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❹

스페인 부부 사이서 태어나 캐나다에 정착한 작가가 자신과 관계가 ‘1’도 없는 인도 소년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아마도 기독교를 비롯한 배타적 ‘유일신 체계’가 아닌 힌두교라는 ‘물렁한’ 종교의 미덕을 생각해보고자 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신념’이 짓밟혀도 그 ‘신념’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파이의 가족이 신봉하는 ‘채식주의’라는 가치관은 캐나다로 향하는 이주선에서 난관에 봉착한다. 요즘은 비행기 기내식단도 채식주의자와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마련되지만, 당시 호화유람선도 아닌 화물선 주방장에게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고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파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은 모두 채식주의자이니 고기는 빼달라’며 요청하고 채식요리를 원한다. 주방장의 적대적인 반응이 이어진다. 영화에서 이 한 장면 등장하는 화물선의 너절한 주방장 역을 무려 프랑스 국민배우로 유명한 제라르 드파르디외(Gerard Depardieu)가 맡았다. 진정한 ‘신스틸러’다.

그는 소도 풀을 먹고 자랐으니 괜찮다고 이죽거리며 밥에 고기 국물을 퍼부어준다. 채식주의라는 이질적 신념이 아니꼬운 주방장과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조롱당한 아버지의 멱살잡이가 이어진다. 파이의 가족은 결국 식당 구석에서 맨밥을 먹는 서러움을 당한다. 흰 쌀밥이라도 없었다면 그냥 굶었을 듯하다.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고기는 먹지 않겠다는 기세다.

그러나 파이의 아버지가 신봉했던 ‘채식주의’의 가치관은 선박이 침몰하고 구명보트에서 비상식량 비스킷이 동나자 너무도 쉽게 현실과 타협한다. 물고기가 분명 곡식도 아니고 풀도 아니건만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더 끔찍한 ‘진실’은 사실 파이가 구명보트에 동승했던 상처 입은 선원의 사체까지 먹으면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살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에 정신적인 고통과 혼란을 겪은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캐나다에서 결혼해 아내와 자식을 두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잘 먹고 잘 지낸다. 

 

채식주의자 파이의 가족은 굶을지언정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채식주의자 파이의 가족은 굶을지언정 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아마도 파이가 하나의 가치에만 집착하는 종교관을 가졌다면 인육을 먹었다는 죄책감에 미쳐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힌두교라는 ‘물렁한’ 종교관이 그를 살린 듯하다. 스페인 부부 사이서 태어나 캐나다에 정착한 작가가 그의 일생과 전혀 관계없는 인도 소년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쓸 땐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유일신 체계’가 아닌 힌두교라는 ‘물렁한’ 종교의 미덕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인지 모르겠다. 「서구의 몰락」이라는 저서에서 모든 종교는 ‘독선(Dogma)’일 뿐이라고 결론 내린 독일의 사회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선언을 재조명하는 듯하다.

문득 채식주의라는 이념은 파이의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해진다. 그토록 쉽게 현실과 타협할 신념이라면 화물선 주방장과 그렇게까지 싸움박질하고, 식당 한구석에서 생쌀을 씹어먹듯 맨밥으로 식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고기를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도 아니라면 그토록 유난을 떨 필요가 있는 일이었을까. 만약 선박이 출항하자마자 침몰하지 않고 수십일간 계속 항해를 했어도 그 가족은 일체의 육식을 거부한 채 맨밥을 씹어먹으며 캐나다까지 갔을지도 궁금하다.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에선 이런저런 ‘신념’을 앞세운 사람들이 살벌하기 짝이 없는 시뻘건 글씨로 ‘결사決死’라는 말을 현수막에 새기고 삭발도 하고 단식도 한다. ‘고기 국물’은 단 한방울도 먹을 수 없다는 채식주의자 파이의 가족과 같은 결기를 보인다. ‘삭발’은 스님들처럼 바로바로 밀어주지 않는 한 1개월만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오고, ‘결사 단식’ 하는 사람들은 일주일이면 링거 꽂고 앰뷸런스 타고 병원에 갔다가 며칠 후면 좋아진 혈색으로 나타난다. ‘결사 단식’인지 다이어트인지 헷갈린다. 

툭하면 '결사'란 말을 현수막에 새기고 '삭발'이며 '단식'을 선언한다. [사진=뉴시스]
툭하면 '결사'란 말을 현수막에 새기고 '삭발'이며 '단식'을 선언한다. [사진=뉴시스]

조선시대 선비들이 걸핏하면 ‘내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면 차라리 도끼로 내 목을 쳐달라’며 대궐 앞에 도끼와 상소문을 같이 놓고 임금을 부르던 ‘지부상소持斧上疏’의 전통이 면면히 내려와서인가. 아니면 도끼 들고 대궐로 찾아간 선비의 상소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목을 치지도 않아 모두들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간 전통 때문인가. 툭하면 ‘결사’를 부르짖지만 아무리 ‘신념’이 짓밟혀도 그 ‘신념’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모두 잘 먹고 잘산다.

그토록 쉽게 현실과 타협할 ‘신념’이라면 함부로 내세우고 함부로 다른 사람들과 세상 시끄럽게 다툴 일은 아닌 듯하다. 고기 국물 몇 모금 마시면 죽을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주방장과 멱살잡이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결사’를 내세우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정말 죽음까지 이른다면 그의 ‘신념’이 무엇이었든지 인정해주고 싶다. 

나라가 기울어가던 조선시대 을미사변 후 면암 최익현 선생은 외세 배격을 외치며 경복궁에 엎드려 ‘지부상소’를 올리고, 그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의병을 일으키다 체포돼 대마도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랑캐 땅의 곡식 한톨, 물 한모금 먹고 마실 수 없다’며 조선에서 가져간 물 한 항아리만 마시다 결국 굶어 죽었다. 최익현 선생의 결기가, 그의 신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 새삼 존경스러운 오늘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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