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만든 보고서 미발표 이유 물으니…
“선진국은 도시계획 단계에서 대규모점포의 진입을 막고 있다. 골목상권 뿐만 아니라 환경ㆍ교통ㆍ고용 등 다양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5월 서울시가 국민 세금으로 연구용역을 발주해 만든 ‘대규모점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방안’에 담긴 내용이다. 대기업의 확장으로 쇠락하는 골목상권에 힘을 실어줄 자료였다. 하지만 이 자료는 사실상 미공개 처리됐다. 왜 일까. 더스쿠프(The SCOOP)의 질문에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엉뚱한 답변을 늘어놨다.
2017년 10월, 서울시는 한국법제연구원에 ‘대규모점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방안’이라는 이름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해외의 대규모 유통점포 규제 사례를 보기 위해서다. 세금 8000여만원이 투입됐고, 연구는 지난해 5월 끝났다. 하지만 이 자료는 사실상 공개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서울시 담당 공무원과의 대화를 풀어봤다.
✚ ‘대규모점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방안’이라는 연구용역을 맡긴 계기는 무엇인가.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규모 유통점포가 들어선 이후에 규제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건물을 다 짓고 영업을 앞둔 상황에서 상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였다. 규제 대상의 형평성 문제를 두고 갈등이 심한 것도 문제였다.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대규모 점포 입지를 사전에 제한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싶었다.”
✚ 연구용역은 지난해 5월 완료가 됐다. 자료를 볼 수 있는가.
“30여권이 책자로 인쇄됐다. 지금 부서 내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서울도서관ㆍ국회도서관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 도서관에 비치된 자료는 열람용이다. 자료 대출은 불가능하다. ‘대규모점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방안’을 서울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시정간행물 납본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인쇄가 완료된 간행물을 서울도서관이 수집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나.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 세금으로 발주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입법 참고용으로 진행된 연구용역이었다. 외부 공개가 적절치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해명도 이상하다. 이 연구용역의 최종보고회 자료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국회 차원의 토론회 등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활용방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계획도 세웠다. 중간보고회 결과에서도 “용역결과가 보도자료로 배포될 수 있음을 전제로 최종보고시에는 정책 제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공개를 염두에 두고 연구용역이 이뤄졌다는 방증이다.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당초 계획은 그랬다”면서 말의 뉘앙스를 조금 바꿨다.
“하지만 결과가 문제였다. 해외 사례를 분석한 건 좋았지만, 연구기간이 짧았던 탓에 시사점이 빈약했다. 국내 법체계에 적용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세금으로 발주한 용역보고서가 내용이 미흡하단 이유로 사장됐다는 뜻이다.
✚ 살펴보니 나름 의미 있는 분석도 있다. 특히 도시계획단계에서 대규모점포를 어떻게 규제했는지 국가별로 정리한 자료는 이 용역보고서가 사실상 최초였다.
“자료를 발표한들 시 차원에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입법기관이 아니지 않나. 도시계획 관점에서 대규모 유통시설을 입점을 막으려면 국토계획법이나 건축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정치권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없다. 선진국처럼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통해 골목상권과 상생을 꾀하는 건 더 많은 자료 조사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럼 왜 연구용역을 맡겼는가. 이유가 그렇다면 자료를 더더욱 공개해 공론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 차원에서 먼저 거론됐어야 하는 이슈였다. 타이밍이 맞질 않았다.”
✚ 미공개 자료로 놔두겠다는 건가.
“현재 시 내부에서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새로운 방안을 찾고 있다.”
✚ 당시 담당 공무원은 어디 있는가.
“다른 부서로 옮겼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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