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는 이재현 회장을 김 회장으로 써 달라 했다
CJ는 이재현 회장을 김 회장으로 써 달라 했다
  • 더스쿠프
  • 호수 9
  • 승인 2012.09.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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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oop 가처분 신청사건 20여일의 기록

이유야 어찌됐든 치열한 소송전이었다. 경인방송 The Scoop가 8월 6일 보도한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를 사이에 두고 CJ와 The Scoop는 20여일에 걸쳐 법정싸움을 펼쳤다. CJ는 대형 로펌 ‘율촌’을 선봉에 내세웠다. 그 20여일의 기록이다.

8월 31일 금요일 오전 10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The Scoop가 8월 6일 보도한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의 주인공 이성기(53)씨였다. “평창동 A호텔에 있다. 잠깐 뵙고 싶다.” 이씨는 CJ그룹이 사주한 조직폭력배로부터 1998~2000년 여섯차례에 걸쳐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민이다. [※ 참고: The Scoop 5호 10~14쪽]

CJ가 8월 10일 제기한 ‘출판물배포등금지가처분신청’ 사건에서 The Scoop가 승소한 후 첫 만남이었다.
A호텔 입구에서 만난 그는 “고맙다”는 말부터 전했다.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CJ와의 ‘13년 싸움’에 대한 회한이 눈물에 묻어나오는 듯했다. 이씨는 “단언컨대 돈 때문에 CJ와 싸운 게 아니다”며 “명예를 회복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CJ가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이씨가 돈을 노리고 이재현 회장과 주변 인물, CJ를 괴롭혔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그와 30여분 대화를 나눴다. 그는 맥주를, 기자는 커피를 마셨다. 이씨는 “(가처분 결과를 접한 뒤) 긴장이 풀려 술이라도 한잔 마셔야겠다”고 말했다. 몸에 알코올을 넣어서라도 회한을 풀고 싶다는 속내가 읽혔다.

“사과 한마디만 했다면…”

우리는 주로 가처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아직도 풀어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마감 때문에 자리를 뜨는 기자를 붙들고 그는 이런 말을 또 남겼다. “돈…. 웃기는 소리다. 이재현, 그 친구의 사과 한마디였으면 모든 게 끝났을 거다.” 그에게 돈은 폭행의 흔적만큼이나 깊게 파인 ‘트라우마’였다.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 8월 3일 서울 충무로 The Scoop 사옥 3층 대표이사실. 오후 6시경 CJ 고위 관계자 2명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를 지면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 특별한 이유는 달지 않았다. ‘무조건’ 빼달라고 했다. 이런 식이었다. “(이성기씨가 폭행을 당한 사건은) 사실관계가 꼬여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기사를 한번만 빼줄 수 없겠는가.” “1~2주만 기사 게재를 연기해 달라, 대책을 찾아보겠다.” The Scoop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날 밤, CJ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가 찾아왔다. The Scoop 대표와 새벽 5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목적은 이번에도 기사를 빼기 위해서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 관계자는 “CJ와 이재현 회장을 익명을 다룰 수 없겠는가”라고 제안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말이 ‘CJ 이재현 회장을 A그룹 김 회장으로 바꿔달라’는 것이었다.[※CJ 고위 관계자가 무슨 이유에서 A그룹 김 회장을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김씨가 흔한 성性이라서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A그룹 김 회장과 폭력을 연관 지으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The Scoop는 제작에 차질을 빚었다. 인쇄가 8월 6일 월요일 오전으로 연기됐다. 때마침 인쇄소 직원들이 휴가였기 때문에 주말에는 도저히 인쇄할 수 없었다. 인쇄소 측으로부터 “금요일 12시가 넘으면 작업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터였다. The Scoop가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지경에 몰렸음에도 ‘기사를 빼 달라’는 CJ의 요구는 계속됐다.

인쇄가 들어간 8월 6일 월요일 밤 9시에는 CJ그룹 대표까지 나섰다. 그는 The Scoop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기사를 빼주거나 판갈이(대체기사)를 해주면 The Scoop가 가는 길에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 제안은 다시 거절당했다. The Scoop의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는 이런 산통産痛 끝에 8월 7일 화요일 오전 배포됐다. 이틀 후인 8월 9일에는 The Scoop와 경인방송 홈페이지,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 기사가 게재됐다.

일정 놓쳐 월요일에 인쇄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가자 ‘기사를 빼 달라’며 통사정하던 CJ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기다렸다는 듯 8월 10일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대형 로펌 율촌이 작성한 26쪽 짜리 신청서였다. 8월 14일에는 31쪽 짜리 준비서면이 날아왔다.

CJ는 “The Scoop가 보도한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는 이재현 회장에 대한 허위사실로, CJ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The Scoop와 경인방송 홈페이지에 게시된 기사를 삭제하고, SNS에 게재하거나 라디오•인터넷방송매체를 이용해 관련 내용을 방송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인터넷과 SNS에 게재된 기사를 삭제하라’는 요청은 어느 정도 수긍할 만했다.

이유와 과정이 어찌됐든 출판물배포금지가처분 신청은 법적으로 허용된 부분이라서다. The Scoop로선 취재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꼼꼼하게 챙겨 ‘논리싸움’을 하면 그만이었다.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CJ의 가처분 신청에서 납득하기 힘든 측면이 없지 않았다. CJ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까지 예측해 The Scoop와 경인방송의 취재에 제동을 걸었다. CJ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밝힌 이유 중 하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The Scoop와 경인방송이 후속기사를 출판물 또는 인터넷, 그리고 방송을 통해 보도해 CJ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CJ는 주간지를 폄훼하는 논리까지 제시했다. “… 유사한 주제에 대한 반복적인 게재 등을 통해 CJ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기초해서도 쉽게 폭로성 기사를 양산하는 주간지의 특성상 연재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사를 양산하게 된다면, CJ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을 수 없다.”

