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미발표 유통규제 보고서

해외에선 도시계획 관점에서 대규모점포를 규제하고 있었다.[사진=뉴시스]
해외에선 도시계획 관점에서 대규모점포를 규제하고 있었다.[사진=뉴시스]

#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형마트는 한달에 두번 영업을 쉰다. 매장면적 3000㎡(약 907평)를 넘으면 지자체에 상권영향평가를 제출해야 하고, 지역상권과 상생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골목상권 보호 취지의 유통산업발전법이 정한 규제들이다. 

# 이 법은 연일 ‘실효성 없는 정책’이란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법 시행 이후에도 골목상권이 계속해서 붕괴했기 때문이다. 유통기업과 보수성향의 학자들은 “외국에선 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를 풀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 ‘역주행’하고 있다”며 날카로운 지적을 내뱉는다. 

이때 거론되는 대표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은 1970년대 대규모소매점포법(대점법)을 제정해 대형 유통업 출점을 어렵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영업일과 영업시간까지 규제해왔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쉽게 출점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 하지만 일본 사례를 끄집어낸 건 유통기업과 보수학자들의 실수다. 서울시가 연구용역 발주를 통해 지난해 5월 발간한 ‘대규모점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대형유통 채널의 규제를 없앤 게 아니다. 도시계획 차원의 규제로 방향을 바꿨을 뿐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점법 폐지 후 대점입지법을 새로 제정해 환경ㆍ고용ㆍ교통 등 도시계획 관점에서 대규모점포의 출점을 심사한다. 지자체별로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유린하는 걸 막기 위한 장치도 뒀다. 

# 유통채널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왜곡된 게 많았다. 해외사례를 제대로 수집해 놓은 자료도 거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시가 발간한 ‘대규모점포 입지규제방안’ 보고서는 함의含意가 크다. 주요 선진국의 촘촘한 대규모점포 규제 방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유통기업이 말하는 ‘규제완화 추세’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 그런데 참 이상하다. 서울시는 이 자료를 사실상 공개하지 않았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는 게 서울시 담당 공무원의 말인데, 납득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이 보고서는 국민의 세금 8000만원을 들여 만든 것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도서관 한편에 처박혀 있는 이 보고서를 공개한다. 골목상권 붕괴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 정책결정자에게 ‘혜안’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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