사고의 경우엔 앞뒤 따지지도 않고 바짝 엎드릴 거다. 하지만 법적인 ‘상해’는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다.
 

법원은 ‘상해’를 외적인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원은 ‘상해’를 외적인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노란신호를 보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자동차가 횡단보도 앞에서 급히 정지할 때가 종종 있다. ‘무슨 운전을 저렇게 험하게 할까’라고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그냥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도 있을 거고, 차량 운전자를 째려보며 지나는 사람이나 삿대질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따지는 보행자도 있을 거다. 그래도 일단 차량이 정지하면 다치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저냥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다. 

지난해 횡단보도를 건너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A씨는 깜짝 놀라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이 일로 2주간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은 A씨는 운전자 B씨로 인해 상해를 입었다면서 B씨를 고소했다. 과연 B씨는 처벌을 받았을까. 

법원은 “횡단보도에서 급제동한 차량에 놀라 ‘심장 두근거림’ 증상이 생겼더라도 이를 상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운전자 B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됐는데, 이런 경우 B씨의 유죄가 인정되려면 피해자 A씨에게 형법상 ‘상해(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 A씨가 입었다고 주장한 ‘심장 두근거림’ 증상이 신체 손상, 생활기능 장애, 건강상태 불량 등 형법상 상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상해가 없으니 무죄라는 거였다. 

 

A씨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A씨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이유는 없어서다. A씨는 병원 치료도 받았다. 이 때문에 이 사안은 충분히 더 다툴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물론 차량을 피하다가 넘어져 다쳤다거나 하면 상해로 인정될 여지는 더 높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건 많은 이들이 “고작 ‘심장 두근거림’으로 무슨 상해를 입었다고 고소까지 하느냐”고 반문한다는 점이다. “검찰이 B씨를 기소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는 이들도 있다. 상해냐 아니냐는 ‘딱 봐도’ 구분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게 사실 쉽지 않다. 명백한 병명이 있는 상해라 하더라도 상해가 경미해 치료가 필요하지 않거나 허위로 상해진단을 받았다면 상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A씨가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상해 유무를 따져본 건 합당한 과정이다.[※참고 : 상해 유무에 따라 피의자의 유ㆍ무죄 판단은 물론 형량도 달라진다.]

우리 법원은 병원이 발급하는 상해진단서를 대부분 인정하는 편이다. 전문의의 상해진단서의 증명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와 달리 ‘가짜환자’가 상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운전자가 억울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방법이 있다. 상대방의 상해가 의심될 때에는 상해진단서를 발급해 준 병원에 ‘사실조회신청’을 하는 게 좋다. 피해자가 언제 어떤 경로로 병원을 방문했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등을 알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피해자가 기왕증(이미 증세가 있음)이거나 다른 원인으로 상해를 입었다면 충분히 상해 유무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이 직접 상해 유무를 판단하기보다는 전문가에게 맡겨놓으라는 거다. 
고지윤 홍학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lawyers@honghaklaw.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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