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없이 창립 60주년 맞는 한화그룹

10월 9일 한화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김승연 회장은 자리에 없다. 구속된 상태로 경영에 참여하기 힘들다. 김 회장이 없는 한화는 자신들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갈까. 한화의 미래는 ‘김승연’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에게 달려 있다.

 
“태양광과 바이오 같은 미래 신성장사업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투자하며, 그룹의 새 역사를 이끌 소중한 토대로 키워가야 한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지난해 10월 9일 창립 59주년을 맞아 제시한 그룹 비전이다.
1년이 흐른 10월 9일, 한화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김 회장의 기념사는 듣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김 회장은 8월 16일 법정 구속됐고, 현재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수감 중이다. 김 회장은 그룹 계열사에 수천억대의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재계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부재로 오너리스크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하지만 아직까지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한화그룹의 주가는 김 회장의 법정 구속 당일인 8월 16일 2.59%(800원) 하락했지만 그 이후에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9월 12일 현재 3만3600원(종가기준)을 기록했다.

김승연 없는 한화 잘 돌아갈까

▲ 한화그룹으 당분간 김승연 회장없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한화그룹이 안심하기는 이르다. 검찰에 따르면 한화는 김 회장을 ‘CM(Chairman)’ 이라 부르며 철저하게 복종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김 회장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임직원은 그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구조라는 얘기다. 시대에 역행하는 경영체계라는 지적을 받지만 한화 측에서 보면 김 회장이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그룹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최근 김 회장이 한화 홈페이지를 통해 그룹 비전을 제시한 것을 둘러싸고 ‘옥중경영’이라는 뒷말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회장은 9월 3일 그룹 홈페이지 CEO 인사말을 통해 한화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밝혔다.

“그룹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태양광 사업을 집중 육성 중이다. 글로벌 녹색기업으로 향한 위대한 행보를 시작했다. 2012년 5월 해외 단일공사로는 대한민국 사상 최대인 80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 신도시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제2의 중동 붐을 주도해 나가고자 한다. 아울러 금융사업 등을 통해서도 해외 시장 개척 가속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경영일선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메시지만 있을 뿐이다. 이제 한화는 ‘김승연’ 없이 그룹 핵심사업의 성공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한화는 지난해 그룹 총 매출 40조6000억원, 영업이익 2조원을 달성했다. 올해는 매출 42조1000억원을 목표로 정했다. 투자규모도 많다. 전년 대비 21% 증가한 1조9300억원을 핵심사업에 풀 계획이다.

 
한화의 핵심 사업은 크게 제조•서비스•금융 등 3개 부문으로 나뉜다. 제조부문에서는 한화케미칼이 그룹 성장동력인 태양광사업을 이끌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2013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1만t 규모의 여수 폴리실리콘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를 통해 폴리실리콘-잉곳-셀-모듈-발전시스템을 포함하는 태양광 사업 수직계열화를 구축할 계획이다.
태양광은 김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사업 중 하나다. 그는 “한화를 세계 5위권의 태양광 종합그룹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히곤 했다. 이를 위해 한화솔라원(태양광 전지•모듈 생산업체), 한화솔라아메리카(미 실리콘밸리 소재 태양광 분야 연구소), 한화솔라에너지(태양광 발전사업체), 큐셀(태양광 셀 생산업체)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이라크 신도시 건설사업도 빠질 수 없다. 한화건설은 5월 해외 단일공사 규모로는 국내 최대인 80억 달러(9조5000억원)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태양광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사업도 김 회장이 진두지휘했다. 김 회장은 사업 협력 차원으로 이라크를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곤 했다. 이런 김 회장의 열정에 힘입어 한화건설은 2015년 수주 7조, 매출 5조 규모의 ‘2015 글로벌 100대 건설사’ 진입을 중장기 목표로 하고 있다. 금융사업도 한화그룹의 미래를 결정지을 핵심사업 중 하나다.

한화는 한화생명•한화증권•한화손해보험•한화자산운용•한화인베스트 등 한화금융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2002년 그룹에 편입된 한화생명은 미래 수익기반 강화를 위해 중국시장 등 성장잠재력이 높은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역시 김 회장이 선봉에 서있다. 김 회장은 동남아 5개국 순방을 통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시장 진출의 초석을 다졌다. 올해에는 본격적으로 한화 금융 부문의 글로벌화를 추진했다.

또 한화손해보험은 제일화재와의 통합을 통해 업계 상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화증권 역시 푸르덴셜증권 인수로 지점수만 해도 업계 3위로 성큼 올라섰고, 올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업들이 삐걱거린다면 한화는 스스로 ‘김승연 회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격이다. 최근 한화건설은 이라크 정부에게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의 선수금(사업비 10%, 약 7억7500만 달러)을 석달이 넘도록 받지 못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김 회장의 구속소식을 들은 이라크 정부가 오너 리스크를 우려해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된 것이다. 이라크 정부는 국토해양부에 김 회장의 재판 결과와 추후 이라크 사업에 대한 영향을 확인한 후 9월 12일 선수금을 한화건설 측에 입금했다.

국토부 해외건설지원과 관계자는 “이라크 정부에 김승연 회장의 구속은 한화건설의 이라크 건설사업과 관계가 없고, 추후 문제될 것도 없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CM 복귀 가능할까

반대로 김 회장 없이 그룹 핵심사업이 조직적으로 잘 돌아간다면 한화는 ‘김승연의, 김승연을 위한, 김승연에 의한’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 그렇다면 김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을 때 예전처럼 ‘CM’으로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김 회장의 항소심 재판을 형사7부(재판장 윤성원 부장판사)에 배당했다. 구속사건은 일반적으로 배당 이후 한달 안에 첫 재판이 열린다. 늦어도 10월 초에는 김 회장의 항소심이 열린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빠른 시일 내에 감형을 받거나 구치소에서 나올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등에 업은 사법부는 재벌총수에게 겨냥한 날카로운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당분간 사법부의 행보는 그럴 것으로 보인다.

‘김승연’ 없는 한화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까. 한화의 힘은 ‘김승연’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에게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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