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❸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 소년 파이의 종교는 힌두교다. 파이는 어린 시절 친구와 동네 성당 입구의 성수聖水를 훔쳐 마시자는 내기를 한다. 감히 ‘성수’에 손대는 소년을 발견한 성당 신부는 ‘목이 마른 모양이구나’ 라며 성수 대신 생수를 주는 관용을 베푼다. 이후 파이는 ‘왠지 예수라는 사람이 좋아졌다’고 술회한다. 
 

이념도 단일신관이어서는 안 되는 걸까.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도 모두 좋은 이념들일 뿐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파이가 보여주는 신앙관은 흥미롭다. 인도 타밀족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파이의 종교는 자연스럽게 힌두교일 수밖에 없다. 힌두교는 문자 그대로는 ‘인도의 종교’를 뜻한다. 인도에서 기원된 모든 종교를 포함하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와 자이나교를 배제한 의미로 사용된다. 특정한 교조나 교리, 중앙집권적 권위나 위계조직이 없이 다양한 신앙 형태가 융합된 종교인 힌두교 안에는 거의 모든 형태의 종교가 발견된다. 융합적 태생 덕분에 다른 종교에도 비교적 관용적이다.

그래선지 영화 속 힌두교 소년 파이는 자신의 마을에 진출한 ‘생뚱맞은’ 외래종교에 대단히 관용적이다. 어린 시절 친구와 동네 성당에서 경건하게 마련해 둔 성수를 훔쳐 마셔버리기 내기를 한다. ‘목이 마른 모양이구나’ 하며 성수 대신 생수를 내어주는 성당 신부의 너그러운 관용에 파이는 ‘왠지 예수라는 사람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파이는 마을에 들어선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고는 ‘왠지 그 엄숙한 분위기’가 좋다며 이슬람 사원에도 드나든다. 아마 파이가 성장한 마을이 타밀족 지역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타밀족은 인도의 소수민족으로, 종교는 주로 힌두교를 믿지만 다른 인도인들보다는 이슬람과 기독교도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민족이다.

그만큼 종교적으로 다양한 민족이다. 힌두교 가정에서 저녁 식탁에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성호를 긋는 모습으로 부모님과 형을 기가 막히게 만든다. 그러나 타 종교에 관용적인 힌두교의 성격 덕분인지 그 아버지가 식탁을 뒤집거나 아이의 멱살을 잡지는 않고 그저 어이없고 못마땅한 표정 정도로 넘어간다. 그 장면이 파이의 표현처럼 ‘왠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파이에게 종교란 그저 '일상에서 소개받는 것'이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파이에게 종교란 그저 '일상에서 소개받는 것'이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파이에게 종교란 어느날 하늘의 소리가 들리거나 성령이 나에게 임臨하는 그런 초자연적이고 신비롭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상에서 ‘소개 받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듯이 종교도 소개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사람을 소개받으면 소개해 준 사람을 믿는 만큼 일단 어느 정도 신뢰를 한다. 전혀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 소개받은 사람과 직접 관계를 갖고 경험을 해 본 후 괜찮은 사람이라 느끼게 되면, 중간에서 소개해 준 사람을 떠나 나와 직접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파이는 그렇게 소개받는 ‘예수’도 ‘마호메트’도 직접 만나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괜찮은 사람들’ 같아서 관계를 지속해 가기로 한다. 그렇게 예수, 마호메트와도 가깝게 지내면서 파이는 스스로를 ‘힌두 이슬람’ 혹은 ‘힌두 크리스천’이라고 규정한다. 유일신 체계로 꽁꽁 묶여서 옴짝달싹 못 하는 이슬람과 크리스천이 들으면 기겁을 하겠지만 파이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파이의 신앙관은 어쩌면 단일신관單一神觀 혹은 택일신관擇一神觀(henotheism)에 가까운 듯하다. 단일신관은 유일신관唯一神觀(monotheism)과는 다르다. 유일신관이 하나의 신만을 믿고 다른 신들은 모두 배척하고 적대시한다면, 단일신관은 하나의 신을 믿되 다른 신들도 배척하지는 않는 신관이다. 두개의 유일신관인 이슬람과 기독교는 사생결단하고 싸울 수밖에 없도록 운명이 정해진 셈이다. 

 

우리의 좌·우파 대립은 유일신관인 이슬람과 기독교의 투쟁처럼 딱하다. [사진=뉴시스]
우리의 좌·우파 대립은 유일신관인 이슬람과 기독교의 투쟁처럼 딱하다. [사진=뉴시스]

우리네 좌파ㆍ우파 이념은 마치 유일신관을 받드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투쟁처럼 처절하고 딱하다. 서로에게 상대의 이념이란 좋은 것은 ‘1’도 없고, 실수로라도 절대 좋은 일은 할 리 없는 ‘악마의 집단’일 뿐이다. 상대가 장미꽃을 아름답다고 하면 이쪽에서는 사명감을 갖고 장미꽃에 욕을 퍼부어댈 기세다. 

이념도 유일신관이 아닌 단일신관이어서는 안 되는 걸까. 자유주의를 믿되 사회주의를 배척하지는 않고, 사회주의를 믿되 자유주의와도 친하게 지내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파이의 ‘힌두 이슬람’이나 ‘힌두 크리스천’처럼 ‘자유사회주의자’이거나 ‘반공사회주의자’는 있어서도 안 되고 불가능한 일일까. 예수님도 마호메트님도 모두 좋은 분들이고, 좋은 말씀들뿐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도 모두 좋은 이념들일 뿐이다. 예수님, 마호메트님이 당하는 봉변과 자유주의, 사회주의가 당하는 봉변 모두가 어이없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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