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뼈의 기행’

연극 ‘뼈의 기행’의 장면들.[사진=국립극단 제공]
연극 ‘뼈의 기행’의 장면들.[사진=국립극단 제공]

“뼈라도 모셔오겠다!” 인생 끝자락에 선 한 노인의 ‘유골 이장 대작전’이 펼쳐진다.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창작 신작 ‘뼈의 기행’은 어린 시절 이별해 임종도 지키지 못한 부모의 유골을 찾아 떠나는 70대 ‘준길’의 이야기다. 유골 이장을 위한 2주간의 여정이 해방 전후의 기억들과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준길은 경북 김천을 떠나 인천항과 중국 다롄을 거쳐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향한다. 여행길은 그야말로 다사다난의 연속이다. 아들부터 조카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방해하기 일쑤고 급기야 가방 속 부모님 유골까지 섞여버린다. 준길은 과연 소중한 뼈들을 무사히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까.

뼈의 기행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온 준길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들여다본다.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일제강점기 만주 이민과 해방의 혼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순간들이 촘촘히 엮여 있다. 준길에게는 김천에서 하얼빈까지 3000㎞라는 물리적 거리보다 60년의 시간과 그 시간만큼 벌어진 심리적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진다. 뼈의 기행은 혼란스러운 역사의 흐름 속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이별과 그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못한 채 흘려보낸 시간들을 담아낸다.

이번 작품은 그간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희곡으로 옮겨온 작가 백하룡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현실감 있는 대사, 나라와 지역을 넘나드는 방언들은 극의 감칠맛을 더한다. 단출한 소품을 이용해 기차와 부두, 여관방, 선술집 등으로 공간적 배경을 탈바꿈시킨 최진아의 연출도 돋보인다. 여정을 떠나는 설렘의 증표이자 긴장감을 형성하는 갈등의 원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서른개의 ‘가방’은 장면마다 적재적소에 배치돼 관객에게 시공간 여행의 묘미를 선사한다.

‘1945’ ‘고도를 기다리며’ 등 어떤 장르든 자기만의 색깔로 소화해온 박상종이 준길로 분해 부모님 유골을 향한 절실함을 연기한다. 이준영은 학종 역을 맡아 아버지가 답답하기만 한 40대 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동포 심가 역의 이수미를 비롯해 국립극단 시즌 단원들의 앙상블 또한 극의 재미를 더한다. 6월 15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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