CJ의 예상과는 달리 The Scoop는 후속 기사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에서 후속 보도를 예고하긴 했지만 그렇게 쉽게 다룰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실제로 CJ가 가처분 신청을 할 때까지 후속 취재를 진행하지도, 지면계획을 잡지도 않았다. 경인방송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경인방송 시사프로그램 ‘상쾌한 아침, 원기범입니다’의 PD 김성민 보도국 차장은 이성기씨와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CJ에 반론을 요청하지 않았다. The Scoop 기자의 방송출연 역시 계획된 바 없었다.

김성민 차장은 “경인방송에 대한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넣은 법원 서류를 보고 황당했다”며 “해당 사건 내용이 방송에 나간다는 예고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어떤 내용이 방송에 나갈지 결정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은 취재조차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가처분 신청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또 있다. 대형 로펌의 태도다. CJ 측은 변호를 맡은 ‘율촌’은 The Scoop의 기사를 ‘허위’로 만들기 위해 ‘잘라먹기식’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율촌은 8월 10일 제기한 ‘가처분 신청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The Scoop는 누구인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CJ 관계자’라는 자가 ‘이재현 회장과 이성기씨 폭행사건은 무관하다고 밝혔다’면서도 ‘CJ의 연루가능성에 대해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처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無言를 대답을 하지 않은 상태沈默인 것처럼 몰아간다.”

이 주장은 사실관계가 완전히 잘못돼 있다. 무엇보다 율촌이 CJ에 간단한 확인절차만 거쳤다면 해당 ‘CJ 관계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The Scoop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를 대답하지 않은 상태인 것’처럼 몰아간 것도 아니다. 기사의 원문을 보자.

“CJ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과 이성기씨 폭행 사건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CJ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복수의 CJ 관계자는 ‘이 회장이 아니라 다른 고위층이 폭행을 지시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로 뒷부분에 있는 중요한 내용을 삭제한 채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인 것처럼 주장을 펼쳤다.

사례는 또 있다. 율촌은 가처분 신청서에서 “이성기씨와 나눈 대화 가운데는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게 많다. 이씨의 동의를 받고 대화내용을 녹음했지만 현재로선 공개하기 어렵다”는 The Scoop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와의 대화를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 ‘(담당 기자가) CJ에 관해 독자가 궁금해 할만한 것을 들은 바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려는 목적이 느껴진다.”

이 역시 기사 원문을 훼손한 것이자 ‘잘라먹기식’ 주장의 전형이다. The Scoop의 원문은 이렇다. “그와 나눈 대화 가운데는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게 많다. 이씨의 동의를 받고 대화내용을 녹음했지만 현재로선 공개하기 어렵다. 검증하기 쉽지 않아서다.” The Scoop는 율촌이 주장한 것처럼 공개하기 어려운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게 아니라 ‘확실하게’ 언급했다. “검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이다. 이는 The Scoop가 이성기씨의 일방적인 주장을 기사에 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율촌의 더 큰 실수는 The Scoop의 표지 제목을 언급한 부분이다. 율촌은 가처분 신청서에서 The Scoop의 표지 제목인 ‘Guilty or Not, CJ 폭행 미스터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Guilty or Not, CJ 폭행 미스터리라는 제목과 함께, 뭔가 뒤에 음모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넥타이를 매고 얼굴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남성의 상반신 모습을 사진의 표지로 싣고 있다. 누가 보아도 이 주간지의 주요 기사는 CJ 폭행 미스터리라는 내용의 기사이고, 이 부분이 셀링 포인트다.”

하지만 이는 사실관계를 왜곡해서 쓴 글이다. CJ는 기사가 나가기 전 표지 제목이 ‘Guilty or Not’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표지 제목을 은유적으로 쓴 것도, 이재현 회장의 얼굴과 CJ의 로고를 뺀 것도 “CJ 측의 그것만큼은 빼 달라”는 간청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를 두고 율촌은 ‘은유’ ‘셀링포인트’를 운운하면서 The Scoop의 기사를 폄훼했다. 이는 대형 로펌인 율촌이 소송 서류를 작성하면서 기초적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했음을 의미한다.

준비하지도 않은 기사에 가처분 걸어

The Scoop는 20여일 동안 힘겨운 싸움을 펼쳤다. 기사를 어떤 방식으로든 빼려 했던 CJ는 자신들의 말이 먹히지 않자 가처분 신청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돈’으로 압박까지 했다.
CJ는 이번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간접강제를 요구했다. The Scoop와 경인방송 홈페이지에 기사를 게재하거나 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 등 SNS에 게재 또는 업로드하면 1일당 5000만원, 출판물(인쇄물)이나 라디오•인터넷방송매체에 관련 내용을 게재 또는 방송하면 1회당 5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CJ는 이렇게 주장했다.

“(기사를 삭제하거나 업로드하지 말라는 등의) 간접강제는 이 결정을 위반할 마음을 먹지 않을 만큼의 실효성 있는 담보제공이 돼야 한다.” 여기서 담보제공은 바로 ‘돈’을 의미한다.

이성희 변호사는 “기사 한건 당 5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청한 것은 자본의 힘을 이용해 신생 언론을 압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The Scoop가 ‘가처분’에서 졌다면 끔찍한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 진실은 때론 외면 받을 수 있지만 자본권력은 언제나 무서운 힘을 발휘해서다. 하지만 이번엔 ‘진실’이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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