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그린 북(Green Book) ❸

돈 셜리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발휘해 18세에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정도로 인정받지만 ‘흑인은 피아니스트로 대성할 수 없다’는 1940년대 현실적 장벽에 좌절한다. 시카고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해 박사가 된 그는 음악의 꿈을 접을 수 없어 피아니스트의 삶에 재도전한다.

짝퉁은 항상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야 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 속에 그려지는 흑인 클래식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저항과 타협의 모든 모습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여준다.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난들 흑인이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걸 절감한 돈 셜리는 피아니스트 자리로 돌아오면서 전략적 타협을 선택한다. 백인들의 배타적 영역인 클래식 피아노를 포기하고 대신 흑인들에게도 허용되는 재즈 피아노로 방향을 수정한다.

그러나 클래식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어서 ‘클래식 재즈 피아노’라는 묘한 포지셔닝을 택한다. 좋게 보자면 새로운 영역의 개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흑인 뮤지션이 택할 수밖에 없는 무척이나 눈물겨운 생존전략이다. 

돈 셜리의 피아노 연주 모습은 흥에 겨워 온몸으로 연주하는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재즈곡을 연주하면서도 마치 쇼팽이나 베토벤을 연주하는 듯 대단히 ‘클래식한’ 피아니스트의 연주 모습을 보인다. 마치 백인 피아니스트가 흑인들의 재즈 음악을 재해석해서 연주하는 듯한 모습이다. 

돈 셜리는 멸시받는 흑인보다 차라리 '짝퉁 백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돈 셜리는 멸시받는 흑인보다 차라리 '짝퉁 백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돈 셜리는 ‘흑인 아닌 흑인’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어쩌면 ‘백인 같은 흑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백인들이 자신을 그렇게 받아들여 주기를 소망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백인처럼 항상 단정하게 양복을 입고 생활하며 또 무대에 오른다. 흑인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영어를 철저히 배척하고 영국 왕실에서나 쓸 법한 ‘퀸즈 잉글리시(Queen's English)’를 구사한다.

멸시받는 흑인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짝퉁’으로라도 백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걸핏하면 목청부터 높이거나 주먹을 날리고 보는 흑인들을 경멸한다. 미국 사회에서 ‘반 흑인’쯤으로 여겨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토니를 운전사로 고용하고, 토니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백인처럼 몸을 묻고 토니의 천박한 언행을 사사건건 지적한다.

마치 1940년대 미국 사회의 보편적 모습처럼 교양 넘치는 백인이 천덕꾸러기 흑인 ‘아랫것’을 점잖게 가르치는 꼴이다. 운전하면서 토니가 틀어대는 흑인음악도 마땅치 않고, 뻑뻑 피워대는 담배질도 기가 막혀 한다. 토니가 맨손으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들고 뜯어먹다 뼈를 차창 밖으로 집어던지는 ‘흑인스러운’ 짓거리에 질색한다. 

토니는 토니대로, 흑인이면서 ‘그 좋은’ 흑인노래도 모르고 ‘그 맛있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도 처음이라는 기묘한 흑인이 당황스럽다.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까지 모두가 사랑하는 흑인음악도 ‘짝퉁 백인’은 모른 척해야 하고 좋아해서도 안 된다. 흑인 입맛에 맞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진짜 백인’은 좋아해도 되지만 짝퉁 백인은 멀리해야만 한다. ‘짝퉁’의 비애이자 블랙코미디다. 짝퉁 백인 돈 셜리 박사는 피부색 빼고는 진짜 백인보다 더 백인스럽기 위해 기를 쓴다. 

우리 사회에는 '짝퉁 보수'나 '짝퉁 진보' 같은 '짝퉁 이념'들이 넘친다. [사진=뉴시스]
우리 사회에는 '짝퉁 보수'나 '짝퉁 진보' 같은 '짝퉁 이념'들이 넘친다. [사진=뉴시스]

짝퉁은 항상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야 한다. ‘가짜 서울대생’은 학적부 빼고는 진짜 서울대생보다 더 서울대생스럽게 굴어야 한다. 농촌 시찰을 간 어느 대통령 후보가 진흙 범벅의 오이를 그대로 한입 베어 먹었다고 한다. 그를 지켜보던 ‘진짜 농민’이 한마디 했다. “우리는 그거 씻어 먹어요.”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짝퉁은 명품 브랜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짝퉁 이념’들이 넘쳐난다. ‘짝퉁 보수’나 ‘짝퉁 진보’는 진짜 보수나 진짜 진보보다 더 보수스럽거나 진보스러워 보이기 위해 기를 쓴다.

마치 진짜 백인들은 맛있게 먹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에 짝퉁 백인 돈 셜리 박사는 질색하고 손사래 치듯, 진짜 보수나 진짜 진보라면 충분히 인정할 수도 있는 정책들도 짝퉁 보수와 짝퉁 진보들은 진저리를 치고 경기를 일으키며 삭발하고 단식하고 여기저기서 아예 드러눕는다. 짝퉁 백인 돈 셜리의 모습에 토니가 기가 막히듯 짝퉁 보수와 짝퉁 진보의 ‘순결함’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은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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