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극 ‘영지’

’‘청소년극 '영지'의 장면들.[사진=국립극단 제공]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릭슨(Erik H. Eri kson)은 12~18세 청소년기를 ‘정체성 대혼돈’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정신적·신체적으로는 성인으로의 발달이 시작된 반면 언어적·사회적 영역은 여전히 어린이에 속해 혼란을 겪는다”고 설명한다. 타인이 바라는 나의 모습과 내면의 욕망이 충돌하는 불일치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선보이는 ‘영지’는 10대 초반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과 혼란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그려낸다. 특히 이번 작품은 그동안 주를 이뤘던 중·고등학생의 청소년극과 달리 10대 초반의 인물들을 내세워 이전에 없던 새로운 청소년 캐릭터를 창조했다.


‘병목안’은 철저한 규칙과 청결로 무장한 마을이다. ‘가장 깨끗한 동네 1위’에 뽑힌 완전무결한 마을에 엉뚱한 아이 ‘영지’가 전학 온다. 마을의 마스코트 효정과 모범생 소희는 영지가 알려주는 신기한 놀이와 이야기에 빠져들고, 완벽한 줄만 알았던 병목안에 서서히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병목안의 아이들은 완벽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지의 눈에는 어딘가 모르게 뒤틀려 보인다. 영지는 이곳 주민들을 병 속에 갇힌 나비에 비유하며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행동으로 주위를 변화시킨다. 마을 어른들은 아이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영지와 친구들은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자 당당히 행동하며 자아를 발견해 나간다.

청소년극 ‘햄스터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허선혜 작가의 신작이다. 어린 시절 한 친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는 허 작가는 “남들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며 집필 의도를 전했다. 연출은 ‘좋아하고 있어’에서 여고생의 내면을 섬세하게 풀어낸 바 있는 김미란 연출가가 맡았다. 함축적 언어와 시적 구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미술 장치가 활용됐다. 3m가 넘는 거대 물고기와 콜라주 가면 등 독특한 오브제와 비현실적 인물들은 풍성한 시각적 효과를 선사한다.

사람들이 ‘정답’이라며 만들어 강요하는 사회적 기준에 갇히기보다 나다움을 선택한 이 시대 수많은 ‘영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6월 15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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