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수선집과 금융산업의 부침

금융업계의 구조조정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적감소·지점 통폐합·비대면 거래 증가 등 사람을 줄일 요인이 숱해서다. 넥타이부대의 감소세는 여의도 증권가와 을지로 은행가에 있는 구두수선가판대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금융맨의 발에서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부침을 읽어봤다.

국내 금융산업의 인력 감소세가 여의도·을지로 일대의 구두수선가판대의 매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금융산업의 인력 감소세가 여의도·을지로 일대의 구두수선가판대의 매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여의도 증권가와 을지로 은행가다. 여의도에는 ‘자본시장의 꽃’이라 불리는 증권사가 밀집해 있다. 국내 주요 증권사(외국계 출장소·지점 제외) 45곳 중 3분의 2가 넘는 31곳이 터를 잡고 있다.

을지로 은행가에는 신한은행·우리은행·KEB하나은행·IBK기업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 4곳과 한국씨티은행·SC제일은행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 2곳이 포진해 있다. 증권사·은행 등 금융회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때마다 금융업계에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런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곳은 ‘구두수선가판대’다. 경기가 좋으면 구두가 쌓이고, 나쁘면 구두가 사라진다. 지난해 증권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이 보험·카드로 이어질 것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는 지금, 더스쿠프(The SCOOP)가 여의도와 을지로 일대의 구두수선가판대에 가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의도에서 13년째 가판대를 운영하고 있는 강태주(59·가명)씨는 장사가 잘되느냐는 물음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강씨는 “예전에는 오전에 구두수선이나 관리를 맡겨 점심시간 전후에 찾아가는 손님이 많았다”면서 “요즘은 오전이 한가한 날이 많다”고 말했다.

다른 가판대의 사정도 비슷했다. 정인환(63·가명)씨는 “수년째 감소하던 매출이 최근 3년 사이 더 크게 줄어들었다”며 “매출이 30~40%는 감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에 받은 손님이 3~4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증권사 직원이 감소하는 데다 복장자율화로 구두를 신지 않는 사람까지 증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증권업계의 직원 수는 2012년 4만2242명에서 지난해 3만6339명으로 13% 넘게 줄었다. 그사이 증권사는 62개에서 57개로 감소했고, 1594개에 달했던 증권사 지점은 1079개로 32.3% 사라졌다. 지난해 기준 92.8%까지 늘어난 홈트레이딩시스템(H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등 비대면 채널이 강화된 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시침체·경기둔화 등 불안요인이 커지면 증권사는 지점 통폐합과 인력조정 등을 가장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에 증권업계는 2017년과 지난해 사상 최대실적을 올리고도 직원 수를 많이 늘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몇몇 증권사의 구조조정을 실시해 아직까지는 잠잠하다”면서도 “증시 침체, 실적 감소, 비대면 거래의 증가, 리테일 부문의 축소 기조 등을 생각하면 구조조정 이슈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6년 사이 13% 이상 준 증권맨

이번엔 을지로 은행가. 구두를 만들던 김명환(66·가명)씨는 1997년 외환위기라는 ‘화마火魔’를 겪은 후 을지로에서 구두를 수선하고 있다. 그는 손님이 많이 줄었냐는 물음에 “구두닦이를 취재하는 당신도 구두를 닦지 않는데 누가 닦겠냐”며 핀잔을 주곤 말을 이었다.

“구두 닦는 가격이 2000~ 3000원이던 시절에도 하루 매출이 20만원은 됐다. 하루 50~60켤레의 구두를 닦는 건 기본이고 구두 뒷굽을 수선하거나 밑창을 가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4~5년 전 구두 닦는 가격이 4000원으로 올랐지만 지금은 하루에 3만~4만원 버는 것도 쉽지 않다. 구두를 닦는 손님도, 고쳐 신는 손님도 크게 줄었다. 그나마 매출이 유지되는 건 손님이 늘어서가 아니라 인근에 있던 구두수선가판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을지로 은행가의 직원 수가 줄어든 탓인지 간판을 내린 구두수선가판대도 숱하다. 이 묘한 상관관계는 한국경제의 우울한 밑단을 보여주는 듯하다. 2012년 7만3818명이었던 국내 시중은행의 직원 수는 지난해(3분기 기준) 6만5491명으로 8327명(11.2%)이나 감소했고, 국내 영업점 수는 2012년 4720개에서 3834개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서울시의 구두수선가판대 수는 1218개에서 1053개로 165개나 감소했다. 을지로 은행가가 있는 서울시 중구의 구두수선가판대 수도 2014년 141개에서 지난해 126개로 15개나 사라졌다. 한해 3~4개의 구두수선가판대가 없어진 셈이다.

하루 3만~4만원 벌기도 어려워


물론 구두수선가판대가 부진을 겪는 원인이 전적으로 금융회사의 침체에 있는 건 아니다. 복장자율화, 저가구두의 공세 등의 영향도 크다. 하지만 여의도와 을지로 일대 구두수선가판대의 부침이 금융업계의 희로애락과 궤를 함께하고 있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국내 금융산업의 위기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김명환씨는 “인근 은행에 근무하던 오랜 단골들이 최근 희망퇴직과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며 “구두를 닦는 젊은 직장인이 많지 않아 매출이 늘어나긴 힘들 것이다”고 털어놨다. 그는 “앞으로 5년 이내에 구두수선가판대의 40~50%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새것처럼 반짝이는 구두를 신었음에도 한평 반(약 5㎡)도 안 되는 가판대를 나오는 기자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국경제의 밑단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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