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산업의 진짜 문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규제를 풀어달라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규제에 가로막혀 산업의 성장길이 막혔다는 거다. 제약바이오를 중점육성사업으로 꼽은 정부는 “업계의 주장을 십분 받아들여 혁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과연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필요한 게 규제 혁파만인지는 따져볼 만한 일이다. 제약바이오업체들의 R&D와 임상실적 등은 글로벌 기준엔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제약바이오 업계의 진짜 문제를 취재했다. 

인보사 사태가 터지고, 첨단바이오법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활로가 막힐까 우려하는 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인보사 사태가 터지고, 첨단바이오법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활로가 막힐까 우려하는 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바이오헬스산업은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할 수 있는 분야다. 연구ㆍ개발(R&D), 규제 혁파 지원 등에 역점을 둔 종합적 혁신방안을 마련하겠다.” 지난 15일 열린 경제활력 대책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내용 중 일부다. 

같은날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선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기획재정부 등 5개 부처의 장ㆍ차관과 제약바이오업계가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업계는 산업의 성장을 위한 규제개혁과 지원을 요구했고, 5개 부처는 “현장의 애로와 건의사항을 해결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화답했다.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힌 건 2017년부터다. 제약바이오를 반도체, 미래자동차와 함께 3대 중점육성산업으로 꼽았다. 올해는 제약바이오 분야에 전년 대비 2.9% 늘어난 2조93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제약바이오산업을 키우려는 정부의 의지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제약바이오업계 안팎에선 이상한 말이 나온다. “규제가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의 성장 속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른바 ‘첨단바이오법(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4월 4일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업계의 불만은 임계점臨界點까지 올라갔다. 

첨단바이오법의 골자는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바이오의약품 우선 심사 ▲개발사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단계별 사전 심사 ▲유효성 입증된 의약품의 경우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한 조건부허가 등이다. 그중에서도 조건부허가는 임상2상 단계에서도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어 임상승인ㆍ품목허가 기간을 앞당길 파격적인 규제 완화로 꼽혔다. 

 

업계의 불만은 이뿐만이 아니다. 두가지 고질적 문제가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는다. 두 고질병은 약가인하 제도와 임상승인 절차다. 먼저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약값을 정한다. 그중 약가를 인하하는 대표적인 두 제도가 있다.

의약품의 사용량이 늘 것으로 예상될 때 미리 약값을 낮추는 ‘사전약가인하제’와 사용량이 늘면 약가를 깎는 ‘사용량-약가연동제’다. 제약사 관계자들은 “정부가 중복으로 약가를 인하하는 경우가 있어 사업계획을 짜는 데 힘들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임상승인 절차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승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규제가 많은 탓에 시장 진입이 늦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업계의 불만이 볼멘소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이 더딘 이유를 규제 탓으로만 돌리는 게 타당하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임상승인 절차나 기준은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가 다를 게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다”면서 “해외와 모두 똑같진 않겠지만 대동소이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적한 우리나라의 임상승인 기간도 미국과 동일한 30일이다. 되레 중국이나 유럽은 임상승인 기간이 60일이다.[※참고 : 미국과 우리나라 모두 30일 외에 추가검토기간을 두고 있다. 업계의 지적처럼 인력이나 그외 변수로 승인기간이 길어질 소지는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임상 및 GMP(의약품 제조ㆍ품질관리기준) 인증기준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느슨한 건 일반적인 얘기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미국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려면 미국 기준인 cGMP 인증을 받은 시설에서 약을 생산해야 하는데, 이는 국내 기준인 KGMP보다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제약바이오를 반도체, 미래자동차와 함께 3대 중점육성산업으로 꼽았다.[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제약바이오를 반도체, 미래자동차와 함께 3대 중점육성산업으로 꼽았다.[사진=연합뉴스]

의료기기도 해외기준이 더 엄격하다. 의료기기는 정기적으로 GMP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미국에선 2년에 한번, 국내에선 3년에 한번이다. 이땐 생산을 중단하고 관련 서류를 준비해야 해서 업체로선 시간적ㆍ금전적 손실이 크다. 

사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데는 업체들의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R&D 실적이 신통치 않다. 지난해 매출 기준 상위 20개 제약바이오업체 중 매출 대비 R&D 비중이 10%를 넘은 건 셀트리온(29.4%), 한미약품(19.0%), 동아ST(13.5%), 대웅제약(13.1%), GC녹십자(10.9%)를 비롯한 8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셀트리온과 한미약품 정도를 제외하면 10% 초반대에 그쳤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통상 10% 후반대에서 20%대에 이른다.

품목허가를 위한 임상에만 목을 매는 것도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한계다. 임상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의약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임상(전임상~임상3상)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에 출시한 이후의 임상(임상4상 또는 PMS)이다. 임상4상을 진행하는 이유는 의약품이 실제 시장에서 사용된 이후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부작용은 없는지, 또다른 질환에 사용할 수는 있는지 등을 연구한다는 얘기다. 

업계 한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시판 후 임상은 상당히 중요하다. 신약이 얼마나 효과가 크고, 경쟁력이 있는지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품목허가를 위한 임상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해외에선 이 임상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국내에선 아직 소홀하다.”

실제로 식약처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임상4상은 29건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외국계 제약사나 병원에서 연구용으로 진행한 게 대다수다. 물론 모든 임상4상 현황이 등록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임상1~임상3상 승인현황이 9000여건에 달한다는 점과는 분명 차이가 크다.

최근의 인보사 사태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일부에선 인보사 사태로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길이 막혀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무작정 규제를 풀어주는 것보다 정확하게 규제하는 게 새로운 출발의 기준이 돼야 한다. 규제가 무조건 악惡인 건 아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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