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늘리기 정책 7년 後

2012년, 이명박(MB) 정부는 ‘8년 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달성’을 확신했다. 숙박업소 부족을 염려한 정부는 호텔을 짓는 사업자에게 정책 특혜까지 줬다. 도심 곳곳에 호텔이 올라섰다. 현실은 달랐다. 지난해 외래 관광객 수는 1534만명에 그쳤다. 사드 배치 등 정치 이슈에 휘말리기도 했고, 관광 콘텐트 자체가 부실했다는 반성도 나왔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지어진 호텔들은 반성을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호텔 늘리기 정책 7년의 자화상을 취재했다.   

호텔특별법 때문에 호텔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호텔특별법 때문에 호텔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10.2%, 국내 관광호텔의 최근 5년간 증가율이다. 2013년 896개에서 지난해 말 1884개로 늘었다. 8만8958실이던 객실 수는 15만2508실이 됐다. 서울로 범위를 좁히면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2013년 191개(객실 수 2만9828실)에 불과하던 서울 관광호텔은 5년 만에 440개(객실 수 5만8248실)로 130.3%나 늘었다.

호텔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데에는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호텔특별법)의 영향이 컸다. 2012년 7월 시행된 이 법엔 호텔 사업자를 위한 다양한 특혜가 담겨있었다. 대표적인 게 용적률 완화다. 일반주거지역에서 최대 150%, 상업지역에서 최대 500%까지 완화해줬다. 본래 호텔을 건립할 경우 면적 134㎡당 1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었지만, 300㎡당 1대로 완화했다. ‘호텔 용도로 공유지 대부할 경우 최대 30년까지 대부 허용’ ‘대부료 50% 감액’ 등 파격적인 조건도 뒤따랐다.

법이 시행된 2012년은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열어젖힌 한국 관광산업의 호황기였다. 원동력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였다. 2007년 100만명에 불과했던 유커의 수는 5년 만에 3배가량(284만명) 성장했다. 이들의 잠재력을 확인한 정부는 ‘2020년 외래객 2000만명 달성’을 정책목표로 삼았다.

이때 부흥의 걸림돌로 지적된 게 ‘숙박시설’이었다. 국책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기관에서 통계 자료를 쏟아냈다. “2006~2010년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율은 평균 8%에 달하는데, 관광ㆍ숙박시설의 증가율은 3.9%에 불과했다(문화체육관광부)” “2017년이 되면 서울 지역 관광호텔의 객실 수가 1만8000실이 부족할 것이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외국인 관광객의 70% 이상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수도권의 숙소 부족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다(호텔특별법 검토보고서)”

호텔특별법은 그 결과였다. 서울 특급호텔 고위 임원의 당시 회상을 들어보자. “2012년엔 명동의 3성 호텔의 객실 가동률이 90%를 상회할 정도였다. 호텔이 더 필요하긴 했다. 문제는 정부가 공급부족 여론을 과도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호텔시장이 유망했다면 정부 지원이 아니더라도 눈치 빠른 사업자는 이미 달려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숙박업계 목소리는 정부와 달랐다. 정부의 공급-수요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당시 정부의 통계가 공급으로 잡은 건 관광호텔의 수였다.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모텔과 분양형 호텔 등은 빠졌다. 100실 이하의 숙박업체, 숙박업 등록을 하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와 오피스텔 등도 마찬가지였다. 

관광산업이 국제사회의 복잡하고 미묘한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는 분야란 점도 문제였다. 언제든 외교이슈에 따라 관광객의 발길이 끊길 수 있는데, ‘2020년 외래객 2000만명 달성’은 과도한 장밋빛 전망일 수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숙박업체 객실 수 전체를 따져봤을 땐 법으로 호텔건설을 보조할 수준으로 부족하지 않았었다”면서 “업계에선 정부의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관광호텔이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무시했다. 오히려 2000만명 달성 시점을 2018년으로 2년 앞당겼다. 2015년 일몰 예정이던 특별법을 되레 1년 더 연장했다. 2015년 12월에는 ‘학교 앞 호텔법’으로 불리는 관광진흥법 개정안까지 통과시켰다. 이 법은 학교 앞 75~200m 지역에 심사 없이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었다. 결국 호텔 수가 급격히 늘어난 건 특별법(2012~2016년) 당시 허가를 받은 호텔 사업주가 몇년 새 호텔 준공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특별법이 일몰된 지 3년이 흐른 지금, 호텔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영업지표를 따져보자. 2014년 63.5%에 이르던 전국 관광호텔의 객실이용률은 2017년 60.7%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객실당 평균요금은 8만391원에서 6만9079원으로 14.1% 떨어졌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ㆍMe rs) 사태가 터졌고 2017년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 이슈까지 겹치면서 유커의 발길이 끊긴 영향이 컸다.

사드 이슈가 끝났지만 한국호텔 시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비슷한 형태의 비즈니스호텔이 늘어난 게 문제였다. 호텔 산업의 수익구조를 단순하게 판단한 사업주들이 ‘가성비’만 앞세운 호텔을 지은 결과였다. 

정오섭 한국관광호텔협회 사무국장은 “호텔이 고도의 서비스 사업인 줄도 모르고 정책 특혜, 저금리 기조만 믿고 뛰어들었다가 경영난을 겪는 사업주가 많다”면서 “한번 짓고 나면 다른 용도로 변경이 어려운 호텔의 특성을 고려하면 예상치 못한 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관광객 늘고 있지만…

물론 호텔시장의 전망이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1534만명으로, 2000만명 달성엔 실패했지만 2017년(1333만명)보다 15.1% 늘었다. 글로벌 관광산업의 상승세가 가파르고 호캉스라 불리는 새로운 여가문화도 생겼다. 숨통이 트일 법한 상황, 그럼에도 현장에선 이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5성급 호텔과 4성급 호텔이 기록한 영업이익률은 각각 -0.92%, -0.48%에 불과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것보다 더 많은 호텔이 지어진 까닭이다.

문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사드 사태 이후 정부가 관광산업의 질적 성장과 콘텐트 확대를 외쳤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없는 상황”이라면서 “최근엔 공유숙박 등 기존 호텔을 대체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섬세한 관광정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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